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모 프로필 (만화가 교수 만신)
김성모 홈페이지
김성모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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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모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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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모 X
개요
대한민국의 만화가이자 현직 교수.
2020년, 영산대학교 웹툰영화학과의 특임교수로 부임하였다.
2020년 4월 15일부터는 ‘김성모TV’라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2021년, 최해웅 작가가 설립한 신생 만화 기획사 카르만에 합류하였다. 그리고 데뷔 30주년을 맞이해서 전시회를 열었다.
상세
반농담 반진담으로 ‘만신(만화의 신)’ 혹은 ‘김화백’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김성모 작가의 작품이 대한민국 만화계에서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여러 가지로 꽤나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만신이라는 별명은 쓰임새가 정말 다양하다. 옛 작품의 디테일한 밑바닥 배경묘사 표현력이 재평가받거나 어시한테 차를 사주고 집안이 어려울 때 거금을 챙겨주는 등, 대인배 큰형님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도 만신, 혹은 반대로 기행을 저지를 때도 만신이라는 칭호가 따라온다.
그의 인생관이 다다익선인지 엄청난 다작으로 유명하며 일단 만화를 많이 만들고 본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나이와 경력에 비해서도 많은 편이며 그래서 붙은 별명 중 하나가 ‘공장장’, ‘도장’이다. 이러한 경향으로 작품의 수가 하나둘 쌓이다보니 현재는 엄청나게 많아져 받는 인세만 달마다 수억원에 달하며, 덕분에 김성모 본인 및 스튜디오 자유구역 어시스턴트들은 뎃셍맨 한 명 한 명조차 대기업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렇듯 활동량을 좀 줄여도 충분히 여유로움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성모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로 이른바 거장과 삼류의 모습이 공존하는 만화가라는 평가가 있지만 정작 김성모 본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표현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냈다. 정확히는 성공했다는 건지 뭔지 애매하다는 것. 대털 1부, 혐일류, 마신 등 일부 성인극에서 이룬 성취를 보면 의심할 여지없는 거장이자 만신이지만, 학원물이나 웹툰에서 보여준 만력은 이에 못미치는 삼류 수준이다. 실력은 최고 수준이지만 그 실력을 매번 발휘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직접 현장에 나가서 위험을 감수하고 취재한 자료를 바탕으로 어지간한 느와르도 꺼릴 만한 더러운 뒷문화를 여과없이 묘사하는 등, 성인극화만큼은 리얼리티가 엄청나다. 성인극 스토리 전개력만큼은 어지간한 세계적 느와르 거장보다도 낫다는 평가가 있다. 일각에서는 성인극에 한해 카이지 작가인 후쿠모토 노부유키보다도 더 리얼하고 낫다고 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장식 성인물, 대부분의 학원물은 리얼리티를 떠나 황당하게 여겨질 만한 부분이 많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이력
학창시절
학창시절 싸움을 좀 했다고 한다. 그래서 폭력조직에서도 스카웃이 들어왔지만 김성모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거절했다. 물론 그걸 응해서 조직에 가담한 학창시절 친구들도 몇몇 있었는데 당연히 거의 다 빨간줄 그이고 인생 망쳤고 거절한 김성모만 성공했다. 김성모도 이때의 선택을 정말 다행이라 회고했다고 한다.
데뷔 전 및 데뷔 초기
데뷔 전에는 스토리 작가로 고행석 화백 밑에서 일했다. 이현세의 문하생이기도 했다고 한다. 고행석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선생님께 여쭤보니 지금 만화가로 활동하시는 김성모 작가님이 저희 스토리 작가로 일한 적은 없다고 하시네요.’라고 밝혔으나, 거짓말이라고 하기에는 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자세하다. 실제로도 럭키짱에 등장하는 표독수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 비슷한 캐릭터인데 외모가 구영탄을 상당히 많이 닮았다. 나중에 침착맨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고행석 화백의 메인 화실이 아닌 B화실이라고 불리는 서브 중 하나에서 일하다가 군대에 갔다고 한다. 즉 고행석 화백 화실에서 일한 건 맞고, 메인 화실이 아니라서 그냥 기억을 못 하는 것. 구영탄과 개고기 육포에 관련된 이야기 등 재미있는 스토리를 짜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는 것에 성공. 각 화실에서 그를 데려가려고 스카우트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스토리 작가 시절에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였음에도 월 200만 원 넘게 벌어서 오히려 데뷔하기 전보다 금전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김성모는 이때 경험에 대해
특정 작가 화실에서 막내부터 시작해 배경, 몸, 뎃생맨 등으로 차례로 승진하다 보면 돈도 많이 벌고 사실상 작가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다. 이때까지 한 10년 정도 걸린다. 나이로는 대략 서른쯤 되는 거다. 근데 여기까지 오면 딜레마가 생긴다. 처음에 작가가 되려고 화실에 입문했는데 10년을 남의 그림만 그리다 보니 뭔가 창작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거다. 작가도 독립을 안 시켜주려고 한다. 심하면 차까지 사주면서 묶어두려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생각보다 일찍 화실서 나와서 원고를 들고 만화 잡지사 등을 돌아다녔다. |
라고 회고했다.
군 입대 시절에는 그림을 잘 그려서 고참들에게 추억록을 만들어 주었는데, 계속 만들다 보니 왕고 달기 전까지 계속 추억록만 만들었다고 한다. 자기 말로는 54권을 작업했다고 한다.
데뷔작은 1993년 5월 보물섬에 실린 단편 ‘약속’ 이다. 군 전역 후 보물섬 담당 기자를 소개받았는데 그 기자가 ‘”이번 주 원고 자리 하나가 펑크 났는데 연재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서 15페이지 정도로 그려서 투고했던 게 데뷔작이 됐다고 한다. 소년 가장인 형과 동생이 주인공으로 형은 그레이트 캡짱의 강건마 얼굴이고 동생은 그 쇼타판(마계대전 극 초반의 타이건을 생각하면 된다). 내용은 약간의 도벽이 있는 동생이 주인공인데 초기 김성모의 작품 대다수의 주인공 이름인 ‘강건마’는 이때 처음 등장한다. 절대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형과 약속했으나 어느 날 동생이 사과봉지를 가지고 가는 것을 형이 본다. 형은 강건마에게 사과가 어디서 났느냐고 묻지만, 동생은 제대로 말을 못 하고 이를 훔친 것으로 판단한 형이 동생을 때리면서 사과가 바닥에 굴러떨어지는데 썩은 사과뿐이다. 동생은 울면서 훔친 게 아니라 썩어서 버리려는 것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형은 동생을 끌어안고 우리는 거지가 아니라며 함께 운다. 마무리는 동생인 강건마가 형과의 약속을 지키자 형이 초콜릿을 사주고 끝나는 따뜻한 결말이었다.
