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Home » 문성근 프로필 (배우 정당인)

문성근 프로필 (배우 정당인)

문성근 프로필 (배우 정당인)

이름문성근
文盛瑾 | Moon Sung-keun
출생1953년 5월 28일 (71세)
일본 도쿄도
본관남평 문씨
가족할아버지 문재린
아버지 문익환
어머니 박용길
큰형 문호근
누나 문영금
작은형 문의근
숙부 문동환
병역병역면제 (좌측주관절 굴곡변형)
학력서울우이국민학교 (졸업)
보성중학교 (졸업)
보성고등학교 (졸업)
서강대학교 경상대학 (무역학 / 학사)
데뷔1985년 연극《한씨 연대기》
신체175cm, A형
소속 정당더불어 민주당
경력SBS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자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이사장(2019~)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개혁국민정당 창당발기인
개혁국민정당 실행위원장
개혁국민정당 국민참여운동본부장
대통령비서실 대북 특사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국민참여운동본부장
민주통합당 수석최고위원
민주통합당 북구·강서구 을 지역위원장
민주통합당 당대표 권한대행
민주정책연구원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혁신과 통합 상임대표
국민의 명령 상임고문
조국혁신당 후원회장
종교개신교

문성근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actormoon

문성근 X

개요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정당인.

충무로의 개성과 작품성이 가장 뜨겁게 발화하던 1990년대에 예술영화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낸 연기자이다.

빼어난 마스크를 지니고 정석적인 틀 위에서 연기하던 기존 정통 연기파의 흐름을 처음으로 깨고 연극판의 중심에 있다가 영화계로 진출하여 이전에 없던 연기 스타일을 펼쳐나간 기념비적인 시초격 인물이다. 말하자면 ‘최초의 연기파 배우’로, 당대의 매체연기판에 큰 충격을 줬던 이러한 특징은 훗날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김윤석 등의 계보로 이어지며 충무로의 주류가 된다.

박광수, 장선우, 강우석, 이창동, 홍상수 등의 유명한 감독들과 함께 두루 호흡을 맞춰 경지에 오른 예술적 성취를 거둔 배우로 꼽힌다.

연기 활동

목사이자 사회운동가인 문익환의 아들로 태어나 서강대학교 무역학과에 입학했고, 연극반에서 처음 연기를 시작했다. 졸업 후 현대양행에 입사하였으나, ‘양행’이라는 회사 이름만 보고 무역회사인줄 알아 막상 들어가봤더니 중공업 계열 회사라 자기와 다소 맞지 않는다 생각해 계열사인 한라건설로 옮겨 직장을 다녔다. 그러다 ‘망하더라도 내 결정대로 살자’는 생각에 급작스럽게 직장을 그만두고 연극배우의 길을 택해 무대 한가운데에 데뷔하였다.

극단 “연우무대”에서 연기 인생을 시작한 그는 마법처럼 잘 풀리게 된다. 본인도 분명 배고픈 연극 선후배들의 삶을 알았기에 어느 정도 각오를 했는데, 첫 작품을 시작하자마자 너무 잘 돼서 배고픈 적이 없어 놀랐다고 한다. 데뷔작은 <한씨연대기>로 걸출한 완성도를 인정받았으며 해당 작품으로 백상예술대상의 신인남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배우 강신일과 함께 한 <칠수와 만수>는 연극계의 판도를 뒤흔들어놓은 전설적인 작품으로, 당시 5만 명이라는 역사상 최대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은 걸작이자 문성근의 연기력을 입증지은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방송으로 처음 데뷔한 것은 천사의 선택(1989)이다. 주 무대인 영화에 데뷔한 것은 1990년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로, 곧바로 주연을 맡았다. 해당 작품은 제43회 로카르노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지는 등 대외적으로 많은 인정을 받았다. 연극계의 중심에 있다 영화계로 넘어와 전에없던 영화연기를 발명해낸 소위 ‘연기파 배우’의 첫 계보에 해당하며, 이를 이어 두각을 나타낸 후발주자들이 송강호와 설경구 등으로 대표되는 충무로 전성기의 핵심인물들이 얼굴이 주 평가기준이 되었던 이전의 분위기와는 달리 미남형이 아님에도 큰 활약을 떨쳤으며 이 때문에 충무로 ‘얼굴의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농담도 존재한다.

