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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심 코리아 2011년 2월호 표지 후면 – 양방언 [No.092]

맥심 코리아 2011년 2월호 표지 후면 – 양방언 [No.092]

표지 후면

인터뷰

이번 공연 <네오라마>는 영상과 음악이 만나는 신선한 시도라고 들었다.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그동안 내가 작업한 영상 작품 속 음악과 실제 영상을 같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해왔다. 그래서 아주 새로운 시도로 영상과 음악이 함께하는 공연을 하게 됐다.

게임 <아이온>, 애니메이션 <엠마> <천년여우 여우비> 등에 당신 음악을 입히는 작업을 많이 해왔다. 게임이나 애니는 전형적인 오타쿠 장르다. 혹시 본인도 그런 취향이 있나?

하하하. 전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원래 잘 모르는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알려고 하는 성격이다. 장르에 상관없이 그 작품과 내가 잘 어울리는지를 본다.

그래도 <아이온>은 해봤을 거 아닌가?

게임은 안 해봤고 게임 회사에 가서 출시 전 게임 시뮬레이션 체험은 해봤다. 당시 임권택 감독 영화 <천년학>의 O.S.T.도 동시에 맡아 하고 있었는데, <아이온> 제작사에 가면 스태프가 다 20대고, <천년학> 현장에 가면 감독부터 거의 모든 스태프가 50~60대였다. 전혀 다른 분위기였는데 둘 다 무척 즐거웠다.

의사를 그만두고 음악을 시작했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웠다고 들었다. 카페에서 같은 데서 연주도 했다고 들었다. 아티스트 양방언의 알바비는 얼마였나?

라이브 카페에서 1회 공연에 1만 엔(10만 원) 받았다. 예전에 아주 낡은 차를 아는 사람에게 받아 타고 다녔는데, 얼마나 낡았냐면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다가 운전자 쪽 문이 사거리 한복판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거기 있던 모든 사람이 차 안에 있던 나를 쳐다봤다. 여유 있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웃음).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위험했지만 재미있었다.

남들은 입학하기도 힘든 의대에 진학하고선 그 길을 접고 음악을 선택했으니 천재 소리 좀 들었겠다.

전혀 아니다. 그런 얘긴 처음 듣는다. 지금의 나는 천재라고 불릴 만한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릴 땐 피아노를 배우기 싫었다던데 사실인가?

난 사실 남자가 피아노 친다는 게 창피했다. 그땐 야구가 하고 싶었다. 피아니스트를 준비하던 누나가 나를 억지로 앉혀놓고 연습시키곤 했다.

그래도 결국 음악을 하게 되었으니 좋은 거 아닌가?

강제로 시키면 도망간다(웃음). 음악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억지로 배우면서 강압적으로 하는 게 천지 차이다. 자녀는 없지만 만약 아이가 있다면 억지로 시키진 않겠다.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 숨 쉬게 하고 싶다. 나에겐 어린 시절부터 무의식적으로 음악이라는 게 ‘(진행)되고 있었다’. 어쨌거나 강제로 시킬 때마다 도망갔던 건 사실이다. 그러다 중학교 시절 피아노 학원에서 어떤 아름다운 여성분을 보았다. 그 뒤로 좀 열심히 다니게 됐다(웃음).

모든 예술의 출발점은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닌가! 충분히 이해한다.

이성이라는 건 음악에서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아마 음악 하는 사람들 모두 공연장에서 ‘혹시 어떤 여자가 나를 멋있다고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거다. 그 생각이 모티브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 자신의 열정이 올라가고 원하는 것을 실천하고 실행에 옮길 원동력이 생기는 하나의 시작점이 만들어진다. 그 계기가 중요한 거다.

그나저나 중학 시절 그 여자와 말 붙여본 적이 있나?

사실 재작년에 실제로 만났다.

어땠나?

안 만나는 게 좋았다(웃음).