이후 같은 해 보물섬에서 《그레이트 캡짱》이라는 황당한 제목의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한다. 《그레이트 캡짱》은 다른 출판사에서 ‘캠퍼스 캡틴’이라는 이름으로 해적 출판할 정도로 꽤 인기를 얻었고 아이큐점프에서 연재한 《마계대전》은 나름대로 인기를 끌었다. 연이은 히트로 김성모는 일본 만화의 유입으로 다 죽어가던 소년만화계를 살릴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소년 챔프에서 연재한 ‘허리케인’과, 만화판 스타크래프트 등의 만화가 연이어 실패하고 경력이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하자 만화 공장을 세우며 대본소 만화가로 변신, 《럭키짱》을 연재하면서 가공할 연재 속도로 뽑아내는 어마어마한 분량과 상황에 맞지 않는 황당한 대사들, 갑자기 뭔가 이상해지는 그림체(예를 들면 마사오의 얼굴), 마침표 대신 물음표로 끝나는 특유의 말투인 근성체 등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으며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다. 김성모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출판사 사장이 사무실로 불러서 돈 자루를 쌓아놓고 보여주면서 “이게 다 당신이 번 돈이다”라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 엄재경 스토리작가가 회상하길 김성모는 잡지 만화 때부터 남달랐으며 그 특유의 감각과 근성으로 만화업계에서 버티면서 이제는 나름 모두가 인정하는 어떤 경지에 오른 듯하다고. 한번은 김성모가 인기 순위에서 까꿍을 이기자 이충호 화백이 까꿍을 합체시키자고 해서 말리느라 고생 좀 했다고 한다.
성인극화
일본 만화가 대거 진출하면서 한국 소년 만화가 점차 경쟁력이 떨어져 가자 김성모는 성인극화 시장에 도전하기로 결정, 매춘업으로 유명한 사창가인 용주골에서 한 달 이상 숙박하면서 취재하는 근성열정을 보이면서 ‘용주골 시리즈’ 등의 성인극화 시리즈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김성모의 그림체는 아예 다른 작가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 일례로 이 시기를 전후해서 달라지는 주인공 캐릭터인 《럭키짱》의 강건마(이 시기 전)와 《대털》의 교강용(이 시기 이후)의 얼굴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강건마이지만 《럭키짱》의 강건마와 《돌아온 럭키짱》의 강건마는 그림체가 완전히 딴판이다.
하지만 이는 의혹이 좀 있는 부분인데, 침착맨에게 사인을 해주며 강건마의 초상화를 그렸을 때 막힘없이 척척 그려내면서 드로잉의 포인트까지 찝어주며 설명까지 했다. 작가의 사인으로 그린 그림도 럭키짱 시절 그림체다. 프로 레벨 만화가가 수십년 동안 굳은 본인의 손버릇을 하루아침에 갈아엎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사실 김성모 본인 그림은 아직 럭키짱 시절 그림체 그대로고 대털부터 보여주는 성인극화에서의 이케가미 료이치 스타일 그림은 화실 뎃생맨의 그림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하루 두 번 마감친다는 사람이라서 콘티 짜서 넘기기도 바쁠 테니 직접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기도 할 것이기에 이 쪽이 거의 정설이다.
《용주골》을 그릴 당시 세 번의 취재를 하러 갔는데 처음에는 달밤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찍다가 조폭들에게 “한 번만 더 오면 뱃속에 바람을 확 불어넣어버리겠다” 고 협박받았고 이 경험을 살려 두 번째 취재 때는 택시 안에서 카메라로 찍었으며(3명인지 4명인지 확실치 않음) 몇 명이 같이 가서 방을 3번씩 스케치해왔다. 용주골의 방은 같은 것이 없으며 일종의 테마룸 형식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사실 테마룸까진 아니고 그냥 거기서 일하는 여자가 자기 취향에 맞게 꾸미는 정도다. 그리고 마지막 3번째 취재에는 포주 한 명을 섭외해 포주의 동생으로 위장하고 30분에 6만 원씩 총 300만 원을 들여 실제 일하는 여자들을 인터뷰했다. 돌아왔을 때 그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성인극화 쪽에서는 주로 조폭물을 많이 그려서 그런지 나중에는 조폭들하고 친해져서 음식 대접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하고 사무실에 건달들이 쳐들어와서 엄포를 놓자 평소 친하게 지내던 조직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한 적도 있다고 한다. 사무실에 칼을 들고 들어와서 “당신 때문에 우리 수법이 다 들통나 밥숟가락 놓게 생겼다 어쩔 거냐”고 위협했다고 한다. 이 덕분에 조폭들 징역 수발도 꽤 해준 모양이다. 여담으로 사채업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기 위해 직접 5,000만 원 가량의 사채를 쓰고 일부러 갚지 않았다. 6개월간 정말 별의별 꼴을 다 당하다가 상황을 설명해준 뒤 돈을 갚고는 사채업자랑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이처럼 치열한 취재로 사실성 있는 성인 극화로 유명해진 김성모는 마침내 일간 신문에 입성하여 실제로 유명했던 도둑 김강용을 모델로 한 대털이라는 작품을 연재하기로 계약한다. 당시는 럭키짱 등이 여기저기 퍼지면서 알려진 김성모 비판 풍조 때문에 “어디 어떻게 그리나 한번 보자!” 라는 시선이 만연하여 김성모의 새 연재작에 관한 관심이 무척 뜨거운 시절이었고 이에 김성모는 “200페이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려놓고 연재하는 것이다!”고 장담하는 기사로 응수했다. 마침내 연재가 시작된 대털은 김성모의 성인 만화 중에서도 역대급 퀄리티였고 그동안 유명해진 김 화백 특유의 병맛 테이스트까지 적당히 녹아들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것에 성공하였다.
ExCF에서는 대털이 연재되던 시절 매일 ‘오늘 자 대털’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 올라와서 회원들이 함께 보며 감상평을 달았으며 대털의 연재가 끝났을 때는 모두 눈물을 흘리며 복창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 또한 디시인사이드 초기 시절에도 수햏만화 ‘햏자의 역습’이란 제목으로 대사만 바꾼 패러디물이 올라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이는 지금도 ‘득햏의 길’이라는 게시판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후 김성모는 무협물에 도전, ‘쾌검’이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그러나 쾌검은 흥행에 실패해서 보통 50권을 넘어가던 김성모 만화 중에서 12권으로 짧게 마무리되었다. 이후 김성모는 무협물은 잠시 미루다가 이후 대본소 만화로 ‘귀신귀검’이라는 무협만화를 출판했다.
일간 스포츠에서 대털 2.0을 끝내고 이원호 원작의 소설 ‘강안남자’를 만화화해서 연재 후 2010년 말~2012년 초까지 ‘4인조’라는 제목의 만화를 연재했었다. 2012년 10월 현재 강안남자 시즌4와 ‘무각유전자’ 두 개를 연재했다가 2014년 1월에는 강안남자만 연재했었다.