문성근은 처음엔 본인이 매체 연기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해 첫 대본을 받았을 때 거절했으나, 독립영화계의 자유로운 분위기 덕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해 박중훈과 함께 출연한 박광수 감독의 <그들도 우리처럼>에도 기영 역을 맡아 출연했는데, 배우 문성근의 원형적인 모습이 담겨있으며 당대의 사회상이 반영된 어두운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그 다음 해에도 박광수 감독과 곧바로 연속으로 작업을 하게 되는데 <베를린 리포트>가 그것이다. 안성기와 함께 출연했으며 영철 역을 맡았다. 칠수와 만수의 인연으로 만났던 안성기와 함께 영화 연기까지 하며 절친한 형동생이 되었다.

MBC에서 방영한 우리들의 천국 시즌 1에도 출연했다. 최진실, 한석규, 염정아, 감우성, 배종옥 등이 조연으로 출연한다.

1991년에는 투캅스, 공공의 적 등으로 유명한 강우석의 <스무살 까지만 살고 싶어요> 라는 영화에도 출연했는데, 감동 코드가 들어있는 인간미 넘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같은 해 강수연과 출연한 당대 최고의 문제작 “경마장 가는 길”을 통해 본격적으로 충무로 개성파 배우의 정점으로서 이름을 떨치게 되는데, 그동안의 영화에서 선보인 적 없던 신선한 캐릭터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해당 작품으로 청룡영화상에서 최초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원작은 하일지의 동명 소설인데, 이 때문인지 하일지는 이 영화의 개봉 거의 직후에 출간된 자신의 소설 경마장의 오리나무에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주인공이 영화배우 문성근을 닮았다고 직접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1992년 SBS의 개국 초기에 시작된 그것이 알고싶다의 전설적인 첫 진행자이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은 1992년 3월 31일 ~ 1993년 12월 26일까지 맡았고, 복귀 후 1997년 10월 26일 ~ 2002년 5월 11일까지 또 맡았다. 그가 떠난 이후 여러 진행자가 맡았지만, 현재도 그것이 알고싶다를 상징하는 최고의 진행자로 손꼽히고 있다. 처음 하차한 이유는 영화배우 손숙이 자신이 출연한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를 보고 쓴 칼럼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의 깔끔한 이미지와 영화에서의 어리버리한 모습이 괴리가 느껴져서 적응이 안 되고 영화에 몰입하는데 30분이 걸렸다”고 한 평을 듣고 동종업계 사람도 이런데 관객들은 또 어떻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뤄졌다고 하며, 이후로 그런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일부러 센 역할만 골라 출연하기도 했다고 한다. 2002년 당시에 하차한 것은 정치적 이유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이후 2003년부터 2004년까지 KBS1에서 <인물현대사>의 진행을 맡은 바 있다. 2004년 2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게 되면서 MC를 그만뒀는데, 이 후 인물현대사는 종영까지 MC를 두지 않고 나레이션과 촬영 영상만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992년 김의석 감독의 로맨틱 코미디물 <결혼 이야기>에 조연으로 출연하기도 하였고, 90년대 TV 미니시리즈계의 역작으로 평가받는 <창 밖에는 태양이 빛났다>에 조윤석 역으로 출연했다. 사회 초년생을 다룬 MBC 드라마 <매혹>에도 김서환 역을 맡았다.

1993년에는 김희애와 함께 로맨스 영화 <101번째 프러포즈>에 구영섭 역으로 출연했다. 같은해 사회적 부조리를 다룬 <비상구가 없다>에서 오렌지족을 살해하는 청소원 동오 역을 연기했다. 1995년에야 개봉한 창고 영화로, 지존파 사건 때문에 개봉이 연기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한 한국 영화계 리얼리즘 영역에 방점을 찍은 걸작으로 평가받는 문학영화 <그 섬에 가고싶다>에 문재구/문덕배 역으로 출연, 걸출한 연기를 선보였고 박광수와 세 번째, 안성기와 두 번째로 합을 맞췄다.

1994년에는 장선우와 두 번째로 합작한 장정일 원작의 <너에게 나를 보낸다>에 도색 소설가인 나 역으로 출연했다. 해당 작품은 사회 계층의 황폐한 이면을 조롱하고 에로틱이라는 금단의 영역을 다뤄낸 파격적 작품으로, 장선우의 최고작이라는 평가까지 존재하는 수작이다. 해당 작품으로 두 번째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같은 해, 직전작에 함께 출연했던 여균동의 범죄 코미디 감독작 <세상 밖으로>에 이경영과 함께 주연했다. 고래사냥을 잇는 충무로 고전 로드무비로 폭소와 야유가 흥건히 번져있는 순수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95년 지금까지도 널리 기억되는 박광수 감독의 역작이자 일대기의 전설적 작품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출연, 극찬을 받으며 연기 인생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플래시백의 기법을 잘 살려서 만든 영화라는 평을 맡으며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는 ‘김영수’역으로 나온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조영래 변호사가 모티브가 된 인물. 이후 이명세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에 특별출연하기도 하였으며 여균동 감독과의 두 번째 합작 <맨?>에도 조연으로 출연했다.

