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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배우.
TV에는 거의 출연하지 않았고 주로 영화계에서 활약했다.
사실 초창기에는 탤런트 시험에도 지원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합동영화사에서 깜보라는 영화의 배우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시나리오에 맞춰, 동대문 시장 같은 곳을 다니며 의상을 준비해서 달려갔다. 그러나 다른 배우에게 섭외가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학교에 안 가고 영화사로 출근을 시작, 매일 아침에 영화사 직원들이 시키는 커피 심부름과 같은 여러 잡심부름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박중훈은 대학교 1학년 때 충무로 상업영화 깜보를 통해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깜보는 당시 극장 흥행 성적이 그닥 좋진 않았으나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충무로에 확실히 각인시킨 영화였다. 박중훈은 깜보를 통해 그 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987년 박중훈은 이규형 감독의 장편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 강수연과 함께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청춘 스타로서 발돋움하였다. 지금은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유치한 영화지만 어쨌든 현재 나이든 세대가 기억하는 박중훈의 예능감이라든지 아니면 특유의 유쾌함이 물씬 묻어나는 영화로 이 영화는 그 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였다. 이 영화의 히트로 박중훈은 1980년대 최재성과 더불어 최고의 청춘스타로 인기를 누린다. 최재성이 잘생긴 얼굴로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의 스타라면 박중훈은 매우 유쾌하며 밝은 이미지의 스타였다. 두 사람은 1988년, 1990년에 ‘내 사랑 동키호테’,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라는 영화에 연이어 동반출연하기도 했다. 내 사랑 동키호테는 박중훈이 직접 주제가도 불렀다.
1988년 박중훈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 ‘칠수와 만수’에 출연하면서 안성기와 처음으로 같이 영화를 찍었다. 이 작품은 박중훈의 연기에 대중들이 좀 더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박중훈은 이 영화로 1989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과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에 출연하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들끓던 시절, 박중훈은 사회적인 주제 의식을 지닌 영화의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청춘스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하였다. 그는 ‘우묵배미의 사랑’으로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12],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박중훈은 최진실과 함께 이명세 감독의 코미디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출연하였다. 여기서 박중훈은 미영의 남편 영민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1991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2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이 영화로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 SBS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 출연하여 박중훈은 TV쪽에도 발을 담궜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황일천 병장 역을 맡아 그 해 열린 SBS 스타상에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 박중훈은 안성기와 함께 콤비를 이뤄서 강우석 감독의 영화 ‘투캅스’에 출연하였다. 투캅스는 1994년 국산 1위 흥행 영화였으며 2010년 초반까지 반복되던 전형적인 한국식 코미디 영화의 기틀을 세운 작품으로 강우석이라는 감독에게 대한민국 최고감독의 위치를 안겨줌과 동시에 박중훈과 안성기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을 안긴 작품이다. 안성기와 박중훈의 케미는 그 당시 최고의 케미로 자리매김했다. 박중훈은 투캅스로 1994년에 대종상 영화제에서 안성기와 함께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에는 게임의 법칙에 출연하여 시골 출신 양아치가 뛰어난 실력으로 중간보스 자리에 오르다가 순진한 성격으로 인해 비운의 죽음을 맞는 용대 역을 맡아 느와르 장르의 연기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로 박중훈은 그해 열린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에는 블랙 코미디 영화 마누라 죽이기에 최진실과 함께 출연하였다. 박중훈은 영화 제작자인 아내가 싫어져 아내를 죽이기로 결심하는 공처가 박봉수 역을 맡았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 하나다.
이후 박중훈은 1995년 <꼬리치는 남자>,<돈을 갖고 튀어라>, 1996년 <투캅스 2>, 1997년 <할렐루야>, <인연> 등의 코미디 영화들에 연이어 출연하여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국민 배우로 불릴 만큼 엄청난 입지를 가진 배우가 되었다.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상복도 좋았다. 특히 청룡영화상에서는 94,95,96,97년까지 4년 연속으로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고 4연속으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양들의 침묵으로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한 조나단 데미가 박중훈이 출연한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선댄스 영화제에서 보고 2001년 영화 <챨리의 진실>에 박중훈을 캐스팅하면서 대한민국 배우들 중에서는 최초로 헐리우드에 진출한 배우가 되기도 했다.
