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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 아키라 프로필 (드래곤볼 작가)

토리야마 아키라 프로필 (드래곤볼 작가)

이름토리야마 아키라
鳥山明|Akira Toriyama
본명토리야마 아키라 (とりやま あきら)
국적일본
출생1955년 4월 5일
아이치현 나고야시
사망2024년 3월 1일 (향년 68세)
신체174cm, 60kg, A형
직업만화가, 게임 원화가, 디자이너

개요

일본의 만화가 겸 게임원화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대표작은 드래곤볼과 닥터 슬럼프다.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소년만화계의 전설적인 존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일본 최초로 만화가로서 일본 개인 납세금액 최상위 1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상세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의 작가이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와 몬스터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크로노 트리거』, 『블루 드래곤』에서도 원화를 맡았다. 그림 활동을 할 때의 저작권 표기에서는 보통 BIRD STUDIO의 이름으로 표기하고 있다. BIRD STUDIO의 BIRD는 토리야마(鳥山)의 토리에서 따온 것.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만화가로 서구권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일본 만화가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도 유명하며 일본 내에서 10대 부자중 한 명에 속해있던 적이 있었다. 오죽하면 세금 때문에 거주 지자체인 아이치현에서 이사도 못 가게 한다는 말도 있을 정도. 물론 실제로는 정말로 못 가게 하는건 말도 안되는 소리고, 집 앞에 공항 직통 도로를 깔아줬다는 도시전설도 사실이 아니지만, 이러한 도시전설이 생길 만큼 토리야마가 내는 납세액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건 틀림이 없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만화가로서 이 정도로 성공한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 만화가는 궁핍한 직업으로 꼽히는데 토리야마 아키라는 직업 시장의 패러다임을 깨부수고 계산 외의 수입을 얻은 사례이다. 그 예로 1992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선 미국 만화가의 최고 갑부인 찰스 M. 슐츠(<피너츠>의 원작자)보다 더 부자인 만화가라며 토리야마를 취재한 적도 있다.

아울러 나가이 고 이후로 천재 만화가라는 수식어가 딱 어울리는 인물로, 과감하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소년만화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82년도에 데즈카 오사무가 직접 자신의 후계자가 나왔다고 발언해서 화제가 되었던 일화도 있다. 이 일화 때문에 한국에선 토리야마를 2대 만화의 신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별명은 아니다. 다만 데즈카 오사무의 후계자라는 호칭 자체는 데즈카 오사무 본인이 발언했기 때문에,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수는 없으며 실제로 토리야마는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15년간 작품을 연재하면서 펑크를 낸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더구나 블로그에서도 밝힌 것이지만 귀차니즘도 가지고 있고 모든 작업을 단독으로 하며, 거의 몰아치기 식인데도 이렇다. 아무튼 대단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닥터 슬럼프가 해적판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만화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에 드래곤볼이 정식 수입되면서 1990년대와 2000년대에 걸쳐 이름을 널리 알렸다.

생애

데뷔 전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던 사고뭉치였고, 특히 동물과 탈것을 제일 좋아해서 항상 이런 것들을 그리고 놀았다고 한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극장에서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를 관람했었는데, 수준급의 영상미에 충격을 받고 “나도 저렇게 그림을 잘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점점 그림에 빠져들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포스터로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적이 있었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열중했지만, 고학년부터 영화나 TV 드라마에 빠져들면서 만화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접할 기회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그림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변하지 않아서, 중학교 졸업 후 자신의 특기인 그림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 계열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곧 졸업을 앞두게 되었을 때는 더 이상 공부하기도 싫고, “어차피 나 정도 되는 실력이면 사회에서도 곧바로 통할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서 부모님의 반대를 뿌리치고 곧바로 디자인 회사에 취업하는 길을 선택하였다. 회사에 다녔을 때는 주어진 일거리를 착착 해내긴 했으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힘들어해서 지각을 밥먹듯이 해댔고, 복장도 항상 간편하게 입고 다녀서 상사에게 자주 혼났었다고 한다. 때문에 2년 반 정도 다니다가 싫증이 나서 회사를 그만두었고, 이후로도 별다른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채 부모님에게 얹혀 살며 백수로 지내다가 금전적으로 심하게 쪼들리게 되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퇴사한 자신의 미래에 방황하던 중, 우연히 카페에 놓인 만화책에서 소년 매거진의 공모전 광고를 보게 되었다. 거기에서 우승 상금이 무려 50만 엔이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를 발견하자, 곧바로 돈을 타내기 위해서 투고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에 맞추지 못해 입상에 실패하여 결국 상금을 얻지 못했고, 오기가 생겨서 이번에는 소년 점프에 투고작을 보냈는데 역시나 떨어지고 말았다.