채시라와 함께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라는 로맨스 영화에도 출연하면서 같은 해 4편의 영화에 출연한 다작 배우가 되었다.

1996년 장선우 감독이 연출하고 이정현의 신들린 연기가 화제였던 영화 <꽃잎>은 그의 최고작 중 하나로 손꼽히며 5.18 민주화운동의 아픔을 온몸으로 체현하는 ‘소녀’를 학대하는 장 역을 맞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으로 세 번째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3관왕의 쾌거를 달성했다.

1997년에는 이창동 감독의 전설적인 데뷔작 <초록물고기>에 출연, 꼬붕인 한석규를 살인교사하고, 다시 희생시켜 법망을 피해나가는 음험한 조직폭력배 두목 배태곤 역을 맡아 새로운 이미지의 명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여균동 감독의 <죽이는 이야기>라는 코미디 영화에도 주연하며 시대를 앞서간 연기를 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1998년, 8년만에 강우석 감독과 합작한 <생과부 위자료 청구 소송>에서도 추형도 역을 맡아 코미디 연기를 펼치며 열연했다. ‘남자가 바로서야 국가가 바로선다’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두 남녀가 파안대소를 하고있는 포스터가 유명하다.

2000년에는 홍상수 감독과 역사적인 첫 작업을 하게 되는데, 흑백영화 <오! 수정>에 케이블방송 PD 권영수 역할로 출연해 현실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전성기를 이어갔다. 이후 2003년, 단 두 작품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박찬옥 감독의 첫 번째 영화 <질투는 나의 힘>에서 문제의 유부남 한윤식 역을 맡아 기묘하고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연륜있게 연기했다. 주인공 박해일의 질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남자로, 열등감을 맛보여준다.

2005년에는 방은진의 장편 데뷔작인 범죄 스릴러 <오로라 공주>에 오성호 역으로 엄정화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다.

2006년 홍상수의 <해변의 여인>에서 정 대표 역으로 두 번째로 호흡을 맞췄고, 역대급 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한반도>에 총리인 권용환 역을 맡아 연기했다. 본인의 성향과는 정반대인 캐릭터를 연기한 점이 흥미롭다. 같은 해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에도 주연으로 출연했다.

2007년 범죄 액션영화 <수>에서 구양원 역으로 출연하기도 하였으며 2008년에는 청소년 문제를 다룬 옴니버스 인권영화 <시선 1318>의 단편 <릴레이>에서 교감 역으로 출연했다.

같은 해 <강철중: 공공의 적 1-1>에 이원술(정재영 분)이 경영하는 ‘거성기업’의 경쟁업체 ‘태산’의 백 회장 역으로 등장하기도 했는데 두 사람이 대치하는 장면이 굉장히 잘 뽑혀서 현재까지 유튜브 동영상으로 돌아다니며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중이다. 또한 16년만에 드라마에 복귀하여 <신의 저울>에 출연, 김혁재 역을 맡아 열연했다.

2009년에는 <실종>에 출연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밝혔듯 그렇게 하고 싶어했던 살인마 연기를 하게 된다. 노모를 모시는 판곤이라는 범죄자 역할로 나와 소름돋는 연기를 펼친다. <자명고>의 대무신왕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같은 해 김새론 주연의 독립영화 <여행자>의 의사 역으로, 한국전쟁을 다룬 <작은 연못>의 문씨 역으로 연이어 출연하며 다작했다. 또한 홍상수, 가와세 나오미, 라브 디아즈의 단편을 엮은 <어떤 방문 – 디지털 3인 3색>의 <첩첩산중>에도 상옥 역으로 출연했다.

2010년에는 홍상수 감독의 전환점이자 최고작으로 불리기도 하는 걸작 <옥희의 영화>에 주연인 송교수/송감독 역할로 출연, 명연기를 보여주며 대 호평을 들었다. 이어 <체 게바라 : 뉴맨>의 한국어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2012년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에서 신재열 판사 역으로 등장.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본인과 정반대 성향인 캐릭터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였다. 또한 홍상수 감독의 다른나라에서에서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한 안느가 기다리는 연인 문수 역을 맡아 경이로운 연기를 펼쳤다. 또 연말에는 정지영 감독과 연달아 작업하여 <남영동1985>의 윤사장 역으로 등장했다. 원래 문성근이 연기한 역할을 안성기에게 먼저 제안했는데, 당시 문성근은 정치 때문에 바빴지만 오히려 안성기가 시간이 안 되고 문성근이 시간이 났다고 한다.

