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프로필 (비서실장 언론인 출신 정치인)
이름 | 정진석 鄭鎭碩 | Chung Jin-suk |
출생 | 1960년 9월 4일 (63세) |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하대리 | |
거주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
본관 | 동래 정씨 |
현직 | 대통령비서실장 국민의힘 공주시·부여군·청양군 당협위원장 한일의원연맹 회장 |
재임기간 | 이명박 정부 제4대 정무수석비서관 |
2010년 7월 16일 ~ 2011년 6월 10일 | |
제26대 국회의장비서실장 (차관급) | |
2012년 7월 4일 ~ 2012년 12월 31일 | |
제27대 국회사무총장 (장관급) | |
2013년 1월 1일 ~ 2014년 2월 28일 | |
제21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 |
2021년 8월 31일 ~ 2022년 5월 29일 | |
제21대 후반기 국회부의장 | |
2022년 7월 4일 ~ 2022년 11월 10일 | |
제40대 대통령비서실장 | |
2024년 4월 22일 ~ 현직 |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 제21대 국회 전·후반기 국회부의장,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역임했다.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 지역구는 충청남도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이다. 국민의힘에서 친윤계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조봉암, 조경규, 이재학, 장경순, 김재광에 이어 역대 6번째로 국회부의장직을 연임했으며, 홍영기, 박주선에 이어 역대 세번째로 국회부의장과 소속 정당 당수를 동시에 지낸 인물이다.
2024년 4월 22일, 사의를 표명한 이관섭 비서실장을 이어 40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다.
생애
1960년 9월 4일 충청남도 공주군(현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홍익북국민학교, 서울 보성중학교, 성동고등학교(28회),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부친을 따라 충청도, 강원도 등을 돌며 자랐다. 부친의 강원도지사 시절 강원도 춘천중학교에 다닌 적이 있다.
성동고등학교 학생회장 시절에는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의 정보기관이 청와대를 도청한 사실로 인해 정부 차원의 반미 여론이 퍼지자, 재학생들을 이끌고 신당동 로터리까지 진출하는 고교 반미 시위를 주도했다.
고려대학교 재학 중이던 1981년 10월 29일 경찰청 전투경찰순경으로 입대하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복무하였으며, 1984년 2월 2일 수경으로 만기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가족 관계
부친은 6선 국회의원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남당(南棠) 정석모(鄭石謨, 1929 ~ 2009)다. 박정희 정권에서 내무부 치안국장(현 경찰청장), 강원도지사, 충청남도지사를 지냈다.
조부 정인각(창씨 개명: 오타니 마사오 大谷正雄)은 일제강점기 당시 계룡면장을 지냈다.
모친 윤석남(尹錫男)은 파평 윤씨며,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9대 종손인 윤하중(尹昰重)의 딸이다. 그러므로 논산에 있는 명재 윤증 고택이 외가다. 참고로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윤증의 사촌 형이자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사위인 매촌(梅村) 윤박(尹搏)의 10대손이다.
부인은 충남방적 창업주이자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청운(靑雲) 이종성(李鍾聲, 1924 ~ 1995)의 차녀 이미호씨다. 이종성 일가는 학교법인 혜전재단을 소유, 청운대학교와 혜전대학교를 운영 중이다. 처남과 동서 등이 이사장,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
처조부는 네 번의 도지사를 지내면서 청백리로 이름을 날린 이기세다. 보다시피 본가, 외가, 처가까지 굉장한 내력을 자랑하는 금수저 집안이다.
언론 활동
고려대학교 졸업 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15년 간 신문 기자생활을 했다.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시절에는 1994년 아이티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전쟁통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후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신문 기자 생활을 끝내기 전까지 네 번의 백상기자대상과 두 번의 한국기자협회 기자상을 받았다.