만화 공장장이라는 중의적인 의미의 비판 등을 찬사로 바꿔낸, 김성모 작가 인생의 큰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털, 용주골 등의 성인극화 작품은 취재정신을 기반으로 한 높은 수준의 고증력,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 확 바뀐 작화 등의 이유로 인해 그동안 혹평을 쏟아내던 대중들마저 팬으로 돌아설 정도. 거기에 더해 과거에 지적받았던 복붙 문제를 상당 부분 개선하였다. 안티마저도, 이 시기의 김성모는 절대 까지 않는다. 깐다고 하면 이렇게 만화를 잘 그릴 수 있는 작가가 왜 삼류 공장만화나 학원물이나 찍어내냐라고 안티하는 정도이다. 물론, 이건 용주골과 대털, 혐일류, 마신 같은 작정하고 그린 작품에 해당한다. 차후 작품에서는 이 정도 수준의 퀄리티를 갖는 작품을 보기 힘들뿐더러 상술된 명작 취급받는 작품들도 시리즈가 전개되면서 복붙 및 퀄리티 문제가 다시 대두되기 시작했다.
김성모의 역작을 접한 뒤 웹툰계에서 처절하게 망가진 모습을 본 대중들 사이에서는 악마의 재능이라는 평가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웹툰
2012년 3월 7일, 마침내 네이버 웹툰에서 돌아온 럭키짱으로 웹툰작가 데뷔를 성사하였다. 그러나…
2012년 5월 30일에 한 근성갤러와 웹툰에 대해 인터뷰한 것이 근성갤에 올라왔는데, 자신감이 넘치는 김화백의 답변에 근성갤에서는 “폭룡스러운 인터뷰”라는 반응이 나왔으나, 그동안 작가가 해온 표절이나 도장찍기식 구도 재탕에 질린 네티즌들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김성모 본인이 과거의 영광에 취했는지는 몰라도, 롤짱 관련 인터뷰에서 ‘내가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다.’, ‘모든 플랫폼에서 짱먹은 작가다.’, ‘나는 인터넷에서 말하는 병맛이나 짤방들 때문에 뜬 작가가 아니다.’ 등의 소리를 늘어놔서 구설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냥 묻히는가 싶었는데 돌아온 럭키짱의 별점이 떨어지고 있을 때 댓글에서 등장해 조악한 만화 때문에 화난 독자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10첩 반상을 차려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고 하는 오만에 찌든 발언은 덤. 다만 2018년 7월 29일 과거의 영광에 취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만화공장의 시대가 지나 이제 웹툰의 시대에 적응하려는 프로 만화가로서의 자세를 되찾고 있다. 허나 여전히 ‘촉박한 시간’을 핑계로 트레이싱 하는 모습 덕분에 말과 행동이 전혀 달랐음을 스스로 증명한 셈.
돌아온 럭키짱으로 웹툰에도 진출하였지만, 갈수록 소통 부재에 늘 있었던 재탕, 표절 의혹은 물론 진부한 전개를 여전히 이어가고 있는 탓에 초기의 막장 만화가 이미지로 회귀하는 중이다.
2013년 1월 24일 네이버캐스트에 인터뷰가 올라왔다.
이제는 LOL 만화까지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말 롤만화가 나왔다. 이 만화를 그리는데 김성모는 라이선스를 획득한 뒤에 그리는 게 아니라 일단 그려놓고 라이선스를 획득하려고 라이엇 게임즈에 갔다. 그리고 획득하지 못하자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캐릭터 이름을 바꿨다. 리 신은 리심, 신 짜오는 진짜오, 베인은 배인, 마스터 이는 미스터이, 자르반은 자루반, 가렌은 가렘, 티모는 타모 등… 그나마 저작권 침해를 피하기 위해 이름을 바꿨지만 라이선스도 없는 상황에서 마음대로 만화를 그려놓은 것도 만만찮은 병크다. 하지만 결국 라이엇과 라이선스 협의를 마쳤다.
2017년 4월 11일에 인터뷰가 올라왔다.
돌아온 럭키짱을 완결하고 인터뷰를 했다.
네이버웹툰에 차기작을 연재하기로 결정이 나, 신작 ‘고교생활기록부’를 7월 10일부터 연재하였다. 첫 반응은 상당히 호평이었다. 일단 예전에 나온 캐릭터의 도장은 하나도 없는 듯했고, 캐릭터 디자인은 촌빨 날리던 돌럭 시절을 탈피해 지금의 시대 배경에 걸맞게 달라졌으며, 분량에도 공을 들여 그전의 1점 작가라는 오명을 벗어나는 듯했다. 다만 한국의 고교생이 총, 폭탄을 다루는 등 조금 작위적인 부분도 존재한다는 평도 있긴 했지만. 그러나 슬램덩크 트레이싱 논란이 결국 트레이싱 사건으로 번져서 고교생활기록부는 연재 4회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리고 ‘무간의 늑대’라는 작품도 본인 페이스북에 공개했는데, 이건 매일 연재한다고 했다. 당시 연재처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의 고교생활기록부 트레이싱 사건으로 인해 연재가 불투명해졌다가 2020년에 겨우 공개되었다.
그러다 2018년 말 새로운 연재처가 발표되었는데, 바로 New 고교생활기록부를 네이버 시리즈에서 연재했다. 본인으로선 이미 불명예가 된 작품이지만, 이 만화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고 하는 것을 볼때 조기 중단이 꽤 아쉬웠던 듯. NEW 고교생활기록부 연재 시작 이후 다시 인터뷰가 올라왔다. 완결은 되었으나 평점은 7.4점으로 낮은 편이다.
2021년 3/4분기를 뜨겁게 달굴 웹툰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하나는 미우라 켄타로의 베르세르크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인간대전’이라는 작품이고 또 다른 한 작품은 ‘넘버 7’이라는 제목이라고 한다. ‘인간대전’의 경우에는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몇몇 부분이 공개되기도 했다.
2021년 11월 16일에 박태준 작가와 함께 ‘쇼미더럭키짱!’이라는 콜라보 신작의 연재를 네이버 웹툰에서 시작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월화수목금 연재라는 것. 그 대신 0.5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분량이 짧다.
2022년 11월 1일, 고교흥신소라는 웹툰으로 복귀하였다.
2023년 11월 22일, 신의철 작가와 함께 쿠쿠쿠쿠의 시즌2 격인 돌아온 쿠쿠짱으로 돌아왔다.
웹소설
2020년 1월 말 문피아를 통해 그레이트 헌터라고 불러라라는 작품을 20화 정도 연재했었다. 장르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헌터물. 평가는 좋지 않았고 김성모 본인도 흑역사라고 여기는지 작품이 비공개됐다.
특징 및 성향
그림체면에서는 《럭키짱》이나 《마계대전》 같은 류의 미야시타 아키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날카로운 그림체가 전기. 《빵》이나 《빵 아웃사이더》, 숨겨진 역작 《쾌산고》에서는 약간 순화된 그림체를 보여준 중기. 마지막으로 일본의 유명 극화작가 이케가미 료이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대털》이나 기타 성인만화인 후기로 나뉜다.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 건 90년대 시대 분위기 탓도 있다. 초기에 김성모는 자기 말처럼 상업주의 대본소 작가였다. 도서대여점 붐에 힘입어 잘나갈 때는 문하생을 150명 가까이 두고 작업조를 나눠 만화를 대량으로 찍어낸 것. 그러나 도서대여점 업이 쇠퇴하고 대본소 만화조차 설 자리가 없어지면서 그는 ‘성인극화 르포’로 방향 전환을 준비한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자기는 잘 준비한 편인데 미처 대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격을 많이 입었다고 한다.