2013년에는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에 재개발 업체 사장 역으로 짧지만 강렬하게 등장하며, 다음해인 2014년에는 기대작이었던 심성보 감독의 스릴러 영화 <해무>의 기관장 완호 역할을 맡아 주연했다. 악역을 많이 맡아오다 이번 영화에선 양심있는 선역으로 출연. 호평을 받은 독립영화 <도희야>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협녀, 칼의 기억>에서 무신집권기 가상의 집권자 이의명 역을 맡아 특별출연하였고, 2016년 <동주>의 정지용 역으로 특별출연했다.

2017년 홍상수 감독과 여섯 번째로 함께 작업한 영화이자 또 다른 전환기로 평가받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김민희와 함께 출연했다. 영희 역과 사랑을 나눴던 유부남 교수 상원 역할을 맞아 명실상부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고전 미스테리 형식을 따르는 스릴러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도 주연을 맡았고, 장준환 감독의 <1987>에서 안기부장 역으로 등장차기도 했다. 영화에서 이 캐릭터의 이름이 언급되진 않는데 이때 안기부장이 누구냐면 바로 전두환의 심복 중 심복이었던 장세동. 문익환의 아들이다보니 아버지인 문익환 역할을 맡는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이 무색하게 또 다시 대척점에 선 인물을 연기했다. 참고로 스텝롤이 올라갈 때 문익환 목사가 직접 등장한다. 장항준 감독의 <기억의 밤>에서도 강하늘의 아버지 역할을 연기했으며, SBS 드라마 <조작>에서 구태원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8년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서 주인공 종수의 아버지 용석의 변호사 역할로 등장했다.

같은해 드라마 <라이프>에서 상국대학교 병원의 부원장이자 정형외과장 김태상 역으로 출연했으며, 초반의 호평이 무너지는 중반부터 조승우와 함께 연기력으로 시청자를 사로 잡으면서 극을 살려냈다. 또한 <남자친구> 에서 송혜교가 맡은 여주인공 수현의 아버지이자 거물 정치인인 차종현 역을 맡았다.

2019년에는 <배가본드>에서 대한민국 국무총리 홍순조 역을 맡았고, 다큐멘터리 <북간도의 십자가>의 내레이션을 도맡기도 했다.

2020년에는 <아무도 모른다>의 아동청소년계 계장 황인범 역과 <화양연화 – 삶이 꽃이 되는 순간>의 악역인 형성그룹 회장 장산 역을 맡아 연기했다. 다음해 <우수무당 가두심>에선 명문학교로 이끈 송영고등학교 교장 경필 역으로 등장한다.

Apple TV+에서 방영 예정인 이선균 주연의 김지운 감독 연출작 <닥터 브레인>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2022년작 <무빙>에 전 안기부 2차장 민용준 역으로 출연했다.

정치 활동

조부가 문재린 목사, 부친이 문익환 목사인만큼, 1960년대 국민학생 시절부터 김대중, 김영삼 등의 거물 진보정치인들을 집에서 직접 만나고 살아왔으며, 성인이 되어 대학생활과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진보정치인들과 가까운 관계를 이어왔다. 심지어 회사생활 중에도 김대중에 대한 관계는 깊었는데,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때 휴가를 내어 친형 문의근과 직접 법원의 김대중 사건 재판정까지 찾아가서, 사건조작도 했으니 재판조작까지 생길까 우려하고 막는 의미로, 속기사처럼 김대중의 재판 중 검사, 변호사, 판사, 김대중 본인 등이 하는 이야기를 죄다 미친듯이 기록한 적도 있다. 심지어 재판 뒤 덜 적은 부분들은 김대중을 지지하여 찾아온 방청객들을 붙잡고 물어보기까지 하여 재판기록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재판에서 김대중이 한 최후변론 기록이 지금도 남아있고, 그것이 문성근과 친형 문의근의 근현대사적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그 외에도 본인이 알아 왔던 진보인사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울때 조금씩 도와주기도 했었다고 한다.

