한국인들에게 안중근, 유관순과 더불어
가장 잘 알려진 독립 투사인 윤봉길 의사
아무리 역사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도시락 폭탄
정도는 들어봤을 건데
근데 윤봉길 의사의 행적을 알면 알수록
이 분은 그냥 대놓고 소년물 주인공 급이었던 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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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이 다니던 초등학교는
교장부터 선생까지 모두 일본인이었음
특히 조선어 금지는 물론이고 일본어만 강요했기에
초등학교 시절 내내 불만이 많았는데
일본어 수업 시간에 일본어 교사가
“私は日本人です (나는 일본인입니다).”를 시켰음
그러나 아무도 이 말을 따라하지 않았는데
그 때 윤봉길의 옆 친구가 유일하게 따라 말함
방과 후 윤봉길은 친구를 끌고 나가서
“왜놈 된 기분이 어떠냐?
조선 사람이 왜놈 되려면 얼굴 생긴 것부터 뜯어고쳐야 돼!”
라며 참교육을 시전함
※ 참고로 윤봉길의 키는 무려 180cm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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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2살이 되던 해에 3.1운동이 발생함
당시 고향인 예산 지역에서도 크게 시위가 일어났는데
시위 도중에 시위대를 이끌던 인한수 열사가
일본군 수비대장의 군도에 목을 찔려 사망하는 것을 목격함
이에 부모에게 학교를 그만두겠다는 폭탄선언을 하고
대신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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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대단히 좋았기에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약 9년간 동생들에게 한학과 기초교육을 가르침
근데 시험에 대답을 못하거나, 틀리면
방에 있는 목침을 던지고 불호령을 내며 스파르타식으로 교육을 시킴
다만 수업이 다 끝나면 안아주거나, 쉴 땐 확실히 쉬게 해주는 등
제대로 참교육(긍정)을 선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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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의 나이 때 한 농부가 윤봉길을 찾아옴
근처 공동묘지에 아버지를 매장했는데
문제는 농부가 문맹이라 한자로 적힌 아버지 성함을 몰라서
어느 것이 아버지 묘인지 알려달라고 온 것
근데 문제는 묘패(비석 세우기 전 임시로 세운 나무막대)를
모조리 뽑아와서 어느 것이 아버지 이름인지 알려달라고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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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버님 묘비가 어느 무덤에 있었는지는 기억하냐?”
라고 물었고, 그제서야 농부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함
문제는 아버지 묘 찾자고 다른 묘의 묘패도 전부 뽑아 왔는데
위치를 기억 못해서 다른 묘소 주인마저 영영 알지 못하게 된 것
이 일련의 사태를 보고 19세의 윤봉길은 결심이 서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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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애국은 계몽임을 깨달은 윤봉길
이후 야학당을 개설하고, 직접 농민독본이라는 교재를 집필
그리고 농민들의 경제 자립을 위해 목계농민회를 설립한 뒤
농산물 증산운동, 공동구매조합을 통해 농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도움
마지막으로 월진회를 세워 양돈과 양계를 농민들에게 지원해
부업을 통한 부수적인 수입까지 얻도록 함
이 모든게 19세 ~ 21세 때 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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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이 시절 야학에서 농민들을 가르칠 때
가장 존경하는 이로 뽑은 게 바로 알렉산더 대왕
좋아했던 이유가 인도적이지도 바르지도 않았지만
마땅히 청년이 가져야 할 야심다운 야심을 가진 사나이였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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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광주에서 학생들이 벌인 대규모 항일 운동이 발생한다
일본은 학생들을 상당히 잔혹하게 진압했는데
이 광경을 본 윤봉길은 계몽만으로는 독립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자신의 결심을 글로 써서 가족에게 남긴 뒤
중국으로 가서 직접 독립 운동을 하기 위해 떠난다
다만 중간에 일본 사복 경찰에게 체포당해 한달간 유치장에 갇혀있었음
“장 부 출 가 생 불 환”
