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프로필 (법조인 출신 정치인)
이름 | 원희룡 元喜龍 | Won Hee-ryong |
출생 | 1964년 2월 14일 (60세) |
제주도 남제주군 중문면 중문리 (現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중문동) | |
거주지 | 인천광역시 계양구 동양동 한진해모로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아라2동 |
본관 | 원주 원씨 |
재임기간 | 제37·38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
2014년 7월 1일 ~ 2021년 8월 11일 | |
제7대 국토교통부장관 | |
2022년 5월 13일 ~ 2023년 12월 22일 |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wonheeryong_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happy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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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출신 정치인으로, 제16~18대 국회의원과 제37~38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세계지방정부연합 아시아태평양지부(UCLG ASPAC)의 대표 회장 등을 역임했다.
17대 대선 경선에서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3위를 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끊임없이 대권 잠룡으로 여겨져 왔다.
20대 대선 국면에서는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을 맡았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기획위원장을 맡다가 국토교통부장관에 임명되었다. 국토부장관 사임 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구 을에 22대 총선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패배하면서 향후 정치행보가 어둡게 되었다.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자면, 원희룡은 22대 총선이 국민의 힘에게 전체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눈치챈 뒤, 의도적으로 ‘이재명 저격수’를 자처하며 험지인 계양 을에 출마를 선언했던 것이므로, 어떻게 보면 ‘졌잘싸’로 평가될 수도 있으며, 이재명과의 대결 과정에서 자신의 체급을 키웠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약력
1976.2. 중문국민학교 졸업
1979.2. 중문중학교 졸업
1981.12. 제1회 대입학력고사 전국 수석
1982.2. 제주제일고등학교 졸업 (25회)
1982.3.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수석 입학
1989.2.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법학 학사 (82학번)
1992.10. 제34회 사법시험 수석 합격
1995.2.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1997.2.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검사
1998.3. 부산지방검찰청 검사
1999.1. 법무법인 춘추 변호사
2000.1. 양천사랑법률센터 소장
2000.2. 한나라당 양천구 갑 지구당위원장
2000.5. ~ 2004.5. 제16대 국회의원 (초선 / 서울 양천구 갑 / 한나라당)
2000.6. 제16대 국회 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
2000.6. 제16대 국회 전반기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2000.6. 제16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
2002.7. 제16대 국회 후반기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2001.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교육분과 위원
2001. 한일 미래연구회 간사
2002.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공동대표
2002. 국회 한중포럼 간사
2002.5.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사이버본부장
2002.5. 한나라당 서울시선거대책위원회 홍보본부장
2002.6. 리인터내셔날법률사무소 변호사
2002.9.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기획실 부실장
2003.7. 한나라당 기획위원장
2003. 미래산업연구회 회장
2003.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뉴미디어학 석사
2004.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최고언론과정 수료
2004.4.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원
2004.5. ~ 2008.5. 제17대 국회의원 (재선 / 서울 양천구 갑 / 한나라당)
2004.7. 제17대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위원
2004.7. 한나라당 수석최고위원
2005.8. 한국지식정보산업협회 초대회장
2007.4. 제주대학교 대학원 명예 정치학 박사
2007.6.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경선 3위)
2008.10.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대표
2008.5. ~ 2012.5. 제18대 국회의원 (3선 / 서울 양천구 갑 / 한나라당)
2008.6. 제18대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
2010.7. 제18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2009.5. 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장
2009.5. 노무현 전 대통령 장의위원회 위원장
2010.2.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한나라당 서울특별시장 경선후보
2010.6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10]
2010.7. 제22대 한나라당 사무총장
2011.2.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
2011.7. 한나라당 최고위원
2014.7. ~ 2018.6. 제37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초선 / 민선 6기 / 새누리당)
2014.9.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 자문위원
2018.7. ~ 2021.8. 제38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재선 / 민선 7기 / 무소속)
2019.8. 제13대 전국시도지사협의회 부회장
2020.2. 미래통합당 최고위원
2021.8.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경선 4위)
2022.1.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
2022.3.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
2022.5. 제7대 국토교통부장관 (윤석열 정부)
2022.8. 동국대학교 명예 행정학 박사
2024.3. 국민의힘 공동선거대책위원장
여담
독실한 개신교인이다. 장로인 아버지의 신앙을 물려받았으며 어린 시절부터 교회학교에 출석한 모태신앙이다. 학창시절 가훈을 적어내라는 과제에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작성했을 정도로 독실한 신자이다. 직분은 안수집사로 제주 중문교회와 서울 갈릴리교회에서 직분을 받았으며, 장관직 수행 이후로는 서울 온누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본인의 신앙과 간증을 고백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창시절 때부터 사격과 바둑을 즐겼다. 대학와서 학생운동 하느라 손 놓고 있었다가 검사가 된 이후 시간 날 때마다 바둑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고. 2008년 바둑TV에서 방영하던 ‘조훈현이 만난 사람’에 출연하여 조훈현 국수와 접바둑 대국을 펼친 바 있다.