2013년 10월에 영화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첫 연출작 제목은 톱스타. 엄태웅, 김민준, 소이현이 주연을 맡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흥행은 하지 못했다. 2014년 중국에서 리메이크했다.
1987년 이규형의 최대 흥행작인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라는 영화에 강수연과 같이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해 청춘 스타로 자리 매김했다. 참고로 극중 후반부에 갑자기 철수가 머리를 박박 밀고 나오는데(극중 군대 입대 때문에) 실제로 박박 밀었던 거였다. 감독이나 제작진은 원래 가발을 씌우던지 하여 처리하려고 했더니 박중훈은 가발보다는 진짜로 밀어버리는 게 사실적이라고 하여 스스로 밀어버렸다고 한다.
이 당시 영화계에서 청춘 스타라고 하면 박중훈과 최재성 정도. 실제로 두 사람은 내 사랑 동키호테,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라는 영화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내 사랑 동키호테는 박중훈이 직접 주제가도 불렀다.
이후 박중훈은 칠수와 만수로 인연을 맺은 안성기와 많은 영화에서 콤비로 출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마누라 죽이기에서는 최진실과, 1995년 꼬리치는 남자, 1997년 인연에서는 김지호와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 코미디 영화들도 흥행을 거두면서 1990년대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는다. 박중훈은 1993년 <투캅스>, 1994년 <마누라 죽이기>, 1995년 <꼬리치는 남자>,<돈을 갖고 튀어라>, 1996년 <투캅스 2>, 1997년 <할렐루야>, <인연> 등의 코미디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며 1990년대 대한민국 영화계를 이끌었다.
박중훈이 출연한 작품들 중 가장 흥행한 영화들이 코미디 영화인 탓에 대중들에게 코미디 전문 배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박중훈을 단순하게 한 시대를 풍미한 코미디 배우로만 여기면 곤란하다. 사실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1990년대 초반까지 제작된 한국 영화는 주로 사회성이 짙은 진지한 영화들이었고 본래 박중훈도 이러한 무거운 주제의 영화들에 주로 출연하였다. 그러나 이후 주연으로 출연한 가벼운 코믹물인 투캅스가 흥행하고 충무로 남자 배우가 지금처럼 연령층이 다양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박중훈이 코미디 영화에 자주 출연하게되자 대중들이 박중훈을 코미디 전문 배우로 인식하였을 뿐이다.
박중훈은 영화 외에 광고로도 큰 인기를 끈 적이 있다. 바로 OB 라거 시리즈. 1996년부터 1998년까지 2년 전속으로 출연했다.
초반에는 단독 출연하여 랄라라 댄스만 선보였지만, 이거 하나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중반부터 최종원과 콤비를 이루어 코믹 스타일로 전환하면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특히 1997년 최종원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광고 ‘라면 한 박스’ 편에서의 소비자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고, 1997년 당해 소비자가 꼽은 최고의 광고로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며, 박중훈-최종원 콤비의 OB 라거 시리즈의 시초가 되는 매우 의미있는 광고다. 이후 아이돌 그룹 god의 박준형도 이 광고에서 중간 합류하여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겉보기에는 박준형이 나이들어 보여서 뭔가 이상해 보이지만, 실제 나이로 따지면 박중훈이 박준형보다 4살 많다.