정치를 하기 전까지, 전반적으로 자신의 부친과 가까웠던 김대중을 존경하며 살았기에 동교동계 인사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상도동계와도 역시 가까웠으나 3당 합당때 멀어졌고, 전형적인 김대중 지지자 및 민주당 지지자로 살게 되었다. 2009년 김대중 서거 이후 2010년 김대중 추모 1주기 행사의 진행자가 문성근과 오정혜였다. 나중에야 후술할 내용대로 친노가 되지만, 이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된 이후에 진보정치의 미래를 생각하고 자신도 정치인이 되려하면서 포스트 김대중 시대의 지도자로서 노무현을 지지하는 걸로 갖게 된 포지션이고, 원래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30년간 어디까지나 전형적인 김대중 지지자 및 민주당 지지자였다. 그리고 지금도 기회가 될때마다 김대중에 대한 존경심을 표출하고 있기에, 유시민처럼 30대 후반~40대 초반에 김대중 총재 및 대통령에게 반감을 표현한 적도 있던 비동교동계 순수 친노와는 결이 다르며, “김대중-노무현”을 둘다 깊이 존경하는 정치인사라고 봐야한다.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유명하며,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노사모 운영과 선거운동 전반의 과정 큰 역할을 했다. 이 인연으로 훗날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노무현입니다>에 출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장식 때도 사회를 맡아서 진행하기도 했다.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이라는 인터넷 시민 운동을 주도한 적이 있다. 이후에는 ‘온라인 광장 시민의 날개’ 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진보 성향의 사람들을 모두 모아 함께 의견을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온라인 공간으로, 10억 원을 목표로 후원회원을 모집했다.

문재인과도 아주 가까워서 그와 함께 정치를 한 것은 물론이고 선거 과정에 있어서도 큰 도움을 준 사이이다. 총선때는 문성근이 희생적 출마로 부산에서 고생을 한 것에 있어 문재인이 부채감을 느껴 자서전에서 따로 언급할 정도이다. 유시민과도 친하고 매우 호의적이다.

2012년 총선에 민주통합당 후보로 부산의 북구·강서구 을 지역에 출마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도전했던 지역이기도 한데 이곳에서 결국 45.15%의 득표율로 낙선하고 말았다. 하지만 부산이 새누리당의 텃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득표율을 기록한 셈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의 창당 멤버들 중 한 사람이며 초대 당대표를 선출하는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때 후보자들 중에는 박영선, 김부겸, 박지원 등등 쟁쟁한 정치가들이 꽤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제치고 득표율 2위를 기록하는 위엄을 보였다. 득표율 1위가 당대표를 맡도록 되어 있어 수석최고위원에 머물렀지만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이 패배하자 한명숙 당대표가 그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잠시 당대표 권한 대행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김한길 의원을 필두로 하는 비주류 진영이 민주통합당이 도입했던 시민 참여 제도를 폐지하자 이에 반발하여 2013년 5월 3일 당을 떠났다. 하지만 이후 더불어민주당에 다시 복당해서 당대표 대행 및 최고위원 역임 자격으로 현재 민주당 상임고문을 역임중이다.

20대 총선 국면에서도 백방으로 민주당을 지원했으며, 당시 야권을 분열시켰던 안철수에 대해서 강도높은 비판을 하기도 했다. 진보 쪽 활동을 해왔기에 한국논단이 허구헌 날 자주 까는 연예인 중 하나이다. 본인은 이런 비난에 아버지나 할아버지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면서 그렇게 비난하는 그런 자들은 일제강점기에 대체 뭐했냐고 응수한다고 한다.

위와 같은 방송, 정치 활동 이력으로 인해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반정부인사로 낙인찍혀서, 해당 정권 기간 동안 TV와 영화에서 크게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강한 의혹만 있었을 뿐 물적 증거는 없었으나,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과 2017년 9월, 국정원 적폐청산 TF에 의해 문서화된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공개되면서 명백한 사실임이 밝혀졌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피해자

이미 1970~80년대부터 온가족이 반체제인물로 찍혀있었는데다가,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당시 정부 비판 성향의 유명인사들을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관리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는 문성근을 비롯해 김여진, 김구라, 김명곤, 김가연, 김미화, 김장훈, 김제동, 박미선, 봉준호, 배칠수, 신해철, 안치환, 양희은, 이외수, 이하늘 등 82명의 이름이 담겨있었다. 보수 정권의 탄압을 받으며 작품에 캐스팅하지 말라는 정권의 압력 때문에 배우 이력과 경제적 측면에서 모두 큰 타격을 입었고 주장해왔다.