고등학교 시절, 지역 라이벌 고등학교 더비 매치였던 백호기 축구대회가 다가오자 장학금 받은 걸 다 털어서 학교 상징인 ‘청룡’에 착안, 응원부대 ‘용가리’를 기획 창단하며 자교를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데 기여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원희룡이 만든 ‘용가리’ 응원단은 백호기가 열릴 때마다 모교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화기의 위험성 때문인지 현재는 하지 않고 있다.
고시생 시절에 경기도 광명시 하안동 주공아파트에 거주했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할 무렵 연수원 동기인 양영태 변호사와 공저로 ‘주관식 헌법’이라는 사법시험 수험서를 출간하여 히트를 친 적이 있다. 이들은 위 책의 성공에 고무되었는지, 위 책의 개정판을 출간하는 대신 ‘객관식 헌법’을 출간하였으나, 전작과 달리 이 책은 폭망했고, ‘주관식 헌법’ 역시 경쟁서들에 밀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 일이 매우 아쉬움으로 남았는지, 원 지사의 자기소개를 보면 정작 히트친 ‘주관식 헌법’ 대신 ‘객관식 헌법’을 저서로 거론하는 예가 있다. 양영태 · 원희룡 공저인데도, 원 지사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원희룡·양영태 공저로 잘못 기억하는 예가 많다.
신은경의 ‘무면허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의 담당 검사였다. 신은경은 인기 절정이던 23살 때인 1996년 11월 경, 무면허로 음주운전을 하다 앞서 가던 택시를 추돌하고. 다시 100m를 도주하다 길에 주차된 경찰기동대 버스를 들이받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당시 사회적 관심이 워낙 상당하기도 했고, 유명인이라고 봐주는 것 없이 엄정하게 구형을 했으나 신은경은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는다.
취미는 마라톤이다. 독일 정치인 요슈카 피셔 의 ‘나는 달린다’라는 책에 감명받고 2001년 마라톤에 입문했다고 한다. 장애를 가진 발로 오래 뛰기도 힘든데 8차례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였다. 최고기록은 2006년 3시간 59분 43초이다. 마라톤에 심취해서인지 2005년에 ‘나는 서브쓰리를 꿈꾼다’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을 발간하기도 했다.
원희룡을 한나라당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시킨 장본인은 이회창이지만 이회창에게 지시를 받아 원희룡을 직접 설득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김부겸 전 국무총리이다. 1999년, 당시 원희룡은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와 야당인 한나라당에서 모두 정계 입문 제의를 받았는데 새정치국민회의에서는 제주도 지역구에 공천을 약속하며 당시 마찬가지로 원희룡과 친분이 있던 김민석이 새정치국민희의 입당을 권유했고, 야당인 한나라당에서는 서울 지역구에 공천을 약속하며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던 김부겸이 원희룡에게 “힘들겠지만 맡아서 5년 내지 10년을 하면 답이 나올 것이다”라며 한나라당 입당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후 원희룡과 김부겸 둘 다 16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원희룡은 김부겸과 함께 여러 싱크탱크에서 활동했는데, 이 때 연을 맺게된 사람들이 남경필, 권영진, 정병국 등이라고 한다. 하지만 김부겸은 16대 국회가 끝나기도 전에 열린우리당으로 이적해 지금까지 민주당계 정당에서 활동하였으며, 문재인 정부의 국무총리로 지명된다. 원희룡은 한나라당에서 사무총장과 최고위원을 지냈고 3선 국회의원, 재선 제주지사를 지냈다.