《대털》에서 고퀄리티의 작화를 보여줬는데 이는 김성모 또는 그의 문하생의 실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대만에서 그림쟁이 2명을 거금으로 고용해서 작화를 시켰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또는 이현세 밑에서 어시스턴트를 하던 사람들을 대량으로 영입하여 그림 퀄리티를 높였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대털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용주골블루스, 빨판, 혐일류, 999.9마신, 4인조, 강안남자등 작화 수준이 대털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급인 만화도 수도 없이 많다. 김성모 마니아(?)라면 알 것이다. 대부분의 김성모 만화는 중반까지 높은 그림 퀄리티를 유지하다 갑자기 날림이 돼버린다는 걸… 김성모의 성인극화 초기작인 황제의 성/늑대파/용주골 등을 보면 이미 럭키짱 시절의 그림체를 탈피했으며, 용주골 블루스, 빨판 시점에서 현재에 거의 근접한 그림체가 형성되고 대털에서 완성된 것.
한국 만화계가 살아나려면 우선 작품이 많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만화 공장 시스템을 이용하여 일단 만화 자체를 대량으로 생산하여 만화의 독자층을 늘리고 그 후 작품성 있는 만화를 차근차근 선보여서 만화계를 바꿀 계획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대털》 등 자신이 그린 만화의 컷을 깡그리 재활용 및 재편집하여 따로 만들어낸 만화 《기계깡패》, 《건달IQ삼국지》 같은 작품을 보면 왠지 진심이 아니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털 1부》, 《혐일류》 등의 만화를 보면 또 나름대로 괜찮은 질을 보여 수긍하게 되기도 하고… 아마 작품 간에 일종의 차등을 두는 듯. 실제로 김성모가 처음부터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기획한 사실주의 성인 극화들의 질은 굉장한 수준이다. 《대털 1부》, 《용주골》, 《혐일류》, 《빨판》, 《999.9 마신》이 대표적인데 여기서 《대털 1부》와 《혐일류》 《999.9 마신》은 애초 대본소용으로 그린 작품이 아니므로 그의 다른 공장 만화들과 비교 대상으로 볼 수 없다. 두 작품 모두 작붕이 거의 없고 내용과 재미 또한 튼실하지만 《대털 1부》는 일간 스포츠지에 최초로 연재하는 작품이니만큼 당연히 사력을 다한 작품이고 《혐일류》는 돈 벌려고 만든 게 아니라 반일감정으로 시작한 작품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본소가 아니라 단행본용으로 계획 후 제작된 작품이다.
작중에 등장하는 지식이 어처구니없이 비상식적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지만 그런 선입견에 비해 생각보다 멀쩡한 상식도 많이 알고 있기는 하다. 작중에 나온 과장된 표현으로 욕을 먹기도 하는데 단순히 황당한 내용만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작품 안에서의 개연성과 핍진성까지 모두 깃털처럼 날려버리는 전개 때문에 혹평을 받은 것이다.
근성을 강조한다. 근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김성모 작품에서는 배틀물이라도 평범한 소년만화와는 달리 주인공이 최강자에 등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흔히 김성모의 주인공은 평균보다는 강하지만 진정한 최강자 그룹에는 다소 미치지 못하는 역량을 가진 존재로 묘사된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쓰러지지 않는 근성으로 마침내 이겨낸다. 이는 작가 김성모 자신의 페르소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주인공의 근성이 강조되는 이유는 싸워서 이겨야 할 이유가 있어서 자기보다 강한 자와 싸우더라도 항상 정의의 편에 서고 항상 옳은 말을 해주는 것이 자신의 스타일이기 때문이라고.
김성모 작품의 주인공은 양민학살만 가능한 능력치로 강적들을 이기는 수단이 맷집이다. 원조 《럭키짱》을 보더라도 랄프와의 싸움을 보면 이런 게 잘 나와 있다. 김성모 작품의 주인공들은 항상 강적을 상대로는 실컷 얻어터지다가 적이 지쳐서 이기는 홍수환식 싸움을 한다.
인터뷰를 읽어보면 김성모는 ‘남자다움’이라는 가치를 굉장히 중시하며 그것을 자기 만화의 핵심적인 주제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 남성은 한껏 폼을 잡으며 뒤틀린 남자다움에 대해서 설교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여성 캐릭터들은 대체로 수동적으로 나온다. 다만 이 뒤틀린 남자다움에 좀 지나치게 집착하는 면이 없잖아 있기 때문에 진지한 분위기에서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는 독자들이 많다. 실제로 김성모의 성격은 유명인사 중에서조차 손에 꼽히는 상남자 스타일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프랭크 밀러라는 평도 있다.
작가 본인의 성장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듯, 대털의 노광희, 여수 독고처럼 부성애가 강조되는 캐릭터도 자주 등장한다.
김성모의 만화에는 유난히 일본이 자주 등장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럭키짱》에선 산케와 마사오, 그리고 야차단 등의 일본인들이 등장해 야차단과 산케가 한국의 강자들과 싸우는 장면이 나오고 《체인빡》은 일본이 배경인 만화이다. 성인극화에서도 역시 일본은 자주 등장하는데 《빨판》에선 주인공 이석기가 야쿠자와 대립하는 장면이 나오고 《돈빨》에서 역시 야쿠자와 관련 있는 일본 사채업의 대부가 등장하고 주인공 계윤성과 손을 잡는다.
그리고 《혐일류》를 그렸다는 작가 본인의 성격으로는 그 일본에 대한 반감이 대단하다. 일본이 나올 때마다 매번 적으로 등장하며 일본을 이기는 것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내용이 노골적으로 보인다. 《체인빡》 역시 일본이 배경이지만 주인공은 재일 한국인이며 적들이 죄다 일본인이다. 김성모 작가 작품 중 순수혈통 일본인이 선한 역으로 나오는 작품은 거의 없다. 《럭키짱》의 마사오 역시 한국인 혼혈이다.