문성근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8년 전부터 방송 출연이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며 “제 통장에 돈을 보낸 사람들은 세무조사를 하더라”며 자신과 주변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캐스팅이 됐다가 갑자기 사정(정권의 외압)이 생겼다는 이유로 캐스팅이 취소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출연한 케이블 방송 드라마 감독이 중도에 교체되고, 부친인 문익환 목사의 뜻을 교육철학으로 삼아 설립한 대안학교 ‘늦봄문익환학교’가 국정원 사찰을 받았다는 등의 의혹도 제기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주연급 배우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단역에 가까운 조연으로만 캐스팅되는 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 생활고에 시달려 집까지 팔아야 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경향신문 등 진보 성향 언론 매체들도 앞다투어 문성근을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 배우로 언급하며 그가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라 퇴출 압박을 받는 등 피해를 받았며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

박근혜 탄핵 이후 그는 적극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이를 통한 자신의 피해를 알리며 규탄해왔고, 정권 교체 후인 2017년 9월에는 이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을 추진했다. # 소송과 관련, 9월 18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참고인 조사를 위해 출석했다. 조사를 위해 출석하여 포토라인에 선 문성근은 이명박을 직접 소환 조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강도 높게 전 정권들을 작심 비판했다.

2018년 12월 3일 대법원은 문성근을 종북주의자로 매도한 극우 인사들에게 문성근에게 위자료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후 문성근은 페이스북에 이들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위자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연 25%씩 이자가 붙는다며 자신의 계좌번호를 올려 신속히 대가를 치를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라는 주장은 반박이 있다. 그는 이명박, 박근혜 보수 정권 9년 동안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그는 보수 정권 하에서 정권의 압력 때문에 주연급 거물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단역, 조연으로만 캐스팅되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상황은 다르다.

그는 1990년 데뷔 이후 노태우, 김영삼 정권 8년 동안 그는 18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영화 출연이 8편으로 이전 정권의 1/3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그러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영화 출연은 19편으로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5년 동안 그가 출연한 영화는 고작 3편에 불과했고 그중 마지막 작품인 사일런스는 제작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모양이다.

TV 출연으로 보면 그는 노태우, 김영삼 정권 10년 동안 7편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그의 TV 출연은 고작 1편에 불과했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TV 출연은 2편인데, 어쨌거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보다는 TV 출연 빈도가 2배로 늘었다. 1편에서 2편으로 늘었으니 2배로 늘어났다고? 이후 문재인 정권 시절에는 TV 출연 빈도가 크게 늘어나 5년간 9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이러한 그의 작품 활동 경력은 그가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로 피해를 큰 입었다는 주장과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 보수 정권의 외압으로 출연이 줄었다고 주장했으나, 영화 출연은 정반대였다. 그는 노태우, 김영삼 정권 시절과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도합 37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절 그의 영화 출연 편수는 10편에 불과했다. TV의 경우에도 그는 노태우, 김영삼 정권 동안 7개 프로그램에 출연했으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1개 프로그램 출연에 그쳤다. 다만 문재인 정권 이후 TV 출연이 대폭 늘어났다.

문성근은 2017년 정권 교체 후 이명박을 맹비난하며 자신과 배우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민형사상 소송을 벌여 철저히 진상을 가려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정권 교체 이후 그가 벌인 대규모 소송전에도 불구하고 명예훼손으로 위자료를 받은 것 밖에 없었다. 이후 2023년 법원은 블랙리스트 가해자들에게 문성근 등 피해자에게 금전적 손해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물론,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배상받을 수는 없으나 국가배상책임까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기존 서술은 정권교체에 편승해 소송전을 벌였다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으나, 이 사건을 기소한 것은 윤석열 지검장의 서울중앙지검장이었고 1심 판결부터 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에나 나왔다.

위와 같이 정권 성향에 따라 출연 편수를 단순 비교하는 반박은 블랙리스트 사건의 쟁점을 호도하는 왜곡에 가깝다. 단순 개수로 수가 줄지 않았다 하더라도 블랙리스트 때문에 캐스팅된 작품에서 하차했거나 출연할 수 있었던 작품에 출연하지 못했다면 블랙리스트 피해자다.

블랙리스트 피해는 아무 물증 없이 막연히 보수정권 때 작품에 출연하지 못했다는 일방적 음모론이 아니다.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재판에서 블랙리스트에 문성근이 올라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었고, 귀신 보는 형사, 처용 등의 사례 등에서 블랙리스트로 인해 촬영하던 작품에서 하차하거나 출연할 수 있었던 작품에 출연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재산적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 증명된 사안이다.