데뷔에서 첫 연재까지

하지만, 당시 소년 점프의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그의 투고작을 보고 재능이 있다고 느껴 원고를 더 많이 보내달라고 연락을 하였다. 당시 그가 그렸던 투고작은 그 시절 유행했던 스타워즈 같은 SF물이었는데, 데생이 뛰어나고 여러 가지의 구도를 사용해서 대상을 그렸다는 점과 효과음 등을 영어로 표현한 점이 토리시마의 눈에 띈 것이다. 이후 1년 간 500 페이지 이상의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한 뒤 1978년에 단편 <원더 아일랜드>로 데뷔했다. 다만, 당시 인기순위는 최하위를 먹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오바 츠구미와 오바타 타케시의 만화 <바쿠만>에서 나왔던 일화인 ‘편집자가 만화가의 원고를 다 보고는 눈앞에서 갈아버렸다’의 주인공이 바로 토리시마와 토리야마라는 건 아주 유명한 이야기다.

또 다시 엄청난 분량을 폐기당한 뒤 내놓은 단편이 <걸 형사 토마토>. 이 단편이 독자의 호응을 얻자 정식 연재가 결정됐다. 그리고 이 단편의 세계관을 활용해서 캐릭터들의 디자인을 조금 바꾼 뒤, 동물, 로봇, 인간, 외계인이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장편 개그 만화 <닥터 슬럼프>를 연재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원래는 만화 타이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천재 과학자인 ‘닥터 슬럼프’ 노리마키 센베가 주인공이었지만, 토리시마는 1회용 캐릭터였던 노리마키 아라레의 잠재력을 보고 그녀를 주인공으로 바꿔보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서 토리야마는 아라레가 주인공인 단편을 하나 그려와서 독자들의 반응에 따라 누구의 의견을 들을 지 결정하기로 했는데, 예상대로 반응이 매우 좋아서 아라레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만화의 인기는 아라레가 주인공이 된 이후로 더 높아지면서 대대적인 히트작 수준까지 성장했고, 토리야마 본인도 일본 납세자 순위 10위권에 들어간 최초의 만화가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달게 되었다. 1983년에는 TV아사히 토크쇼 <테츠코의 방>에 단독 출연하기도 하는 등, 20대 후반에 이미 유명 만화가의 반열에 올랐다.

연재 당시만 하더라도 코미디 만화에 있어서는 아키타 쇼텐의 주간 소년 챔피언이 독보적 위치에 있었으나, 그 독자층을 주간 소년 점프로 끌어오게 만드는 일등 공신으로서 소년 점프 1차 중흥기의 주역 중 하나로 발돋움하였다. 하지만, 높은 인기 만큼이나 스케줄도 살인적으로 늘어나서, 연재 1년 째에는 사흘에 한 번 밖에 못 잤다거나, 철야를 6일 연속으로 한 적도 있었다거나 하는 등 심한 몸고생을 하게 되었다. 어찌나 과로였는지 작업한 기억이 아예 없는 회도 있었다고. 이후 <닥터 슬럼프>는 소재 고갈을 이유로 연재 5년차가 되던 1984년에 완결이 났다. 나중에 토리시마가 밝히길, 닥터 슬럼프는 매 화마다 주제가 바뀌는 옴니버스 만화였던데다, 토리시마가 해당 회차의 개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딱지를 놓으면 그 회차 전체의 스토리를 바꿔야 했기 때문에 토리야마가 매우 힘들어 했다고 한다.