사실 이렇게 장기간 동안 OB 라거 광고를 한 이유는 위에 언급한 랄랄라 댄스와 여러 광고들이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OB 고위층 임원이 어느날 술집에 갔는데, 우연히 박중훈이 OB 라거의 경쟁사의 맥주가 나오자 자기가 OB 모델인데 다른 술 먹으면 안된다면서 가게에 그 술이 없으면 자기가 돈 줄테니 나가서라도 사 오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 전속모델 재계약을 맺은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광고주들은 전속 모델에게 이런 조항을 의무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연기면에서의 흑역사라면 어색하기 그지없는 살인마 연기를 보여준 <세이 예스>와 몸은 이순신이지만 대사는 양반의 대사를 하고 톤까지 1980~1990년대 톤으로 연기를 한 <천군> , 관련 밈이 나올 정도로 발연기를 보여 준 <해운대>가 있다. 실제로 박중훈은 자신의 연기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에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던 듯 하다. 다행히 내 깡패 같은 애인으로 오명을 만회하긴 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도 좋았지만, 평론가들이 대체로 1990년대에 박제된 것 같은 박중훈의 연기가 드디어 시대에 맞게 바뀌었다는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또다른 흑역사로는 신인 시절에 출연한 국산 특촬물 바이오맨. 박중훈 본인은 바이오맨 이야기만 나오면 민망함에 몸서리를 치기 바빴고 현재 이 작품이 찾아보기 힘든 레어 아이템이 된 이유가 박중훈이 몰래 비디오를 회수하고 다녔기 때문이라는 농담성 음모론까지 떠돌 정도였다. 그리고 2019년 1월에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해서 신현준의 회전목마 흑역사를 틀자마자 신현준이 바이오맨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방송에서 바이오맨 영상이 나왔다. 신현준이 바이오맨이 역주행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마자 진지하게 약속 하나만 하자면서 바이오맨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다.
2009년 초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박중훈 쇼를 런칭했다가 4개월만에 폐지된 흑역사도 있다. 데이비드 레터맨 쇼, 주병진 쇼처럼 본인이 단독 호스트로 나와 1대 1로 대화하는 정통 토크쇼를 표방했지만 장동건, 김태희, 정우성, 김혜수, 심지어 3당 원내대표 특집으로 정치인[22]까지 나오는 등 보기드문 게스트를 섭외했음에도 2000년대 말 당시 무릎팍도사 등 스피디한 토크쇼가 대세가 되는 흐름에 걸맞지 않은 프로라는 평가를 받고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당시 네티즌들은 박중훈의 어색하기 그지 없는 진행을 짤로 만들어서 조롱했으며 심지어는 박중훈 쇼를 패러디한 김준호 쇼가 훨씬 재밌다는 평도 많았다. 결국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인 MC 체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박중훈이 고사하고 하차하면서 프로그램은 폐지. 이후 1년 뒤에 김승우의 이름을 걸고 나온 토크쇼는 다인 MC 체제를 도입해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3년 가까이 방송되면서 나름 흥행하는데 성공했다.
박중훈은 현재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년배 탑급 영화배우들인 한석규, 김윤석, 송강호, 최민식, 설경구와 비교해서 이례적으로 충무로에 빠르게 자리잡은 케이스다. 다만 이는 박중훈의 스타성에 기인한 부분이지 그의 연기력이나 배우로서의 장점에 기인한 부분은 아니다. 쉬리의 대흥행 이후로 폭발하기 시작한 한국 영화계만 봐온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한국 영화는 시간 남으면 보는 영화, 동시상영이나 해야 겨우 보는 영화로의 인식이 강했다. 그런 이유로 인하여 대체적으로 연기력보다는 스타성이 검증된 배우를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그나마 손해를 덜보고 극장에서도 꽤 오래 걸어주기 때문에 박중훈과 같은 자신만의 확고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들이 인기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수상경력이 화려하다는 이유로 박중훈의 연기력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연기력이 정말 높게 평가된다면 2000년대 이후 라디오 스타, 내 깡패 같은 애인을 제외하면 내세울만한 작품 하나 없는 것은 좀 심각한 일이다. 게다가 영화 라디오스타는 안성기와 같이 만든 다소 자전적인 내용에 가까운 영화이다. 