김부겸과의 개인적인 인연과는 별개로 원희룡은 더불어민주당에겐 악몽과도 같은 존재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원희룡은 그가 치뤘던 총 5번의 선거에서 상대진영이던 민주당 후보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면서 민주당계 정당을 상대로 백전백승이라는 화려한 무패 경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24년 22대 총선 계양구 을에서 이재명에게 패해 민주당을 상대로, 아울러 본인 정치인생에서 처음으로 패했다. 현재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원희룡이 홍준표, 유승민, 오세훈등과 함께 대표적인 야권 잠룡으로 자주 거론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의외로 문희상 전 국회의장과 인연이 있다. 검사직을 그만 둔 원희룡 변호사는 이기택 의원실에서 일하던 친구를 통해 당시 야인이었던 문희상을 만나 정치에 뛰어들고 싶으니 조언을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고, 문 전 의장은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꿈이 없으면 정치를 시작하지 마라. 대통령이 되려면 고향부터 출발해서 버팀목으로 삼으라.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유시민에게 보수정당에서 자질이 훌륭한 정치인으로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정치인이다. 흔히 박형준과 유승민이 더 잘 알려져 있으나, 원희룡 또한 유시민에게 호평을 받았다. 토론에서 만났던 적 또한 있다. 사적인 관계도 홍준표처럼 유시민과 꽤 괜찮은 관계인 것으로 보인다.
2005년 3월 11일 CBS에서 방송된 ‘진중권 교수와 지만원 소장’의 ‘진보 대 보수’ 논쟁이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킨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한나라당 재선 의원이었던 원희룡은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장에게 진짜 보수의 진면목을 보여주겠다고 도전장을 내서 ‘보수 대 보수’ 맞짱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2006년 2월 경, 친일작가 김완섭은 “양심불량 대한민국은 독도를 일본에게 돌려줘라”는 자신의 발언에 악플을 단 네티즌 4,000여 명을 상대로 “명예훼손과 모독죄로 고소하겠다”고 나서서 사회적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 한나라당 재선의원이었던 원희룡이 직접 김완섭을 비판하며 네티즌들의 무료변론을 자청했다. 결국, 5월 31일에 그 네티즌들은 검찰에 의해 불기소 처분됐다.
사실 서울대 동기동문이기도 한 원희룡과 김완섭 간의 악연은 꽤 오래된 것으로, 김완섭 자신도 “원희룡 그 친구는 왜 자꾸 나만 갖고 늘어지는지 모르겠네요. 그러지 말라고 좀 전해주세요”라며 원희룡을 천적으로 취급할 정도다(출처). 이에 대해 원희룡은 “학교 다닐 때는 몰랐는데, 뭐 이런 동기가 다 있나 싶다”라고 말했다.
2007년 전두환에게 세배를 가서 신문에 나왔다.
일본의 126대 천황 나루히토와 외모가 닮았다. 특히 나루히토가 결혼할 무렵(1993년) 사진을 보면 거의 도플갱어 수준이며 신해철과도 닮았다.
2018년 5월 14일 오후 제주벤처마루에서 제주참여환경연대 · 제주의소리 공동 주최로 열린 제2공항 건설사업 단일 주제의 ‘2018 지방선거 제주도지사 후보 원 포인트(One Point) 토론회’에서 제2공항 성산읍 반대대책위원회 부위원장 김모씨로부터 날계란을 맞은 뒤 얼굴을 폭행당했다. 이후 김씨는 원 예비후보 보좌진 등에게 끌려나가며 지니고 있던 흉기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등 자해소동을 벌이고 경찰에 연행되었다. 김 부의원장의 체포에 대해 원 지사를 포함한 후보들은 범행을 저지른 김 부위원장의 선처를 호소하였으며, 이후 김 부위원장의 구속 영장이 기각되었다.
2020년 7월 즈음에 안검하수 수술을 받았다. 인상이 조금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트위터에서는 쌍꺼풀 수술 잘 되었다는 감탄(…)이 나돌자 국정감사에 불러서 어느 병원인지 물어봐야 한다는 드립이 터졌는데, 본인 계정으로 국감 증인으로 부르면 나가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드립으로 화답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문재인 대국민 모욕죄 고소 사건으로 논란을 일으키자 대통령 및 고위공직자에 대한 모욕죄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폐지를 주장했다.
2021년 7월 20대 대선 출마 때문에 제주도지사직에서 사퇴할 분위기가 잡혔는데 7월에는 7월 14일 하루를 제외하면 제주도를 벗어나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좋은 이별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말고 국회의원 선거라든지 중앙정치를 더 오래 했으면 영향력이나 이미지가 지금보다 더 좋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도지사를 맡던 2019년 8월엔 충주시/유튜브에 출연한 적이 있다.