엄청 고생하긴 했지만, 데뷔하고 2년 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특유의 화풍이 이미 정립되었음이 보인다. 이후로 그림체가 자주 변하기는 해도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서 스타일이 변하는 것에 가깝다. 그림 실력은 있었어도 만화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던 문외한이 2년여의 수련으로 완전체에 가깝게 성장한 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재능을 느낄 수 있다.

사실 토리야마는 처음 만화가가 될 때, 2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이 일을 접겠다고 자신의 부모님과 약속했었는데 2년 만에 당당히 성공을 이룬 것이다.

드래곤볼과 그 전설

이후 닥터 슬럼프를 끝내고 새롭게 연재한 차기작이 바로 그 유명한 <드래곤볼>이다. 당시 토리야마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디어 문제 때문에 더 이상 만화를 이어나가기가 힘들어서 제발 완결내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하였고, 토리시마는 그의 의견을 윗선에서 전달하여 닥터 슬럼프의 완결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하지만, 총 편집자는 한창 인기를 끄는 만화를 갑자기 끝내버릴 순 없었기에 닥터 슬럼프보다 더 재밌는 만화를 가져오면 허락하겠다.는 실로 무모한 조건을 내걸었고, 이 말을 들은 토리야마는 닥터 슬럼프를 뛰어넘는 재밌는 단편을 그리기 위해 일주일 내내 매달리던 닥터 슬럼프 원고를 5일 만에 해치우고, 나머지 2일을 단편에 전념하는 등 열심히 작업에 임했다.

그러나, 내놓는 단편들마다 별 반응을 얻지 못해서 닥터 슬럼프 완결은 점점 멀어져만 갔고, 토리시마는 회의를 위해 직접 나고야에 있는 토리야마의 집으로 찾아갔다. 근데 거기에서 성룡의 영화를 틀어놓고 작업을 하는 토리야마의 특이한 모습을 발견하자, “그렇게 성룡이 좋다면 아예 무술 만화를 그려보는 게 어떠냐.”고 그에게 제안했다. 토리야마는 이 의견에 동의하여 추가로 서유기에 아이디어를 얻어와 <드래곤 보이>라는 단편을 제작했고, 이 만화는 드래곤볼의 시초가 된다.

다만, 드래곤볼은 연재 시작 극초기에는 인기 순위가 연재작 중 15위권으로 상당히 인기가 적었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연재가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으나, 당시 애니메이션 <닥터 슬럼프>의 말도 안 되는 성공을 거둔 후지 TV는 이미 연재 전부터 토리야마 아키라의 신작은 무조건 애니메이션화한다.는 계약을 이미 체결해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연재 시작과 동시에 애니메이션 제작이 들어갔다.

편집부에서는 이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 작품을 그냥 끝내버릴 수도 없었기에 결국 드래곤볼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하며, 토리시마와 토리야마 두 사람이 머리를 싸매고 회의한 결과, 오공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띤 캐릭터 크리링의 투입과 함께 천하제일무술대회에 참가하는 편이 전개되면서 드래곤볼의 인기는 급격히 치솟게 되었다. 또한 이전 드래곤볼의 악당들은 확실한 빌런이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토리시마와 토리야마는 악당이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였는데, 그러던 와중에 토리시마가 언급한 로마 제국의 네로 황제에서 영감을 얻어 상대방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하는 악당 캐릭터를 구상하게 되었고 그렇게 탄생한 캐릭터가 피콜로 대마왕이었다. 이렇게 토리야마는 만화의 장르를 자연스럽게 개그 모험물에서 액션물로 변경, 그리고 드래곤볼은 전설이 되었다.

