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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1995년 7월 4일 표지 – 김명곤 (No.0010)

씨네21 1995년 7월 4일 표지 – 김명곤 (No.0010)

표지

컬트영화

사전적으로 컬트(cult)란 말은 종교상의 예배(식), 제사, 유행, 숭배자(예찬자)의 무리, 이교, 사이비 종교, 종파, 기도 요법 등을 뜻한다. 이런 용어에서 기원한 컬트 영화는 제도권 영화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였으나 소수의 영화광들에 의해 다시 탄생한 영화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강렬한 판타지를 지니고 있으면서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이 많은 영화이다. 따라서 컬트 영화의 형식적인 규범이나 스타일이 그 자체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컬트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영화가 컬트 영화인가’라기보다는 ‘왜 특정한 영화가 컬트 영화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인데 컬트 영화는 관객들이 창조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컬트 영화는 종종 토드 브라우닝(Tod Browning) 감독의 〈프릭스〉(Freaks, 1932), 에드워드 우드(Edward Wood Jr.) 감독의 〈글렌 혹은 글렌다〉(Glen or Glenda, 1953), 존 워터스(John Waters) 감독의 〈핑크 플라밍고〉(Pink Flamingos, 1972), 짐 샤먼(Jim Sharman) 감독의 〈록키 호러 픽처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1975)와 같은 영화처럼 양성성, 복장 도착, 성 전환 등의 혼란스런 성을 대상으로 하거나 조지 A. 로메로(George A. Romero) 감독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 토브 후퍼(Tobe Hooper)의 〈텍사스 살인마〉(The Texas Chain Saw Massacre, 1974)처럼 과다한 폭력을 다룬다.

주류 영화도 섹스와 폭력을 다루지만 컬트 영화에서의 폭력과 섹스는 좀 더 심하게 혹은 특이하게 그것을 취급한다는 데 차이가 있다. 컬트 영화에서 사용되는 과다한 폭력과 섹스의 남용은 사회적 금기에 대항하거나 제도적인 검열, 그리고 주류 상업 영화에 대항할 수 있는 전복적인 힘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컬트 영화가 주류 상업 영화로부터 벗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컬트 영화와 예술 영화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레이저헤드〉(Eraserhead, 1977), 〈트윈 픽스〉(Twin Peaks: Fire Walk with Me, 1992)를 만든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와 같은 일군의 컬트 영화 작가들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컬트 영화는 대체로 개인적인 예술 영화와는 달리 아방가르드 영화, 실험 영화, 착취 영화 등 다양한 영화들로부터 생겨난 영화이다. 그래서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는 마이클 커티즈(Michael Curtiz)의 〈카사블랑카〉(Casablanca, 1942)가 ‘하나의 영화가 아니라 모든 영화들’이기 때문에 컬트 영화이며, 마찬가지로 미국의 컬트 영화 비평가인 짐 호버먼(Jim Hoberman)은 〈록키 호러 픽처 쇼〉가 1960년대의 성의식, 변태성의 다양한 과정과 성적인 자기의식을 퍼포먼스처럼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컬트 영화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국은 1990년대 이후 비디오의 등장과 더불어 일군의 컬트 관객층이 형성되었다. 오우삼(吳宇森)식 홍콩 영화와 잔혹하면서 엽기적인 영화들에 대한 영화 숭배 현상이 생겨났고 성에 대한 기묘한 상상력을 발휘한 김기영 감독을 컬트 영화 작가로 숭배하는 기현상을 낳기도 했다. 상업적인 측면에서 컬트 영화임을 표방하는 영화들이 등장한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컬트 영화 [cult movie, cult film, -映畵] (영화사전, 2004. 9. 30., propagan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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