물론 역대 남자배우 중에서는 유일하게 20대에 국내 3대 영화제인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것은 맞으나 연기력외에 다른 외적인 요소들도 많이 작용한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배우로서 박중훈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은 연기폭이 지나치게 좁다는 것이다. 본인이 잘나가던 역할 대부분이 가볍고 코믹하거나 껄렁한 이미지의 건달 캐릭터 위주인데, 문제는 그 이상을 벗어난 연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주연 배우는 단순히 연기만 잘하는게 아니라,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에 혼을 불어넣을 줄도 알아야 하고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인물도 연기해야 하는데 박중훈은 진지하고 깊이있는 연기가 너무나도 부족하고,[24]뭘 해도 자기복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나마 연기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라디오스타나 내 깡패같은 애인도 본인이 잘하던 캐릭터의 연장선상이다. 즉, 본인의 캐릭터는 확실하지만 거기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버린 것. 결국 본인이 가진 캐릭터의 틀을 지울만한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 채, 이후에 넓은 연기폭을 가진 다른 배우들에게 본인의 자리를 넘겨주게 되었다. 전성기때는 가벼운 분위기의 한국영화 특성상 깊이있는 연기가 요구되지 않아서 본인만의 캐릭터가 확실했던 박중훈이 돋보이기 좋은 무대였지만, 이후에 한국영화가 발전하면서 트렌드도 달라지고, 주인공이 되기 위해선 더 깊이있는 연기가 요구될 수 밖에 없었는데 박중훈은 그 한계가 너무나 명확했던 것이다.
어쨌든 90년대까지 대한민국 영화계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으나,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 영화의 대약진이 일어나자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가 매우 높아지고 그에 걸맞는 수준의 배우들이 속출하면서 박중훈은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실제로 상술한 1960년대 생의 배우들이 아직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정점의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박중훈은 현재로썬 은퇴나 다름없을 정도로 커리어가 마감된 수준이다.[25] 특별한 반전의 계기가 생기지 않는 이상 인상적인 필모그래피의 확장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성격이 착하지만 굉장히 불같다. 화가 나면 엄청나게 다혈질적인 사람으로 과거에 바이오맨을 촬영할 당시 신인 배우인 신미아에게 너무 심하게 노발대발했는데 이 때문에 신미아는 박중훈의 ‘박’자만 들어도 치를 떨었고 까불이로 소문난 차태현에게 엄청난 호통을 쳐서 차태현 역시 박중훈에게 공포에 질리게 만들었다.
원래 차태현은 20대부터 연예계에서 후배들한테는 관대한 편이지만 선배들한테 잘 까부는 스타일로 유명한데, 신인 때도 영화를 함께 해서 그런지 박중훈 자체가 무서운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차태현은 박중훈이 말 한 마디만 해도 아예 꼼짝하지 못할 정도로 박중훈을 무서워한다. 참고로 차태현은 영화 할렐루야와 투 가이즈에서 박중훈과 함께 연기를 했는데, 어쩐지 두 영화 모두 박중훈에게 두들겨 맞는 연기들로 유명하다. 다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는 얘깃거리도 못 되는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차태현의 까불거림에 당한다며 주로 언급되는 사람들은 대개 나이 차이가 크게는 안 나고 사적으로도 친한 70년대생 형들이다. 반대로 박중훈과는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약 10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 대선배, 까마득한 후배 관계이며 무엇보다 같은 직업을 가진 직계 선후배이기 때문에 이렇다할 사적인 친분이 없다면 어려워 하는 게 당연하다.
영화계에서 칠수와 만수로 시작하여 투캅스 시리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등 상당히 많은 작품에서 안성기와 콤비를 이루었다. 박중훈에게 안성기는 사실상의 절친이다. 물론 나이는 안성기가 훨씬 많다. 박중훈 본인 역시도 친한 형동생처럼 지낼 수 있는 건 안성기 선배가 워낙 배려심과 인간성이 좋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자신은 이에 매우 영광스러움을 느끼면서 편하게 지내더라도 마음속으로 존경심을 잃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이 수십년 본 안성기는 방송이나 언론에 비춰진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과 실제 모습이 언제나 오차없이 똑같을 정도로 인격적으로 훌륭하여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알 파치노 주연의 《스카페이스》를 꼽는다.