(사내대장부는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중국으로 떠나기 전 가족에게 남긴 마지막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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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만주에 도착한 윤봉길은
여러 독립 단체를 돌아보며 어디서 독립 운동을 할 지 찾아봄
그 와중에 만주의 조선인들의 참담한 생활을 보면서
강연도 하고, 협동 조합도 만드는 등 활발한 계몽 활동도 병행함
그러나 중국인들이 조선인을 일본의 첩자로 보는 시각이 강해지자
만주에서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로 옮기기로 결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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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칭다오까지 갔을 때 여비가 완전히 바닥나버림
그래서 일단 1년간 일본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취업해
월진회 회원들이 빌려준 돈을 모두 갚고
상하이로 갈 여비까지 모두 마련함
이후 상하이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생인 안공근 집에 기거하며
인삼 장사를 하거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독립단체를 물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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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또 인싸 기질은 못버리셔서
공장의 노동자 친목회 및 노동 조합을 결성했고
영어 학교에 다니며 영어를 공부하며
여러 외국인 친구들을 만들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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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1월
윤봉길은 신문으로 피가 끓는 소식을 들음
바로 한인애국단 소속의 이봉창 의사가
직접 도쿄로 가 일본 천황을 폭사시키려고 한 사쿠라다몬 의거
이에 자신의 갈 길을 정한 윤봉길 의사는
공장을 그만두고 곧장 임시 정부로 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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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좋은 소문을 많이 들은 김구는
즉시 윤봉길을 만남
여기서 윤봉길은 당시 외교도, 계몽도, 무력투쟁도
모두 침체되어있던 독립운동을 상기시키며
총체적 난국이던 이 상황을 의거로 뒤집을 것을 제안함
“선생님, 저를 이봉창 의사와 같은 일로 써 주십시오”
-백범일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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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1932년 4월
일본은 1차 상하이 사변에서 이겼다고 정신승리를 하며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전승 기념 행사를 갖기로 함
일본군 고위 장성들과 외교관들, 친일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였기에, 김구는 이때를 최고의 적기로 판단했고
그 적임자로 윤봉길을 선택하기로 결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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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봉창 의사의 의거로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군은
기념식장에 물통과 도시락 외에는 아무 것도 못가져오게 함
이에 김구는 도시락, 물통 모양의 폭탄을 만드는데
이 폭탄을 획득 + 제조한 것은
훗날 국군의 전설이 될 (당시) 중화민국군 소속 김홍일이었음
김홍일은 과거 이봉창 의사에게도 폭탄을 전달해 줬는데
위력이 약해서 천황 암살 실패했다는 자책감이 있었음
그래서 윤봉길 의사에게는 빗맞아도 다 뒤질 수 있는 고화력의 폭탄을 제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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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공원까지 돌아보며 최종 리허설을 마친 뒤
윤봉길 의사는 그날 밤 한인애국단 입단을 마침
이후 김구와의 마지막 식사 자리에서
윤봉길은 월급을 털어 산 매우 비싼 회중시계를 김구에게 주고
김구의 낡은 시계를 품에 넣고 현장으로 가는데
김구가 왜 바꾸냐고 물어보니
“제 시계는 앞으로 몇 시간밖에는 쓸 일이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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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가 구해준 티켓의 입장시간은 오전 11시
그러나 1시간 전, 또 하나의 호걸이 공원을 배회했으니
바로 아나키스트 계열 독립운동가인 백정기 의사!