2021년 12월에는 나무위키를 윤석열 후보의 정책 소통 기반으로 하겠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러나 나무위키가 대한민국 공당의 정책에 관하여 공신력있는 매체를 인용하는 형식이 아닌 일개 이용자가 직접 작성하는 형식으로 서술하는 것은 나무위키의 기본 방침에 위배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나무위키를 통해 윤석열의 공약을 알리는 안은 철회되었다.
종로 보궐선거 출마설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공천받지 못했다.
2022년 2월 8일, 디시인사이드 국민의힘 마이너 갤러리와 새로운보수당 마이너 갤러리에 인증글을 올렸다.
2017년 중국 톈진시에서 개최된 제2회 톈진포럼에서 중국어로 축사한 적이 있다. 2018년에는 중국 인민망에 중국어로 인사를 올린 적 있다.
1993년 원희룡이 결혼할 무렵 법륜스님이 결혼식 주례를 담당하였다. 원희룡이 학생운동과 노동운동하던 대학생 시절, 법륜스님이 불교운동을 할 때였는데 원희룡은 그 당시 최석호 법사를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며 도움과 배움을 받았고 활동도 같이 한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원희룡과 긴밀히 연락하는 사이로 보인다.
배우 이광기와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시절에도 행사때 이광기를 초대했던 적이 있고 제주도지사 시절에도 특정 행사에서 이광기를 초대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계정 맞팔을 하고 있다.
전 의정부지방검찰청 검사장, 전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2020년 서귀포시 국회의원 미래통합당 후보 강경필과 초·중·고·대 동창에 법조계 동문이다. 비슷한 사례로 초, 중까지는 아니지만 정동영과 신경민도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에 MBC 재직, 국회의원 경력이 같다.
한일의원연맹 부회장을 지낸 이력으로 일본 자민당 정치인들과 오랜 교류가 있었다. 현 일본 총리인 기시다 후미오, 현 내각부 부대신인 오노 케이타로, 전 일본 총리였던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차남으로 환경성 대신을 지낸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 야마모토 이치다 전 참의원 의원 등과 친분을 형성하고 있던 걸로 보인다.
그 악명높은 할카스를 아는 것으로 보인다.
같은 정당의 대선주자 중 유력 경쟁자로 꼽히는 홍준표가 소통 플랫폼 청년의꿈에서 원희룡에 대해 한마디 평가를 남기기도 했는데, ‘제 잘난 맛에 사는 분’ 이라고 평가했다.
사이비 종교 아가동산의 교주 김기순이 기소된 이후, 해당 사건의 공판검사로 합류했다고 한다.
배우 배도환과 닮았다. 2019년 9월에는 KBS 방송에 둘이 같이 출연해 만난 적도 있는데, 녹화현장의 전현무와 김숙도 보고 속을 정도로 닮았다고 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계양구 을에 출마선언한 뒤 계산역 근처에 사무실을 열었는데 그 며칠 전에 현역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대표가 확장이전한 사무실에서 100m 떨어진 곳이어서 화제가 되었다.
전기자동차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 듯 하다. 제주지사 부임 직후인 2014년 8월 도지사 관용차로 기아 쏘울 EV 모델을 도입했는데, 이는 전국 지방자치단체장 역사상 최초로 전기자동차를 관용차로 도입한 사례다. 또 도청 소속 관용차를 대부분 전기자동차로 교체하고 제주 내 전기자동차 보급이 원활히 되도록 관련 정책을 펼쳤다. 제주도에서 전기자동차 엑스포가 개최되도록 힘쓰는 등 제주지사 재임 시절부터 전기자동차에 관심을 많이 가진 편이었다. 국토교통부 장관에 임명된 이후에도 국토부 내 관용차를 전기자동차로 교체하도록 하고 본인도 전기자동차를 즐겨 타고 있다. 장관 퇴임 이후에도 자가용으로 전기자동차인 기아 EV9을 구매했으며, 배우자 명의의 차량도 친환경 차량에 해당하는 기아 K8 하이브리드로 등록되어 있다. 다만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계양구 을 출마를 선언한 이후 이례적으로 내연기관 차량인 쉐보레 트레일블레이저를 추가로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장관 재임 시절에 장관실 책상에만 앉아있지 않고, 현장을 자주 찾아가는 현장 밀착형 업무 스타일로 호평을 받았다. 부실공사 현장을 찾아가서 강한 메시지를 내고, 해외 건설수주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나 인도네시아 등으로 직접 출장을 가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취임 1년 동안 국내 현장 방문은 354차례, 기자간담회·브리핑은 28회, 해외 출장 거리는 11만 km에 달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