연예계에서도 재테크를 잘 한 케이스로, 수백억대 자산가다. 건물도 몇 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새롬기술에 투자한 이후 90년대 후반에 이 회사가 대박을 치면서 오래도록 회자되었다.[33] 또한, 박중훈은 80년대 후반부터 청춘 스타로서 스타덤에 올랐고 90년대에는 《투캅스》를 비롯한 각종 코미디 영화들에 출연하여 큰 인기를 얻은, 대한민국 영화계의 최정상급 스타였다. 더군다나 개그감이나 말주변도 꽤 괜찮아서 예능에서도 항상 함께 하고 싶은 연예인중에 한 명이었고 덕택에 CF도 굉장히 많이 찍었다. OB 라거의 ‘라라라’ CF는 역사에 남을 만한 CF였다. 본인이 말했다시피 그 절정의 인기 동안 찍은 CF의 개런티가 한 두푼도 아니었고 갯수도 적지 않아 꽤 많은 돈을 벌었다. 박중훈은 이 막대한 자산을 다른 연예인들처럼 펑펑 쓰지 않고 그냥 잘 모아두고 적당히 투자했기 때문에 부자가 된거라고 보는게 맞다. 서장훈과 어찌보면 비슷한 케이스다.
사촌형은 강석훈 한국산업은행 회장이다.
우리나라 3대 메이저 영화제 시상식인 백상예술대상은 남우주연상 3번 모두 단독수상이었는데, 청룡영화상, 대종상은 남우주연상 수상했을 때 모두 공동수상이었다. 다만 1994년 대종상과 2006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에는 같은작품에 출연했던 안성기[34]와 공동수상이었다.(1994년 청룡영화상 시상식은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문성근과 공동으로 수상하였다.)
신인 시절 실제로는 1966년 3월 생인 자신이 학창시절 친구들은 1965년 3월~ 66년 2월생들이고 연기 생활하기에 너무 어려 보인다고 생각해 데뷔 직후 1964년생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동갑인 줄 알고 친구가 되었던 1964년생 최재성이 나중에 그가 1966년생인 걸 알게 되었으나 대인배의 마음으로 친구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박중훈은 자기 나이 40이 넘고 나서도 매우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1963년생인 김세준 역시 어찌된 영문인지[35][36] 처음에 박중훈이 1964년생이라고 하자 1살 차이인데 그냥 친구하자며 박중훈과 친구가 되었는데 이는 최재성의 경우보다 박중훈의 입장에서는 더 심각해진 일이다. 훗날 결국 박중훈이 사실을 털어놓자 꼼짝없이 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박중훈은 선배 최재성은 물론 최재성과 절친했던 영화 감독 겸 배우 진유영(1957년생)과도 친분이 있어 《내 사랑 동키호태》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진유영은 고교얄개 등으로 이름을 알린 하이틴 스타였으나 《인간시장》 시리즈[37]의 주인공 ‘장총찬’ 역을 맡으며 성인 배우로 거듭났으며 이후 《’89 인간시장》, 《오! 하나님》, 《독재소공화국》, 《도둑과 시인》 등의 작품을 직접 연출하기도 한 영화인. 최재성은 이장호의 외인구단, 사랑이 꽃피는 나무, 여명의 눈동자를 거치며 최고의 청춘 스타로 인기를 모으던 시절에 진유영, 박중훈과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태, 내 사랑 동키호태를 같이 했으며 진유영의 연출작 독재소공화국과 도둑과 시인에 출연하기도 했다.