성인극화 한정으로 격투씬은 조폭 칼싸움만 나온다. 이 점은 작가 스스로 조폭 싸움에 총이 등장하면 공권력이 작정하고 조폭들을 때려 잡기 때문이라 설명해서 이해할 수 있지만, 심지어는 한국전쟁이 배경인 《태극기 펄럭이며》마저 조폭 칼싸움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곳에서조차 조폭들이 길을 막고 칼싸움을 한다. 명대사는 “총은 쏘지 마라.” 정작 조폭 칼싸움 물에서 총이 나오면 킹왕짱 절대무기로 군림한다. 배경이 한국이라 잘 안 나올 뿐이지…
네이버 웹툰에 입문한 뒤로 병맛과 급식 유머를 받아들여서 대본소 만화 시절의 감성과는 달라졌다. 대본소 시절 김화백 짤방들이 웃겨야 하는 장면이 아닌데도 뭔가가 중요한 것들이 어긋나 있는 바람에 안 웃을 수가 없는 식이였다면, 웹툰에 올라온 지금은 대놓고 웃기려고 만들어 놓는 장면들이 많아졌다. 쇼미더럭키짱! 시점에선 사실상 개그만화라고 봐도 좋을 정도다.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 그의 만화에선 말하는 등장인물들 태반이 입을 다물고 있다. 아마도 현실성과는 상관없이 그냥 등장인물들이 항상 진지하고 멋지게 보이는 걸 바라고 있는 듯. 정반대의 습관이 있는 오다 에이치로가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잘 언급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의 만화 속 등장인물 대다수는 삼백안을 지니고 있으며, 놀라거나 하는 등 감정적으로 격양될 시 사백안이 된다.
결말이 대부분 급작스럽고 어이없는 경우가 많은데 럭키짱 같은 소년만화 같은 경우는 대충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경우가 많지만(이마저도 마계대전은 주인공과 보스의 동귀어진이다)성인극화의 경우 결말이 시궁창스러우며 대부분은 주인공이 죽거나 영 좋지 못한 결말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대털 시리즈의 경우 거의 경찰에 잡히는 결말이 나온다.
굉장한 다작으로 유명하며 작품 각각 한 작품을 깊게 파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작품을 닥치는 대로 만들어낸다. 전형적인 상업적인 작가이며 돈 될만한 건 다 들고 판다. 그렇기 때문에 김성모에게서 예술성을 바라면 안 된다. 잠깐 보고 즐기는 용도로는 아주 좋은데 문화재나 인생의 역작 급으로 대우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편이다.
사시미 배틀물로 잘 알려졌지만 희한하게 주인공 혹은 주연급 인물들이 쓰는 칼을 하나같이 마검이나 멀티툴에 가깝게 생긴 괴악한 디자인으로 그린다. 전형적인 회칼의 모습을 한 사시미는 빠따, 파이프, 권총처럼 잡졸들이 쓰는 무기로 섞여서 나온다. 다만 놀라운 것은 이게 다 가공의 칼이 아니라 실존하는 것들을 모티브로 그렸다는 것.
만화 공장장
김성모 만화의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작가 본인은 스토리만 쓰고 작화는 여러 명의 문하생들을 이용하여 작업하는 이른바 ‘만화 공장’ 방식으로 단기간에 엄청나게 많은 양을 그릴 수 있는 방식이다. 전성기 때는 문하생이 100명을 넘기기도 했다. 만화 공장을 그만 둔 지금은 20명 정도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김성모의 만화를 읽는 속도보다 김화백이 그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라는 농담이 돌았을 정도로 연재속도가 빨랐으며 출판사[31]가 자신의 연재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자 아예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버렸다. 출판사 이름은 소유한 빌딩 이름을 그대로 따서 ‘자유구역’으로 지었으며 이때가 《럭키짱》을 연재하던 시절이다. 위치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5층 빌딩 건물을 하나 통째로 가지고 있는데 현재 1층에는 신협이 들어서 있다.
만화를 작업하는 분야도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도전해서 학원물(럭키짱 시리즈, 빵, 체인빡 등등), 무협지(쾌검 등), 스포츠물(토네이도(복싱), 야구(스터프 166km), 경마(999.9 마신)등), 조폭물(대털, 깡비, 4인조 등), 전쟁물(태극기 펄럭이며), 스페이스 오페라(스타크래프트)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만화를 만들어댔다. 2022년 현재까지 김성모가 손대지 않은 유일한 분야는 축구 하나뿐이다.
평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김성모가 국내 만화계에 끼친 영향은 매우 지대하다.
그런 만큼 명암이 아주 극단적인 만화가이다. 대털과 같이 독창적인 자신의 색깔과 흥미진진한 전개를 선보인 명작들을 보면 분명히 만화가로서의 실력은 손색없는 인물이나, 그 이외의 작품들은 천편일률적인 학교폭력물 혹은 조폭물 두 가지 장르밖에 없는 양산형 공장만화가 대다수라는 비판 또한 받고 있다. 과거 국내 만화계에 만연했던 일본 만화 표절 문제 또한 피하기 어렵다.
현재 김성모가 만화가로서 가장 부족하다고 지적받는 점은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돌아온 럭키짱을 필두로 웹툰에 진출했지만, 자신의 장점을 잃고 어설픈 현대식 병맛 코드를 밀어붙이다가 오히려 비난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창작자로서의 윤리의식이 의심되는 표절, 트레이싱 문제도 계속 불거지고 있다.
다만 자신은 그림만 맡고 스토리는 박태준이 맡은 쇼미더럭키짱!은 김성모 웹툰답지 않게 9점 후반대의 높은 평점을 자랑하며 호평받았다. 본인보다 팬이 그 특유의 감성을 잘 이해하고 현대적으로 어레인지하여 오히려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호평
김성모의 만화를 작품성이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세상에 질 좋은 다양한 만화가 있는데 굳이 양산형 공장장 만화를 내적으로 좋게 평가할 여지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호평받는 이유는 만화가로서의 일관성에 있다. 공장장 만화를 무슨 비판을 받아도 꿋꿋하게 수십년동안 계속 그렸고, 한국에서 돈을 많이 번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질 좋은 만화든 공장장 만화든 그 선택에 있어 일관적이게 한 우물만 파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도장 찍기식의 만화만 양산했다면 그저 그런 3류 만화가로 잊혀졌겠지만, 공장장이니만큼 돈 벌려고 양산형으로 대충 찍는 만화와 작가 본인이 각잡고 진지하게 그리는 만화의 퀄리티가 천지차이인데, 후자와 전문 영역인 성인 극화물이 결합될 경우는 놀라운 몰입감과 재미를 보여준다. 대털 1부, 용주골 블루스, 999.9 마신 등이 대표적인 예시다. 특유의 만물 조폭사시미 배틀물화나 쌈마이한 내용은 그대로지만 전개의 힘으로 단점을 찍어누르는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사실 저 쌈마이함도 가끔씩 작품 분위기랑 맞아떨어져 장점이 되기도 한다. 오히려 그 시대의 낭만이라며 호평하는 의견도 있다. 조폭물에서 무림고수와 특수부대, 마피아, 총이 맞붙는 만화로 변했음에도 오히려 그게 만화의 재미를 늘린 조폭아가씨 등이 그 예시. 그리고 이러한 수작과 평작, 망작 등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초반부의 흡입력 만큼은 긍정적으로 평가되며, 이 덕에 신작이 나올 때의 ‘일시적인’ 파급력은 가공할 수준이었다. 그의 흑역사인 돌아온 럭키짱만 해도 초반 50화 정도까지는 작품 자체의 재미만으로 즐기기엔 충분할 정도였다. 그러나 2021년말 신작인 인간대전은 연재 전부터 논란이 되었던 베르세르크 어그로와 그에 맞지 않는 빈약한 전개, 역량이 못 따라가는 난해한 연출로 시작부터 혹평들을 피하지 못했다.