그러나 표와 총을 현장에서 건네 주기로 한
중국인 아나키스트인 왕야차오가 티켓 구매에 실패하면서
결국 오전 10시, 백정기 의사는 울분을 참고 의거를 결행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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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을 훙커우 공원까지 데려다 준 인물은
바로 미국인 선교사인 조지 애쉬모어 피치
일본의 비인도적인 행적에 대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기에
윤봉길 의사를 자동차 요인석에 태운 뒤 직접 운전해서
일본군의 의심을 피해 기념식장까지 데려다 주는데 성공함
참고로 피치 선생은 훗날 난징 대학살에서 수많은 중국인을 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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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폭탄 2개를 모두 던질 계획이었지만
문제는 단상까지 거리가 좀 있었고
무엇보다 두 폭탄을 보자기에 넣고 던지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폭탄이 커서 보자기에 다 들어가지 않자
도시락 폭탄은 땅 위에 내려두고
먼저 물통 폭탄을 단상 위로 던지고, 도시락 폭탄으로 자결을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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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4월 29일 오전 11시 40분
기미가요의 마지막 소절이 시작될 때
단상 위로 하나의 물병이 날라온다
그리고 물병은 굉장한 폭음과 함께 단상에서 폭발한다
이 폭발로 인해 상하이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데이지와
관동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뒤진다
그리고 이외에도 숱한 요인들이 반병신이 되어버린다
※ 현장에서 즉사하진 않고 며칠 뒤에 둘 다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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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수감 기록카드
윤봉길 의사는 자결에 실패한다
그러나 일본 군경에게 현장에서 엄청나게 구타당하면서도
끝까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이후 경찰서에서도 엄청난 고문을 받지만
윤봉길 의사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으며
대한독립만세만을 외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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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가 윤봉길의 유족에게 전달한 “장 렬 천 추” 휘호
이 사건은 한국 독립 운동사의 일대 전환을 불러 일으켰는데
당시 조선인을 일제의 앞잡이로 보던 중국인들이
조선인 청년 한 명의 의거로 상하이 사변의 원흉들을 조지자
조선을 항일 운동의 동지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퍼졌고
무엇보다 장제스가 임시정부에 엄청난 지원을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이후 장제스는 윤봉길의 유족에게 휘호까지 써서 전달해 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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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 사건에 엄청나게 감명을 받은 장제스는
한국 독립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어
카이로 회담 당시 처칠의 혐성질에도 한국 독립을 적극 관철 시켰고
역시 서구에서도 훗날 2차 대전 항복 서명을 한 인물이자
훙커우 공원에서 반병신이 된 시게미쓰 마모루에게 설명할 때
한국인 애국자(Korean patriot)로 언급될 정도로
윤봉길의 의거 하나가 한국 독립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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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군인 신분으로 판결을 받는데
이 때문에 육군 군법 회의를 통해 사형을 선고 받았고
가나자와 육군 구금소에 수감되었다
일본은 윤봉길을 특공전투원으로 규정한 뒤
군인에게 적용하는 사형 방식인 총살형을 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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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은데
“현재 조선은 실력이 없기 때문에 일본에 반항하여 독립함은 당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한두 명의 상급 군인을 살해하는 것만으로는 독립이 용이하게 실행될 수 없다.
오직 기약하는 바는 이에 의하여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고
다시 세계로 하여금 조선의 존재를 명료히 알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차제에 ‘조선’이라고 하는 개념을 이러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새겨 넣는 것은
장래 우리들의 독립운동에 결코 헛된 일이 아님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있는가?
사형은 이미 각오했으므로, 하등 말할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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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는 미간에 총알을 맞고 13분 뒤 숨을 거둔다
향년 2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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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유해 발굴 사진, 옆의 십자가가 의사가 묶여있던 형틀
처형 직후 일본은 시신을 화장했다고 유족에게 알린다
허나 사실은 묘지 길목에 암매장하여 사람들이 밟고 가도록 했음
이후 14년이 지난 1946년
김구가 일본에서 사망한 백정기,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유해 반환을 요구
이 때 재일교포인 박성조씨가 처형 당시 독경을 해준 스님을 통해
시신 위치를 파악하여 결국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다
※ 손뼈 7개가 나무 뿌리에 얽혀서 손뼈는 수습하지 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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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는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됨
김구는 특히 윤봉길에 대한 감정이 애뜻해서
윤봉길 의사의 어머니인 김원상 여사에게 그때 바꾼
시계를 전달했다가, 받지 않자 죽을 때까지 그 시계를 간직함
이후 윤봉길의 후손이 김구와 바꾼 시계를 찾아냈고
이 두 시계는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에 전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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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장남 윤종은 학창 시절에 반역자, 흉악범의 자식이라고
일본인 교사에게 모진 학대를 받았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고초를 겪음
그러나 1962년 윤봉길에게 건국 훈장이 추서된 이후
윤봉길의 형제와 조카들은 학계와 정재계에서 성공을 거둔다
21대 국회 의원인 윤주경이 윤봉길의 손녀이고
윤봉길의 조카손자가 바로 배우 윤주빈이다
-끝-
출처
https://www.fmkorea.com/best/1021206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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