서로 친분이 깊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이로 허재가있다. 두 사람은 용산고등학교-중앙대학교 동기 동문으로 절친이다.[38] 두 사람 다 유명한 주당이라서 같은 자리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는데, 대학교 시절 허재와 같이 실려갈 정도로 술을 마신 뒤 집에서 TV를 틀었다가 농구대잔치에 등장한 허재를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노회찬과 상당히 친한 사이인지라, 박중훈이 노회찬을 ‘회찬이 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국회의원 당선 즈음인 2004년 소개받아서 알게되었다 하며, 또한 노회찬이 2008년 노원구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노원역 및 그 근방에서 박중훈이 직접 노회찬의 선거 유세를 돕는 것이 목격되기도 했다. 박중훈이 노회찬을 따뜻하고 매우 좋은 형이라고 호평하고 있다.[39] 2018년 노회찬의 추모식에서도 자리를 지켰다.
MBC 《사남일녀》에 맏형으로 출연했다.
박중훈이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SBS 창사특집으로 방영된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 주인공 황일천 역으로 출연한 것이 유일했다. 1993년 11월 초에서 1994년 1월 말까지 방영된 작품으로 박중훈, 이경영, 이창훈, 이기영, 성동일, 권해효, 오대규, 김의성, 박근형, 박영지 등이 출연했으며 베트남계 배우들을 출연시켜 리얼리티를 높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이 원작이고 극작가 이윤택이 극본을 담당한 작품이며 변우민, 최수종 등이 주인공 황일천 역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머나먼 쏭바강에 출연한 베트남계 프랑스 여배우 린 당 팜은 1993년 11월에 방영이 시작된 머나먼 쏭바강에 이어 1994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라이 따이한에 연속 출연, 한국배우 이창훈과 연이어 함께 연기하는 인연이 생기기도 했다. 린 당 팜은 까뜨린느 드뇌브 등이 출연한 1992년 개봉 영화 《인도차이나》에도 출연했다.
알렉시스 산체스가 이 사람과 닮은 꼴이다.
대종상 시상식에 기획상 시상자로 나와서 동료 배우들 성대모사를 보여줘 시상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후에도 인터넷에서 꽤나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 아래 영상에서도 보이듯 성대모사 당한 본인들의 빵 터지는 반응도 볼거리다.
이외에도 대종상 시상식에 안성기와 함께 시상자로 나와서 하라는 발표는 안 하고 자기 결혼발표부터 먼저 하는 통에 좌중을 포복절도하게 만들기도 했다. 옆에서 자지러지는 안성기의 표정도 압권이다(…)
한 영화에 출연하면서 바로 전에 찍었던 영화와 같은 출연료를 불렀으나 이전 영화가 망한 관계로 출연료가 깎일 뻔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럼 지금 당장 주지 말고 영화에서의 내 연기를 보고 달라고 하여 한참 후에 결국 원하는 금액을 받아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혹시 출연료를 사기당할까봐 촬영 기간 내내 캐릭터에 몰입을 못했다고 한다.
전유성과 묘하게 악연이 있는 사람이다. 박중훈이 배우 데뷔 전 KBS 젊음의 행진 통기타 오디션을 보려고 당시 심사위원이던 전유성 앞에서 준비해간 노래 한 소절 부르기도 전에 “나가.”라고 말해 박중훈을 잘라버렸다. 박중훈을 영화 데뷔시킨 감독과의 만남에서 마침 전유성과 안면이 있던 감독이 박중훈을 전유성에게 소개하며 “이 친구 어떠냐”고 묻자 그 자리에서 “별론데요”라고 대답했었다. 훗날 박중훈이 배우로 대성한 뒤에 전유성에게 “그때 정말로 제가 별로라고 생각하셨어요?”라고 묻자 그때 전유성이 대답하기를 “나는 아직도 니가 왜 떴는지 모르겠다”고 얘기했다. 다만 이와는 별개로 서로 사이는 원만한 것인지 2019년 5월 11일 앞서 tvN 토크쇼 택시에 출연하고 자신의 SNS에 “전유성 선배님은 제가 영화 배우를 처음 할 때부터 정말 오랜 시간 격려해 주시고 많이 도와주신 분”이라며 “오늘 데뷔 50주년 기념 ‘전유성의 쇼쇼쇼’ 공연에서 ‘비와 당신’부르면서 축해드렸어요. 사회는 영자가”라는 글을 올린 뒤 전유성의 무대에 함께 선 이영자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사진을 게시했다.