그 결과 드래곤볼의 영향력이 일개 만화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커져 버려 연재를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지경에 달했고 연재를 쉬기라도 했다간 슈에이샤 매출에 치명타를 맞고 점프 편집부, 애니메이션 제작진, 완구회사 직원들까지 죄다 밥벌이를 잃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 피콜로 대마왕부터 늘어난 작업량은 더욱 더 증가. 셀 편 종료때 일본 문부성 차관이 토리야마를 찾아 연재를 계속 이어가달라고 부탁했다는 전설이 존재한다. 역시 만화가인 아내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출판사에서 붙여주는 어시스턴트 외엔 자신의 힘으로 그림을 그렸고, 그러면서도 10여년간 연재 펑크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드래곤볼 연재 기간 중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의 게임 캐릭터, 몬스터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 부정기 단편 연재, 그 외에도 자동차 디자인을 비롯한 각종 디자인 작업 의뢰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실로 엄청난 작업량을 훌륭하게 소화하였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나 본인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실제로는 굉장히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무리한 스케줄로 만화가들의 직업병인 건초염이 생겼기에, 15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만화만 그린 것에 진절머리가 났는지 장기연재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가끔씩 단편연재만 했다. 단편 역시도 점프 계열의 새 잡지 창간 기념 등을 이유로 출판사에서의 요청에 의한 것이 대부분으로 사실상 실질적인 만화작가 활동은 드래곤볼을 끝으로 그만두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드래곤 퀘스트 포함 다른 작업은 계속 진행해왔다.

2009년말에 완전한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드래곤볼 신극장판, 드래곤볼 슈퍼의 스토리 원안을 담당하고 있고, 직접 드래곤볼의 프리퀄인 은하패트롤 쟈코라는 단행본도 그렸다.

여담으로 작중 천하제일 무술대회에서 본인을 모티브로 한 쉔이란 캐릭으로 참가했었다.

화풍

보기만 해도 드래곤볼이 바로 떠오르는 특유의 화풍이 유명하다. 특히 눈매가 가장 특징적인 부분으로 꼽히는데, 드래곤볼과 전혀 상관없는 게임이나 만화에서 저런 형태의 그림체가 나온다면 자동으로 드래곤볼이 연상될 정도. 또한, 스크린톤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먹칠과 펜화만으로 그림을 그리는데도 불구하고 입체감을 제대로 살려내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

토리야마의 만화는 단순히 그림 실력 뿐만 아니라 훌륭한 컷 분배를 통한 가독성으로도 매우 큰 호평을 듣는다. 이는 토리시마 카즈히코가 토리야마에게 가르쳐준 것이라고 밝혔다. 만화의 속도감을 올려줄 수 있도록 공부해서 토리야마에게 전수해줬는데 감이 좋아서 빠르게 캐치했다고.

이것은 과거 1년간 500쪽 이상의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한 경험으로부터 나온 능력 아닌 능력이다. 결론적으로 이 사람은 처음 데뷔했을 때 이미 엄청난 양의 그림을 그린 적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천재라고 일컫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능보다는 엄청난 연습과 노력으로 다져진 인물이다. 사실 500쪽의 원고를 퇴짜맞고도 또 도전할수 있는 끈기와 노력의 재능만 보자면 천재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다만 여기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닌데, 이래서 자잘한 작화 미스가 많은 편. 드래곤볼의 에피소드별 비판점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작화질의 하락인데, 후반부에서는 등장인물이 짝다리나 짝눈이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꽤 생기는 편이다. 프리저 에피소드와 마인 부우 에피소드를 비교해 보면 확 드러나는 부분이다. 아마 과도한 작업량으로 생긴 피로감과 시간 절감을 위해 스케치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펜선을 그어낸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과감한 생략과 데포르메를 사용하면서도 양감 있는 화풍을 가꾸어내는 그만의 감각과 맛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얼핏 단순해보이는 그림체는 알아보기 힘들 것 같은 시점과 복잡한 장면에서도 의외로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그가 그리는 등장인물은 어떤 각도로 그려도 웬만해서는 해당 등장인물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 오토바이 등을 비롯한 기계같은 사물을 묘사하는 능력도 정평이 나 있는데, 돈이 없던 시절 갖고 싶었던 물건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만족하던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디자인으로 그림을 배웠기 때문에 전체적인 작화나 채색 등에서 균형 감각이 대단히 뛰어나고, 배경 등을 그리지 않아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구성력과 디자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토리시마는 평가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일류 메카 디자이너 못지 않은 탁월한 수준이다. 야스히코 요시카즈처럼 메카닉 디자이너로서의 능력이 숨겨져서 나오는 인물.