이 에 대해서 80,90년대 보수정권 때보다 민주당 정부 시절 출연작이 더 적어졌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기 출연작의 단순 개수는 줄지 않았다는 것은 어떠한 반박도 되지 못한다. 노태우 김영삼 정부는 해당 블랙리스트 사건과 무관할 뿐더러 당시 문성근은 커리어 전성기로 한창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였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노무현을 지지하며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출연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개혁국민정당,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작품활동보자 정치활동에 집중했던 시기였다.

작품활동을 거의 안 하던 시기에 TV 출연작이 1편이었으나 블랙리스트 시기 2편으로 2배나 늘었으니 블랙리스트 피해자가 아니라는 식의 반박은 수사와 재판에서 확인된 구체적인 사례들이나, 주연급 작품이 없어져 단역급 조연으로만 출연하면서 생활고를 겪어 단순 개수로는 더 많이 출연하게 됐다는 문성근 본인의 주장을 전혀 반박하지 못한다.

국정원 나체사진 유포의 피해자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문성근과 김여진의 합성 나체사진을 2011년에 국정원에서 제작해 인터넷에 유포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안겼다. 이에 대해 과거 MB 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지냈던 박형준 교수(현 부산광역시장)도 낯 뜨거운 짓이고 해서는 안 될 짓이고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개탄하였다. 박형준 교수 “국정원의 문성근·김여진 나체 사진 합성, 비판 받아야할 짓”

결국 ‘문성근·김여진 사진 합성’을 지시한 국정원 심리전단 팀장이던 유 모씨가 전격 구속되었다. 다만 합성 사진을 직접 만든 직원은 구속이 기각되었는데 유 모씨는 지시자였고 직접 만든 해당 직원은 지시를 받은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2017년 12월 14일에 유 모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이 선고되었다.

그런데 유 모씨가 2020년에 국정원 공제회인 양우회에 취업해 비상근 자문위원으로 이름을 걸어 놓고 사무실에 거의 출근하지 않고 약 6개월 동안 수백만원의 급여를 받아 왔음이 밝혀졌다.

여담

서울특별시교육감을 역임하고 있는 조희연과 인상이 닮은 편이다.

과거 결혼해서 1녀를 두고 있었으나, 1990년대 초반 이혼하고 현재는 싱글로 지낸다고 한다. 하지만 더 심하게 탄압당한 친형님들과 친누님은 이혼을 하지 않았기에, 정권탄압이 전부라고 보기는 어렵다.

팟캐스트 방송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에서 아버지 문익환 목사 편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언급한 바에 의하면 어렸을 때 경찰들이 아버지를 잡아가기 위해 문 앞을 두드리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은 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문 두드리는 소리를 싫어한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위의 문단에서도 밝혔듯 아버지인 문익환 목사를 아들이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문 목사’라고 부르는 이유는 한 가정의 아버지라기보다 민족 지도자로서의 기억이 많다보니 사람들의 호칭인 문 목사로 말하는 게 설명하기 편해 그 호칭을 쓴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친 문익환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기에, 부친이 옥중에 있을때 면회를 못 가는 시기에는 편지로 축구 같은 스포츠 경기 결과를 써서 보내기도 하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 중에는 문성근이 1970년대 문익환에게 보낸 편지 중에 “우리나라가 호주와 축구를 해서 2대1로 졌습니다. 차범근이 한골 넣었는데, 후반에 두골 먹었습니다.”라고 적힌 편지가 있다.

큰 형은 피아니스트 겸 오페라 연출가 문호근(1946~2001)이다. 1997년부터 예술의 전당에서 오페라 감독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중 2001년 급성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평소 건강했지만 갑자기 사망하여, 당시엔 돌연사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었다.

각종 영화에서 수많은 여성들(미성년자까지도)과 검열삭제를 찍었다. 게다가 꽃잎의 이정현이나 실종의 전세홍은 강간이었다. “너에게 나를 보낸다”의 정선경은 당시 파격 노출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의외로 수위가 높은 건 별로 없다.

문성근이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했던 시절에, 멘트를 하면서 카메라를 의식하기 위해 이 카메라에서 저 카메라로 몸 각도를 트는 등의 모션들로 인기가 높았고, 그 중 책상에 걸터 앉아 다리 꼬고 질문하는 모션도 있었는데, 초등학생들이 문성근의 모션을 흉내내어 책상에 앉아서 선생님한테 질문을 한다고 그 동작을 멈출수 없냐고 선생님들의 부탁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고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적이 있다.