주진모가 슬럼프를 겪어 공백기에 빠져 있을 때 박중훈이 먼저 전화를 걸어서 “뭐하냐, 소주 한 잔 하자. 나와라”라며 불러내 같이 소주를 마시면서 “너만한 얼굴 없다”며 “네가 갖고 있는 능력 중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1/100도 안 된다. 앞으로 보여줄 것이 아주 많이 남았으니 하나씩 천천히 보여주면 된다.”며 주진모를 격려해 주고 틈틈이 용돈까지 쥐어주었다고 한다. 이후 박중훈은 제주도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주진모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 주진모에 의하면 공백기 동안 자신을 외면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2017년 1월부터 자신이 출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의 제목을 본뜬 프로그램으로 KBS 제2라디오가 신설한 라디오 스타의 DJ를 맡게 됐다. 1990년에 DJ(KBS 2FM “박중훈의 인기가요”[43])를 맡은 이후 무려 27년 만에 DJ 마이크를 잡는 것. 그전에는 1988년에 KBS 제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DJ를 맡은 적도 있으니, KBS 제2라디오만 보면 29년 만의 복귀이다. 2018년 12월 31일까지 진행했다.
국경없는 포차에 출연하여 수준급의 영어를 보여주었다.
1994년 10월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구속적부심을 통해 풀려났다. 박중훈은 자신이 연출한 영화 톱스타에 대마초 흡연으로 구속되면서 광고회사에 손해배상을 하느라 집이 가압류됐던 일화를 담기도 했다.
1999년, 6개월간 150배가 상승했던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 최흉의 작전주인 새롬기술[44]#에 초기투자하여 2억5천만원을 단기간에 50억으로 불린 것 때문에 작전 세력과 한 패가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45] 이에 대해 박중훈 본인은 “초기 투자금이 모자라는 지인에게 그냥 잊어버리는 셈치고 자본을 빌려줬는데 그게 우연히 대박 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박중훈은 다시 그 돈을 부동산에 투자하여 700억까지 불렸다.
2004년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어 면허가 취소됐다.
화천대유의 초기자금을 투자한 회사에 자금을 빌려준 것으로도 구설수에 올랐다. # 박중훈이 100% 소유한 부동산회사가 자본잠식중인 매출액도 안 나오는 회사에 수십억을 빌려줬고 그 회사는 어딘가에서 모은 돈을 화천대유에 투자해서 수백억을 벌었으며 또한 화천대유의 관계사들이 박중훈의 빌딩에 입주해있었다고 한다.