드래곤볼이 완결된 후에는 Mac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본격적으로 디지털로 전향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에 그리는 삽화들은 펜터치가 둥글어졌고, 채색 방식은 에어브러시 느낌이 많이 나는데, 어찌 보면 닥터 슬럼프나 초기 드래곤볼과도 유사하다. 그리고 과거보다 시간이 널널해진 영향 덕분인지 스크린톤의 비중이 상당히 늘었다. 디지털로 내놓은 최초의 작품으로는 네코마인과 카지카, 게임은 드래곤 퀘스트8부터.

다만, 아날로그 시절에 보여줬던 특유의 박력과 세밀한 묘사가 디지털 전향 이후로는 많이 죽어버린 지라 팬들에게는 오히려 과거보다 실력이 퇴보되었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림을 비교해보면 스타일이 변했다는 체감이 확 느껴질 정도. 특히 디지털 전향 초기에는 아직 신문물에 익숙하지 않았던 건지, 퀄리티가 별로인 그림들이 자주 나와서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유의해야할 점은 어디까지나 도구의 차이로 인해서 스타일이 변화했을 뿐, 그림 실력 자체가 줄어든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 디지털에 확실히 적응한 듯한 2010년대 이후의 그림들은 아날로그 못지 않은 양질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작품들이 많다.

어릴 적부터 서유기 등의 고전과 중국무협영화 등을 즐겨 보았던 탓에 액션묘사가 매우 실감나고 박력있을 뿐 아니라, ‘검술’, ‘권각술’, ‘기’나 ‘경공’ 등의 동양적 요소들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녹여넣는데도 아주 탁월하다. 단적으로 드래곤볼을 보면 각종 최첨단 장비들이 즐비한 세계관에서 무기도 없이 장풍과 권각술 등의 아날로그식으로 전투를 벌인다는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이루어냈다. 이게 더욱 놀라운 것은 분명 첨단무기 따윈 동원하지 않는 고전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음에도 전투복과 스카우터를 비롯한 보조 오브제 등등이 어우러져 오히려 더욱 세련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긴 만화인생을 통해 화풍이 세 차례 변신을 하였으나 변화가 아주 서서히 일어났기 때문에 꾸준히 읽는 독자는 그의 화풍이 변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허나 데뷔 당시 화풍(소위 1기 화풍)과 지금의 화풍을 비교해보면 같은 만화가의 그림이라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의 차이가 있다. 올드팬들은 닥터 슬럼프 연재 후기~드래곤볼 프리저 편 때까지의 부드러운 화풍인 2기 화풍을 최고로 치며, 드래곤볼 Z를 통해 유입된 팬들은 Z 후반부와 비슷한 인조인간 편과 마인 부우 편 때의 3기 화풍을 가장 선호한다. 현재의 4기 화풍은 컴퓨터로 작업하기 편하도록 선이 간결한 것이 특징인데, 2기의 아기자기한 느낌이나 3기의 역동적인 느낌에 비해 다소 뒤떨어진다는 불평을 하는 팬들도 많다. 그러나 그림체를 떠나 기본기와 구도, 전투씬의 타격감은 여전하다.