최근 남북한 관계가 무척 예민하다. 조총련계 학교를 다니다 한국 국적으로 바꾼 재일 교포로서 요즘의 상황이 남다를 것 같다.

걱정된다. 특히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사는 북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북한의 도발과는 전혀 무관한데도 핍박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다. 마치 9.11 테러 이후 이슬람 사람에게 가한 것과 같은? 어떤 형태로든 폭력을 행사한 사람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려 하고 당한 사람만 마음 속 깊이 기억한다. 그게 인간이다. 다만 그 증오가 연쇄적으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물론 나는 음악가이지 정치가는 아니다. 이것은 단지 개인적인 걱정이다. 하지만 음악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중요하다.

북한 음악을 들으며 자랐나?

학교에서 들려주긴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오리지널 북한 전통 음악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학교 안에서 우리말을 안 하면 때리는데, 정작 때리는 선생도 뒤돌아서면 일본말을 하는 참 복잡한 환경이었다. 그러니 북한 음악이라고 들려준다고 해도 그게 오리지널 북한 노래인지 누가 알겠나?

노래는 잘하나?

노래 잘하면 가수를 했겠지! 어릴 땐 음향에 엔지니어적인 측면으로 많은 호기심을 갖고 접근했다. 이 소리가 여기서 나와서 내 앞으로 옆으로 뒤로, 더 멀리, 혹은 부딪히고… 그런 것들. 얼마 전 혼자 유럽에 가서 여기저기 성당을 다녀왔다. 종교는 없지만 성당 가는 걸 아주 좋아한다. 소리들이 움직이고 부딪히는 것도 느껴진다. 그 공간 안에 있는 게 좋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음악 감독 칸노 요코와 당신을 비교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나는 칸노상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개성이 있으니 칸노상도 나와 다른 나름의 멋진 음악을 하고 있다. 아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분들이 그렇게 비교하는 것 같은데 인간으로서 갖는 당연한 호기심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나 자신은 그런 비교나 평가를 신경 쓰지 않는다. 주변의 평가나 비교보다 더 중요한,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고 해서 내가 음악을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평가에 신경 쓸 시간에 차라리 다른 것을 하는 데 더 시간을 쏟고 싶다.

당신도 가수 오리가(<공각기동대>의 오프닝 곡을 부른 가수)에게 곡을 주었다.

오리가와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마치 형제 같다(웃음). <공각기동대>보다 나와 먼저 작업했는데, 오리가가 그 애니에 참여하고 잘 돼서 기뻤다.

평소 음악 말고 뭘 하고 사나?

산속에 집이 있다. 거기 와이프랑 큰 개랑 같이 산다. 가끔씩 개랑 같이 뛰고… 그러다 스케줄에 맞춰 작업하러 밖으로 나오고, 들어갔다가 다시 작업하고, 피아노 치고, 작업하고 그렇게 산다. 내 일에서 마감을 지키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아, 인터뷰 중 마감이라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답답하다. 쉬운 질문 하나 하겠다. 이성을 유혹하기엔 의사일 때가 좋은가, 음악가일 때가 좋은가?

아아, 잘 모르겠다. 근데 틀에 박힌 엘리트 코스에 갇힌 사람은 재미없다. 확실히 사람은 뭔가에 빠져 있을 때가 재밌다.

당신의 다음 목표는?

영상과 음악의 만남에는 여전히 관심이 많다. 뮤지컬에도 도전한다. 아주 설렌다. 뮤지컬은 처음이다.

마지막으로 당신 음악 중 남자가 여자를 유혹할 때 BGM으로 깔면 좋을 곡을 추천해달라.

‘Rainbow Leaves’. 로맨틱한 기분에서 만든 곡이다. 아아, 내가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음악을 듣고 난 뒤는 본인들 각자의 노력에 달린 거니까.

출처

https://www.maximkorea.net/cms/contents_view.php?gocate=%EC%B6%9C%EC%97%B0%EC%A7%84&number=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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