2021년 3월 28일 음주운전으로 다시 적발되었다. 지인의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 대리기사를 보내고 본인이 직접 지하주차장까지 운전했다고 한다.[46] 이 사건은 2021년 4월 16일 검찰에 송치되었다. 2021년 6월 7일 벌금 7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2012 | 영화판 | 본인 | |
2011 | 아리아리 한국영화 | ||
체포왕 | 황재성 형사 | ||
써니 | 과거 사진 | 특별출연 | |
달빛 길어올리기 | 필용 | ||
2010 | 내 깡패 같은 애인 | 모동철 | |
2009 | 해운대 | 김휘 | |
2006 | 라디오 스타 | 88년 가수왕, 최곤 | |
강적 | 하성우 형사 | ||
2005 | 천군 | 청년 이순신 | |
2004 | 투 가이즈 | 박중태 | |
2003 | 황산벌 | 계백 | |
찰리의 진실 | 이일상 | ||
2001 | 세이 예스 | M | |
2000 | 불후의 명작 | 인기 / 삐에로 | |
1999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우영민(영구) 형사 | |
1998 | 아메리칸 드래곤 | ||
1997 | 인연 | 지훈 | |
할렐루야 | 양덕건 | ||
똑바로 살아라 | 마고봉 | ||
현상수배 | 제이 킴 / 써니 초우 | ||
체인지 | 황성철 | ||
1996 | 깡패 수업 | 황성철 | |
투캅스 2 | 강민호 형사 | ||
1995 | 돈을 갖고 튀어라 | 천달수 | |
총잡이 | 대서 | ||
꼬리치는 남자 | 재수 | ||
1994 | 마누라 죽이기 | 박봉수 | |
젊은 남자 | |||
게임의 법칙 | 용대 | ||
1993 | 투캅스 | 강민호 형사 | |
1990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김영민 | |
그들도 우리처럼 | 이성철 | ||
우묵배미의 사랑 | 일도 | ||
1989 | 애란 | ||
바이오맨 | 도일 | ||
내 사랑 동키호테 | 호태 | ||
1988 | 지금은 양지 | ||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 호태 | ||
칠수와 만수 | 칠수 | ||
1987 | 됴화 | ||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 철수 | ||
1986 | 깜보 | 제비 |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2013 | 톱스타 |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1984 | 햄릿 | 햄릿 왕자 | 주인공 |
1985 | 고도를 기다리며 | 블라디미르 | 주연 |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
1985 | 아가씨와 건달들 | 베니 사우드스트릿 | 조연 |
연도 | 방송 | 제목 | 역할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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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 SBS | 머나먼 쏭바강 | 황일천 병장 | |
1997 | MBC | 남자 셋 여자 셋 | 박중훈 | 특별출연 |
2001 | MBC | 세 친구 | 본인 | 특별출연 |
2017 | OCN | 나쁜 녀석들 : 악의 도시 | 우제문 |
국경없는 포차 (2019년) tvN, Olive
뽀뽀뽀 MBC – 1980년대 후반 체조를 담당하는 튼튼이 아저씨로 출연하였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MBC
박중훈쇼 대한민국 일요일밤 (2008년~2009년) KBS 2TV
박중훈의 라디오 스타 (2017년~2018년) – KBS 해피FM에서 라디오 DJ를 맡았다.
수상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 |
1987년 | 제23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 깜보 |
1989년 | 제9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 칠수와 만수 |
1990년 | 제26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우묵배미의 사랑 |
제1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 ||
1991년 | 제36회 아시아-태평양 영화제 | 나의 사랑 나의 신부 | |
1993년 | SBS 스타상 | 드라마 부문 최우수연기상 | 머나먼 쏭바강 |
1994년 | 제32회 대종상 | 남자인기상, 남우주연상 | 투캅스 |
제15회 청룡영화상 | 인기스타상, 남우주연상 | 게임의 법칙 | |
1995년 | 제16회 청룡영화상 | 인기스타상 | 마누라 죽이기 |
1996년 | 제17회 청룡영화상 | 투캅스2, 돈을 갖고 튀어라 | |
제32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인기상 | 돈을 갖고 튀어라 | |
1997년 | 제18회 청룡영화상 | 인기스타상 | 깡패수업 |
1998년 | 제34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할렐루야 |
조세의 날 기념 | 재정경제부장관 표창 | ||
2000년 | 제2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남우주연상 | 인정사정 볼 것 없다 |
제2회 프랑스도빌아시아영화제 | |||
제36회 백상예술대상 |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 ||
제23회 황금촬영상 | 최우수 인기남우상 | ||
2005년 | 영화의 날 기념 | 올해의 영화인상 | 천군 |
2006년 | 제14회 이천춘사대상영화제 | 심사위원 특별상 | 라디오 스타 |
제27회 청룡영화상 | 남우주연상 | ||
2007년 | 제30회 황금촬영상 | 심사위원 특별상 | |
2010년 | 제18회 이천춘사대상영화제 | 심사위원 특별 연기상 | 내 깡패 같은 애인 |
2014년 | 제13회 뉴욕 아시아 영화제 | 연예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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