여담

원피스 작가 오다 에이치로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다. 오다 본인이 드래곤볼 광팬인 건 유명하고 원피스 10주년 당시 둘이서 대담했을 때 상당히 들떠있는게 보이며 토리야마가 잊고 있던 설정도 죄다 기억해서 역으로 설명할 정도. 소년 점프에 만화가로 지원한 것도 토리야마와 드래곤볼 영향이 크다고 한다. 애니메이션도 같은 회사에서 제작되었고 방송사와 방영 시간대도 그대로 이어받았으니 오다는 성공한 팬인 셈.

키는 174cm이며 나이대에 비해 상당한 장신이며 웬만한 일본 젊은 남성들보다 더 큰 편이다.

1982년에 만화가인 미카미 나치와 결혼했다.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고 하는데, 정작 자식들은 둘 다 아버지의 작품에 크게 관심이 없다고 한다. 아들은 아기였을 적 사진이 단행본에 실린 적이 있다. 은혼에 보낸 축전에 따르면, 딸이 어느 날 쳐다보지도 않던 드래곤볼을 갑자기 읽고 있길래 웬일로 자기 만화를 읽고 있냐고 물어봤더니, 은혼에 나온 드래곤볼 패러디를 이해하려고 본 것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딸이 은혼의 굿즈도 모을 정도로 엄청난 팬이어서 토리야마가 은혼 작가인 소라치 히데아키에게 씁쓸한 감사의 코멘트를 전했는데, 이 때 소라치는 나와라 신룡! 난 구슬이 2개 밖에 없는데도 소원을 이뤘다고오오오오!! 토리야마 선생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따님… 이랄까 공주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데, 어느 정도냐 하면 마감을 어기면 도쿄로 올려보낸다고 편집부가 엄포를 놓았는데 딱 한번 편집자(토리시마 카즈히코)가 마감이 위험했을 때 작업하는 옆자리에서 조용히 정좌하고 기다렸던 것이 무척 부담스러워 도쿄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감을 칼같이 지킨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사람 대하기 힘들어 하는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있을 법한 일화. 훗날 인터뷰를 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 중의 하나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모르고 아무 생각 없이 본명으로 데뷔한 것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얼마 없어서 전화 번호가 공개 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괴롭다고. 참고로 데뷔 초에 생각했던 필명은 미즈타니 키사쿠라고 한다.

인조인간 편을 끝으로 드래곤볼을 완결시키려고 했었는데, 이걸 우리의 문체부 장관인 일본 문부대신이 직접 찾아와서 제발 연재를 이어달라고 부탁했다는 전설이 나돌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 문체부 장관이 왔었다는 이야기는 꽤나 유명한 편.

다만, 이는 조금 와전되어 전해진 것으로, 실제로는 대신 바로 밑의 실세인 차관이 왔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만화가 박성우가 이게 진짜인지 확인하려고 일본 업계 편집 기자에게 물어봤었는데, ‘에이~ 설마 대신님이 왔겠어요?’라는 반응을 들었었고, 그래서 ‘그럼 그렇지~’라 생각하고 ‘그럼 뭐 높으신 분이 오셨다는 이야기는 왜 나온거죠?’라고 하니깐 문부성에서 오시긴 오셨습니다. 대신님 대신 차관님이었죠.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대신이든 차관이든 결국 문부성의 높으신 분들이 찾아왔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에 여전히 전설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드래곤볼의 완결된 이후로 소년 점프의 발매 부수가 100만 이상이 증발하고, 관련 업종과 미디어 믹스 또한 막대한 소실을 입었으니, 문부성마저도 저렇게 애걸복걸하는 건 딱히 호들갑이 아닐 지도 모른다.