오래 전부터 보수정권으로부터 ‘반체제 인사’로 찍혀 많은 고초를 겪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에서는 민주진보세력의 반대파인 보수정권 고위직이나 보수적 기득권층을 표상하는 배역을 자주 맡았다. ‘한반도’의 권 총리, ‘부러진 화살’의 판사, ‘남영동1985’의 사장, ‘1987’의 안기부장, ‘배가본드’의 홍순조 국무총리 등. 심지어 한반도에서 맡은 배역인 권 총리는 완전히 친일파로 묘사되는 인물이며, 노무현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어떤 역을 맡고 싶으냐는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을 끊임없이 공격했던 보수언론사 회장 역을 맡고 싶다고 답하기도 했다. 다만 영화 동주에서는 당시 절필한 문인 정지용을 맡았는데, 이게 당시 그의 처지와 비슷하다.

국정원 블랙리스트에도 올랐던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디즈니 드라마 [무빙]에서 국정원 차장으로 나온다. 비정하고 무거운 모습과 찌질한 이중적인 연기를 하였다.

2017년 7월, SBS 월화 드라마 ‘조작’에서 보수 언론사 ‘대한일보’의 상무이자 편집권을 쥔 실권자인 구태원 역을 맡게 됐으며, 그 해 말 개봉된 영화 1987에서는 민주화 운동을 탄압하는 안기부장으로 특별 출연했는데 심지어 실제 배우 본인의 부친을 간첩으로 몰아가려는 음모를 꾸미는 장면까지 나온다! 실제 모습과 극중 모습이 그야말로 극과 극인 셈인데 아무래도 그의 마스크가 높으신 분들을 표현하는데 안성맞춤인 것도 있거니와, 실제로 문성근 본인이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의 성향과 반대되는 세력(특히 조선일보)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연기 또한 쉬워서 선호한다고 한다. 2019년 tvN 드라마 자백에서도 여지없이 악역이자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커리어를 보면 알 수 있지만 보통 악역, 특히 권위주의적이거나 꼰대스러운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악역, 특히 높으신 분과 상성이 잘 맞는 편이다. 배우 본인도 인터뷰에서 조선일보 회장 역을 맡고 싶다 하는 걸 보면 악역 연기 자체를 굉장히 즐기는 모양이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면서 인상이 중후해져서 문성근이 선역을 맡는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안된다는 평을 내리는 이도 있을 정도.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북한을 특사자격으로 비밀리에 방문한 적이 있다. 이 사실은 한동안 알려지지 않다가 2011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던 문재인이 집필한 <문재인의 운명>을 통해 알려지게 되었다.

훌륭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로 평가받지만, 청룡영화상에서는 남우주연상을 3번 받은 데 비해 대종상 시상식에서는 몇 번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 모두 불발되었다. 대종상이 그동안 친보수 성향이 강했음을 감안하면 왜 문성근이 대종상에게 홀대를 받았는지 어느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직접 대종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암살’을 칭찬하기도 했다. 팟캐스트 방송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의 153회에 다시 출연했을 때, 일제 강점기와 친일반민족행위자 청산에 실패했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어두운 부분을 너무 무겁지 않게, 대중 친화적인 어조로 다룬 부분을 굉장히 높이 산다고 한다. 특히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조진웅이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고 격찬했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서울구치소로 수감된, 구속되기 하루 전날인 2017년 1월 20일 트위터로 올린 신랄한 비판글이 주목받았다.

2017년 7월 27일 군함도의 스크린 독점 문제와 관련해 “영화법을 개정, 스크린독과점, 투자제작 & 배급상영의 겸영을 금지해야” 한다는 트윗을 남겼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019년 방영/개봉한 다큐멘터리(영화) <북간도의 십자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병상에 누워있던 작은아버지 문동환 목사 시점으로 남긴 내레이션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22년 2월 7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날 문성근을 포함한 영화인 253명은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문화예술 공약을 지지하는 영화인 선언문’을 발표하고 “우리는 과거 보수 정권의 블랙리스트 암흑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한국 영화의 새로운 미래를 이 후보와 함께 만들어 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 문익환 목사를 닮아간다.

2024년 3월 SNS에 자랑스럽게 부친 문익환과 김일성이 1989년에 함께 찍은 사진을 게시하였다. 이후 조국과 조국혁신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으며 조국혁신당 측은 문성근을 조국이 어려울 때마다 불의에 맞서 행동하는 삶을 살아온 영화배우 라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