특유의 꼴마초스러움과 다작을 하면서 반쯤 정신없이 써내려간 만화의 대사들은 종종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며 빵 터지는 개그,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명대사를 탄생시키곤 했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문화의 태동기부터 김성모의 만화들은 밈으로서 존재해왔고, 그 결과 한국의 인터넷 유머 문화, 인터넷 세대 만화가들에게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하생 시절에도 그가 강조하는 것처럼 근성이 대단했다고 한다. 고전적 만화가 화실은 지우개맨-배경맨-몸맨-얼굴맨 등으로 작업이 분업화 되어있고 당연히 단계적으로 급여 수준이 차이나며 대우도 달랐다고 한다. 당시 기준 지우개맨은 월급 150,000원이며 배경맨은 월급 750,000원이었다고 한다.[34] 만화가 문하생이 누구나 그렇듯 김성모도 만화가가 데생 후 펜선을 입힌 뒤, 남아있는 연필 자국을 지워주는 ‘지우개맨’으로 시작했는데, 하루 종일 지우개질을 하고 취침 시간이 되면 몰래 자기 작품을 준비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또한 배경맨이 되기 위해 고참들이 그려놓은 배경을 끝없이 따라 그리고, 좀 더 역동적인 배경을 제안하기 위해 사비로 취재도 다녔다고 한다. 본인 회고로는 경쟁 관계인 다른 문하생이 밤에 잠을 자지 않으면 본인도 자지 않고 뭔가 해야 직성이 풀렸다고 한다.
성인극화 시장에 진출했을때에도 작품의 리얼리티를 위해 신변의 위협마저 감수하고 뒷세계를 취재하러 다녔으며, 실제로 사채를 빌려서 안갚아본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이젠 부와 유명세도 제법 얻은 만화계 중견작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때에는 늘 독자들에게 감사한단 말을 잊지 않는다. 다양한 플랫폼에서 히트작을 냈다는 점 역시 흔치 않다. 보통 한 개의 플랫폼에서 하나의 히트작도 내기 힘든데, 소년만화잡지, 대본소 성인만화, 신문만화, 웹툰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히트작을 냈다.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어찌되었건, 다양한 플랫폼에서 판매량이 높은 히트작을 냈다는 건 사실이다. 또한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에 어떻게든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역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논란 및 사건 사고
팬아트 무단 도용
작가가 연재한 ‘롤 짱’에서 다른 사람의 팬아트를 무단 도용하여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도용당한 사람들이 따로 연락을 취했으나 무시당했고, 돌아온 럭키짱 댓글란에서는 김성모가 무단으로 팬아트 도용한 것이 베댓이 되었다.
다만 이후 다른 사람의 팬아트를 무단 도용한 것은 뎃셍 아티스트의 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한 달에 60회 가량 마감을 하기 때문에 감시하는데 애로사항이 꽃폈다고. 링크 이후 비공개로 전환되어 볼 수 없게 되었다.
웹소설 연재 후 무기한 중단
위에 언급한 ‘그레이트 헌터라고 불러라’를 연재했었으나 무기한 중단에 들어갔다.
웹소설 시장이 커짐에 따라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는 심히 좋지 않다. 김성모라는 이름의 유명세에 더해 침착맨의 방송에 출연했을 때 홍보를 한 덕에 1화 조회수가 무려 2만 4천에 육박하는 위엄을 보여주었으나, 2화에서는 곧바로 3천으로 급락하는 연독률을 보여주었다(…) 19화에 가서는 조회 수가 300대까지 떨어졌다.
가장 심각한 요인은 김성모의 작문 실력이다. 지문은 중언부언 부연설명이 길어 가독성을 해치고, 전개는 느리다. 대사는 하나같이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럽다. 문장부호는 엉망진창이고,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난장판 수준이다. 애초에 만화가로서도 문장이 깔끔한 편이 아니었는데 글이 전부라 할 수 있는 소설에 도전한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20회를 마지막으로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1주일간 쉬고 온다는 공지를 남겼으나, 그대로 연재 중단되었고 현재까지도 웹소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웹소설 시장과 웹소설 그 자체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뛰어든 티 역시 상당히 난다. 장르를 현대판타지와 무협으로 잡았음에도 무협적인 요소는 거의 드러나지 않고, 마치 고교생활기록부에 약간의 현대판타지를 섞은 듯한 세계관이라[35] 트렌드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작품을 이끌어가는 내러티브 자체가 너무 평면적이고 유치했다.
결론은 실력 부족. 웹툰에 대한 이해 없이 무작정 뛰어들었던 돌아온 럭키짱의 문제점이 웹소설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동탁 존경 발언 사건
삼국지에서 동탁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혔다. 동탁은 정사와 연의를 막론하고 부정할 수 없는 폭군이기 때문에 김성모의 해당 글을 보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크게 당황했다. 동탁이 한 일 중에 좋은 일이 있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작가의 말에 동조하면서 동탁을 옹호하는 리플들 또한 백미. 게다가 이유는 밝히고 싶지 않다는 글까지 덧붙인지라(=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려운 이유) 상상력을 자극하는 건 덤.
복학왕 논란 관련 언급
웹툰 복학왕에서 성상납 및 여성 비하 논란이 일어난 후, 이번 사태에 침묵하고 있는 원로 작가들을 비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정리 내용인 즉 본인의 고교생활기록부 트레이싱 논란 때는 문하생이 한 것이란 걸 알면서도 그렇게 비난했으면서 왜 지금 기안84가 조리돌림당하고 있는데 나서서 보호해 주지 않고 가만히 있느냐는 것. 이 글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김성모의 해당 발언은 기안84를 두둔하지 않는 것을 문제삼는 게 아니라 이슈를 핑계삼아 그때 나 왜 욕했냐고 화내는 것에 불과하며, 정작 김성모 자신도 기안을 직접적으로 지지하거나 두둔한 적은 없으면서 저런 것이다.
귀멸의 칼날 소감 언급
일본의 인기만화 귀멸의 칼날을 보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이후 해당 게시글은 삭제된 걸로 보인다. 스토리가 다소 부족하나 캐릭터의 사소한 서사로 감동을 주는 등 귀멸의 칼날의 장단점에 대해 상당히 디테일한 지적을 했는데, 이에 대해 귀멸의 칼날이 어느 정도 재미있는가에 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것과는 별개로 ‘다 좋은데 님이 할 말은 아닌 듯’ 이란 의견이 대세.