현재의 주간 소년 점프 연재 만화가들은 대부분이 토리야마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세대라 스크린톤을 잘 쓰지 않는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을 잘 보면 토리야마처럼 펜선으로 명암을 표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만화가가 된 것이 아닌 만큼, 드래곤볼 이후로 장편 연재는 하지 않고 가끔씩 단편 연재는 하는 편인데, 본인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가벼운 개그물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마저도 점프에서는 감지덕지인지 <네코마인>의 경우, 단행본 발간시 처음부터 완전판으로 발매가 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신작이 완전판의 판본으로 처음부터 출간된 것은 아직까지는 네코마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장난기가 많은 성격인지 드래곤볼 캐릭터 이름들이 대부분 패러디란 것은 유명한 이야기고, 악역 이미지도 담당 편집자들하고 많이 비슷하다. 초기 담당인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닥터 슬럼프의 메인 악역인 닥터 마시리토와 드래곤볼 초기 악역인 피콜로 대마왕의 모델이 되었고, 2대 담당인 콘도 유는 프리저의 모델, 3대 담당인 다케다 후유토는 마인 부우의 모델이다. 위의 이미지는 드래곤볼 대전집에서 가져온 것인데, 사진 옆에 캐릭터를 배치해 놨다. 본인 말로는 의도해서 이렇게 그린 건 아니지만 평소에 시달린 무의식이 만화에 반영됐을 수도 있다며 유사성을 인정했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 몬스터 디자이너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은 토리야마는 슈에이샤 이외의 출판사의 출판물에 일러스트를 투고할 수 없는 전속 계약에 묶여 있으므로, 게임의 표지나 패키지 수록 메뉴얼 일러스트, V점프 부록 일러스트까지는 그릴 수 있지만 스퀘어에닉스가 출간하는 드퀘 관련 공략본까지는 그림을 게재할 수 없어서, 그런 류의 서적엔 본인 일러스트가 한 장도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거기다 토리야마 본인의 스케쥴 문제도 있고 해서 보통 대부분 드퀘 일러스트는 토리야마의 그림체를 똑같이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 대신 그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론 마에다 미노루, 나카츠루 카츠요시, 무라카미 유미코 등이 있다. 드퀘의 경우 위저드리같은 서양 RPG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호리이 유지의 성향 때문에 처음에는 리얼한 형태의 디자인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토리야마가 디자인을 맡으면서 슬라임으로 대표되는 드퀘 특유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호리이 유지의 러프 스케치를 보면 크리처 디자인이 그냥 대놓고 서양식 RPG였던 점을 감안해 보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슬라임 계열 모에화의 선구자. 다만 서양 RPG의 경향을 완전히 뿌리칠 수는 없어서 이런저런 소스들이 남아 있게 되었다.

2013년 제40회 앙굴렘 국제만화제에서 40주년 기념 특별상을 수상했다.

2017년 1월 초에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위의 탈세건으로 인해 기자가 방문했을 때의 모습을 보면 3년 전에 비해 상당히 살이 빠지고 얼굴이 수척해진 걸 알 수 있다. 드래곤 퀘스트 11 제작 당시에도 앞으로 디자이너 일을 더 할 수 있을 지나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고, 실제로도 공적 활동이 많이 줄어서 진짜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팬들의 우려가 커져가고 있었는데, 결국 2024년에 부고 소식이 뜨면서 걱정이 현실이 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토리야마와 동시기에 활동하던 작가들이 아직도 왕성히 활동하는 걸 보면 의아해할 수 있는데, 토리야마는 데뷔 당시를 기준으로도 만화가 중에선 고령에 속하던 인물이었고, 한창 현역이었을 때는 철야를 밥먹듯이 했을 정도로 과로를 자주 해서 생활 패턴이 심각하게 망가진 상태였다. 여기에 더해 담배도 많이 피웠던 골초이기도 했으니 건강이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던 것.

2019년 1월 미국 샌디에이고 코믹콘 인터네셔널에서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미국의 아이스너상(Eisner Award)의 명예의 전당에 후보로 지명됐다. 아쉽게도 헌액에는 실패했다.

2019년 5월 말과 함께 6월이 시작되면서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예술 문화 훈장을 표창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