1월 28일자 애니메이션 극장판을 봐야한다는 혈맹들의 조언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관람평을 적어놨다. 렌고쿠와 아카자의 전투를 보며 가슴이 터지며 눈물이 앞을 가렸고 모두를 위해 홀로 싸우며 죽어간 렌고쿠를 보고 자기가 추구하는 정통소년극화의 모습을 느꼈으며 피가 끓어오르고 좋은 자극이 되었다는 극찬을 남겼다. 다만 상영 이후 사진 촬영을 올린 건 좀 아니라는 반응이 있다.
차기작 관련 베르세르크 언급
2020년 연말과 2021년 연초, 본인의 페이스북에 ‘3년간의 자숙을 끝내고 신작을 준비중’이라면서 베르세르크와 맞짱을 뜨는 작품을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이후로도 페이스북에 설정화나 작업 진행 상황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다.
이 글을 본 대부분의 독자들은 어이없다는 반응. 그도 그럴 것이 베르세르크와 맞짱뜰 작품이라며 그린 스케치가 바로 그 베르세르크의 화풍을 모작하거나 괴수의 생김새를 비슷하게 따라 그린 아류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김성모는 데뷔 후 30여년의 세월 동안 시류에 편승하는 아류로 점철된 만화 인생을 살아왔던 만큼 새삼스러울 것은 없으나, 문제는 이번에는 베르세르크와 미우라 켄타로를 들먹였다는 것이다. 그의 팬들조차 “그냥 조폭물이나 그리시라”며 손사래를 치는 중이다. 거기에 깨알같은 4대 크루 에이스 전사나 늑가리같은 부끄러움은 보는 이의 몫으로 남는 네이밍 센스는 여전하다.
영혼의 쉴드를 치고 있는 몇몇을 제외하면 반응들은 다 비슷하다.
그래서 나온 것이 2021년 11월 연재된 ‘인간대전’. 아니나다를까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한 좌우반전 복붙에 처참한 퀄리티, 말도 안되는 스토리로 3화만에 7점대가 무너졌다. 이후 50화를 딱 채우고 역시나 김성모다운 용두사미, 아니 사두사미의 결말로 급하게 마무리되었다. 후에 말하길 베르세르크 운운한 건 반쯤 어그로였다고 한다.
작품과 유행어
그는 만화를 통해 수많은 유행어와 명언들을 남겼다. 우스갯소리로 많이 넘어가고 김성모식 표현에 가려져서 그렇지 의외로 작품 내에서 강력한 의미있는 일침이 자주 날려지기도 했다.
기타
김성모 설화
한나라 시대 한 마을에 성모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려 뼛속까지 아픈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강건마(强健馬)를 탄 채 20근이 넘는 속옷을 입은 사내가 나타나 이르기를 “당신은 전사독(電死毒)에 중독되었소? 머지않아 뼈와 살이 분리되어 죽을 것이오?” 라 하더라? 이에 성모가 황급히 놀라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단 말이오!” 물으니 사내가 대답하기를 “이곳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지대호(地大湖)라는 맑은 호수가 있는데 그 근처에서만 피어나는 애로사화(涯露社花)라는 꽃의 뿌리를 캐다가 깊은 산속 옹달샘의 물과 함께 잘 섞으면 ‘강약약강강강약강중약(藥)’ 이라는 신비한 약이 만들어질 것이오? 그 약을 108일 동안 복용하면 살 수 있을 것이오?” 그 말을 들은 성모 노인은 앓아 누웠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앗싸~ 좋구나?’ 하고 덩실거리며 약을 구하러 뛰어가더라? 하지만 안타깝게 똥 싸느라 약을 늦게 먹는 바람에 결국 성모 노인은 뼈와 살이 분리되어 저승에 가서 럭키짱이나 실컷 보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
새로운 문체를 창조해내셨다?
본격 만화가 데뷔 직전에 이야기인데 엄청난 근성으로 앉아서 매일같이 그림을 그렸고 이 짓을 몇 달이나 계속하여 나중엔 산발이 된 머리가 등을 자꾸 찔러 고름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일간스포츠의 만화가 열전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한창 때의 김성모는 1km를 1분 50초대에 주파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화실에서 상금을 걸고 달리기 시합을 했을 때 김성모가 페이스 오버하는 바람에 꼴찌를 했다는 것이다.
김성모의 작업실 입구에는 ‘세계정복’ 이라는 액자 혹은 족자가 걸려있다고 한다.
작품 중 형제 사이의 우애를 강조하는 면이 많다. 이는 동생인 야맹장과의 일화 때문으로 보인다.
시 쓰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작중에 시(詩)가 등장한다. 대표작은 마계대전에 나온 폭룡의 시와 대털에서 나온 황산이 죽을 때 나오는 시(이건 딱히 제목이 없다. 굳이 붙이자면 ‘남자의 시’?)와 교강용이 칼에 맞은 상태에서 나온 시다.
과일로는 풋 사과를 선호하는 것 같다.
근성갤에 남긴 그의 족적-근성갤에 친히 글을 올렸다. 근성갤러들을 비롯한 추종자들은 김성모를 추대하는 무한 근성 계단을 쌓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현재 삭제된 상태.
럭키짱에 오너캐가 등장한다. 영화감독같이 생겼는데 럭키짱의 등장인물들을 막 부려먹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너캐가 등장인물들에게 쓰는 호칭은 만화 배우. 단행본 해당권의 맨 마지막에 딱 한번 나왔다.
그의 스타크래프트 만화는 스타크래프트 2의 테란 시나리오를 무려 10년 전에 맞추는 기염을 토했다. 레알 돋는다. 덕분에 김스트라다무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이후 캐리건이 다시 저그로 돌아간다는 설정도 겹친다.
스타 2 예언 뿐만 아니라, 단순히 보면 말도 안 되는 만화적 묘사가 나중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 있어서 이를 가지고 개드립으로 “만화로 그린게 현실에서 일어나는 작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일명 극현실주의, 예언주의 만화라고 한다.
김화백의 만화를 연재하는 일일 앱스토어 앱이 출시 하루만에 1위를 차지했다.
김화백의 만화에서 명대사, 명장면을 주제로 한 색칠공부 앱인 김성모 색칠공부가 출시되어 구글 플레이와 티스토어에 각각 등록되었다. 색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갤러리에 저장까지 된다. 색칠공부의 배경은 업데이트 될 예정이므로 전부 색 칠해봤다고 지우지 말라는 내용이 구글 플레이에 있다. 그런데 막상 설치해보면 앱 이름이 근성색칠공부다.
화백님의 개그를 교과서처럼 배울 수 있는 만화. 자동브금에 주의하자.
화백님의 개그를 교과서처럼 배울 수 있는 만화 2. 역시나 자동브금에 주의하자.
전설의 대작 빅장스타일러
대도서관의 방송에 부천국제만화축제 홍보차 게스트로 출연했다.
맥심화보를 찍은 적 있다. 물론 뒷표지이고 앞표지는 가수 메이비가 모델이었다. 아예 코너를 하나 맡아서 독자와의 인생상담 Q&A도 진행하고 있다.
축사영상. 작품 속의 이미지나 이 항목의 위에도 나와있는 맥심화보의 느낌과는 달리, 평소에는 인상이 밝은 것 같다.
인터뷰에 의하면 한 달에 하는 마감 횟수가 45회 정도라고 한다. 하루에 2번 이상 마감을 하는 경우도 꽤 흔하다는 소리인데 이건 완전히 미친 속도로 마감하는 것이다. 마감이라는 게 무작정 빠르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고교생활기록부와 돌아온 럭키짱이 있다.
이재석(만화가) 트위터를 보면 본인도 돌아온 럭키짱의 1점 드립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대털 같은 성인극화를 전문적으로 하던 시절,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듯 다니면서 수감자들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고 취재해서 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창녀촌을 드나들면서 취재하고 심지어는 사채업자에게 고의로 5000만원을 빌린 뒤 땡전 한 푼 안 갚고 6개월을 버티는 등 세상의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들과 굉장히 많이 접촉을 했고 그래서인지 지인들 중에 범죄자가 상당히 많다.
본인을 비롯해 90년대 만화잡지를 누볐던 작가들이 현 웹툰계에 패배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시대의 흐름을 캐치하지 못 하고 있다고. 공사판에서 막일도 해보고 후배에게 도움도 받으며 새롭게 근성을 다진다고 한다. 도장찍기와 트레이싱, 황당하고 엉성한 스토리로 비판받는 사람이 재미 운운하며 아직도 근자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저 글은 김성모 개인의 반성이 들어가야 할 개인적 글이라기보다는 대표적 90년대 만화가로서 90년대 만화가들의 현실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하는 것에 가깝다. 그렇기에 그 정도는 90년대 작가들 모두 힘내자는 파이팅 구호 정도로 봐야 맞지, 왜 저 글을 더 꿈도 희망도 없이 부정적으로 끝내지 않았느냐고 비난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
웹툰 연재에 대해서는 본인도 실패라는 걸 인정했다. 너무 아무 준비나 공부없이 들어와서 안좋은 꼴만 당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돌럭짱을 보면 웹툰이라기보다는 너무 스포츠신문 만화 느낌이 강하다.
2020년 2월 3일, 이말년(침착맨)이 본인 채널에서 인터뷰를 했다. 이말년 본인이 김성모의 작품세계에 대해 워낙 깊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서로간의 호흡이 잘 맞아 엄청난 고퀄리티의 인터뷰가 나왔다. 김성모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웹툰에 이어 웹소설까지 도전하면서 “작가에게 최고의 작품은 신작이다”라거나 “세상일은 결국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작가철학을 밝힌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럭키짱에서 나오는 모든 명대사는 전부 있는 없는 생각들을 모두 쥐어짜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일례로 풍호가 마영웅을 까면서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김성모는 풍호가 하나도 집중하지 않고 딴생각을 하며 대충 싸워도 마영웅 정도는 잡을 수 있는 강자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SNL 코리아에 출연하기도 했다. 모든 대사가 김성모 만화에 나오는 대사들로 점철되어 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강건마도 나온다.
교강용을 오마주한 듯한 그림체가 다음 기사에 있다.
목소리가 굉장히 남자답고 멋있다. 손종환과 민응식의 중간 정도 목소리를 낸다.
주변 사람들을 많이 챙기고 막 질러주는 성격이다. 화실에서 일하던 어시 3명에게 자신이 잘되면 집을 사주겠다고 발언한 적이 있는데 그 뒤 실제로 집 한 채씩 사주었다고 한다. 지인들을 만날때 돈뭉치를 들고 만났다가 그걸 쪼개서 지인들 주머니에 질러주고 다니던 시절이 있을 정도였다.
작품의 특성과는 동떨어진 묘사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예를 들면 쾌검의 경우 장르가 무협지임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계속 나온다. 게다가 대부분의 작품들이 이름이나 용어를 아무렇게나 마구 짓는 바람에 진지한 분위기와는 상반될 정도다. 걸푸만 하더라도 최종보스의 이름이 축농증 치료제 이름이다.
작품의 상당 수가 어두운 범죄 세계를 다루고 있으나, 본인의 지향점은 인간 찬가에 가깝다. 인생의 밑바닥에 내려갔다고 실망하지 말고 인생은 흘린 눈물의 깊이만큼 아름답다는 내용을 담은 만화를 낸 적도 있다.
꼴마초이즘이 작품들의 주제이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굶어보고 돈이 없고 남에게 짓밟히면 똑같이 가슴 속에서 증오가 끓어올라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다.”라는 입장을 보이며 범죄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온정주의적이고 미화시키는 시각을 갖고 있다.
다만 작품 내에서 동성애 같은 성소수자에 대한 취급은 별로 좋지 않다.
2021년 8월 24일, 본인의 페이스북을 통해 본인의 미담을 공개했다. 21살의 젊은 학생이 화실에 찾아와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며 돈을 빌려달라고 하자, 1학기 등록금에 달하는 돈을 흔쾌히 내줬다고 한다. 화실의 다른 식구들이 반대했음에도 학생에게 돈을 내준 이유는 “먼 예전, 내가 거울을 보며 보았던 내 눈을 그 녀석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본인도 어린 시절 가난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런 류의 미담이 많다.
나이가 꽤 많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후배 작가들과 굉장히 친하며 꼴마초적인 성향과는 별개로 작가 본인의 성격은 꽤 부드러운 편이다. 그래서 이말년, 기안84 등 웹툰 흥행의 선구자들과 꽤 깊은 친분을 쌓아서 침튜브에 자주 출연하게 되었고 그러다 알게 된 박태준과도 친분이 생겨 박태준과 함께 쇼미더럭키짱!을 연재하게 되었다.
어마어마하게 다작을 해대서 단행본만 수천 권 이상 발행한 대형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축구 만화는 단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2평 남짓한 집에 동생 둘과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가난에 지친 어머니가 가출을 한 탓에 아버지가 김 화백을 포함한 자녀 셋을 먹여살렸다고 한다. 작품에서 그렇게 근성을 강조하는 까닭은 아버지의 영향이 큰 듯하다.
워낙 초거대 작가이다 보니 월수입이 업계 최고 수준이다. 15년 전에 이미 300억 원 가까이 벌어들였으며 김성모 밑에서 어시를 하는 인원에게 1,000 ~ 1,500만 원 정도의 월급을 준다. 실제로도 김성모 본인이 “내 어시는 급여가 쫌 쎈 편이다.”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다. 김성모 어시가 무명 작가보다 훨씬 잘나가는 격이며, 이 정도 수준이기 때문에 어시에게 집을 사 주는 게 가능한 것이다. 일본도 대형 화실 치프어시가 연 3~4억까지 받는 사례가 있지만 말단 스탭은 아무리 큰 화실도 월급 4~500만 원부터 시작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일본 기준으로도 상당한 액수다.
인스타 계정이 있었으나 어느 순간 삭제되었다.
상남자 성격답게 라면도 단 한 가지만 먹는데 21세기 들어서는 오직 진라면만 먹는다. 그 전에는 신라면만 먹었고 그보다도 이전엔 삼양라면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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