정계 활동
2000년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부친 정석모의 지역구였던 충청남도 공주시와 연기군이 합쳐지면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시·연기군 선거구에 출마, 한나라당 이상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수석부총무를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탄핵정국에서 열린우리당 오시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고 2005년 오시덕의 선거법 위반에 의한 당선 무효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심대평과 함께 국민중심당을 창당하여 당 최고위원,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심대평이 출마를 포기하고 국민중심당이 무소속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자 이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신의 지역구인 공주시·연기군 선거구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대신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배치되어 당선되었다. 이는 해당 선거구에 자유선진당이 심대평을 공천할 것이 분명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자 당이 배려를 한 경우. 2010년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청와대 정무수석
2010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탈당함에 따라 비례의원직을 자동 상실하였다. 본래 계파색이 강하지는 않지만 범친박계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탕평인사의 차원에서 정무수석으로 임명되었다. 정무수석 재임 중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면담을 성사시키고 당내 안정과 정권 재창출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정권 재창출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정무수석 시절 통큰치킨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정진석은 ‘통큰 치킨’ 소동이 벌어지자 자신의 트위터에 관련 의견을 올려 ‘통큰 치킨 이벤트’ 포기를 이끌어내면서 당시에 ‘계사오적’ 이라는 멸칭으로 조롱받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범친박계에 약간 더 가깝기는 했으나, 의외로 이명박 및 친이계, 친이계의 인사들과도 상당히 친한 관계라고 한다. 일단 정진석은 대선 경선이 끝나고 한나라당으로 들어왔기에 계파 논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또한 계파와 관계없이 두루두루 친분이 있는 정계 마당발이라는 평이다. 본인 스스로는 친박도 친이도 아닌 JP계라고 자임하고 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공주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했으나 박종준 전 충남지방경찰청장이 공천된다. 대신 선거를 27일 앞두고 서울 험지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청에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에 밀려 석패하였다. 그 후 2013년부터 2014년까지 국회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국회사무총장
정진석은 과거 총장실에서 행해지던 업무 보고를 각 실, 국을 찾아가서 직접 받거나 국회 사무처 비정규직 직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는 등 파격적인 개혁 인사를 단행했다. 또한 드래프트 제도를 폐지해 인사 청탁의 뿌리를 뽑으려고 노력하는 등 기존 대한민국 국회 관행을 깨고 변화를 주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회의 문턱을 낮추고 국회와 국민 간 소통강화에 앞장섰다. ‘국회 생명사다리 범국민 운동’을 시작으로 ‘국회 생명사다리 상담센터’를 개설해 자살예방을 위해 국회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으며, 국회 본관에 스마트워크센터를 신설하여 행정효율을 높이고자 했고, 직접 세일즈 외교에 앞장서는 등 국회의 개혁과 변화를 이끌기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현직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안희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된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선거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48.13%의 득표율로 공주시의 현역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후보를 이기면서 4선 고지에 올랐다. 2008년 이후로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셈.
새누리당 원내대표
2016년 5월 3일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원회 의장에는 김광림이 당선되었다. 계파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새누리당에서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그가 친박, 비박 양쪽 진영에서 고르게 득표한 점이 배경으로 풀이되었다. 계파색이 옅고 19대 원외 인사로 총선 참패의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는 경선에서 나경원과 박빙 승부를 벌일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총 119표 중 69표를 얻어 43표를 얻는 데 그친 나경원 전 의원을 26표 차로 여유있게 승리하며 새누리당 출범 후 초유의 ‘원외 당선인’ 신분으로 집권여당 사령탑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5월 10일 원내대표로서, 후임 당대표가 선출되기 이전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직하게 되었다. 정진석은 “중앙선을 걷겠다”며 계파 중립을 선언했지만 취임 초반 당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는 난제를 떠맡았고, 친박과 비박계 사이에 끼어있는 ‘낀박’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며 정치적 위기도 숱하게 겪었다. 당내 다수인 친박계의 지지가 원내대표 선출에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당 혁신위원회 주요 인사들의 다수를 비박계로 구성하였다. 이에 반발한 친박계의 대대적인 보이콧으로 혁신위 구성을 확정짓기 위한 5월 17일의 당 전국위원회 개최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등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친박도 비박도 아닌 중도”라고 하며 앞으로도 친박의 대변자가 될 생각이 없다고 대립각을 세우며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유승민의 복당으로 친박계가 또다시 강하게 반발하며 원내대표직 사퇴 요구까지 거론하면서 십자포화를 받는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당내에서는 원 구성 협상, 복당 논의, 예산안 협상 등 중개국면마다 소기의 성과를 얻어낸 정진석 전 원내대표에 대해 난제를 특유의 뚝심으로 잘 풀어낸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중심을 잡고 당내 친박과 비박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며 ‘중앙선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으며 특히 취임 초기 ‘친박’이라며 눈초리를 보내던 비박 중심의 비주류 의원들은 한때 ‘최순실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정진석 전 원내대표를 오히려 만류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선출된 지도자로서 친박 이정현 전 대표 대신 ‘당대표’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친박계가 주도하는 주류와 비주류 양측에 소신 발언을 잇따라 쏟아내는 동시에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 우병우 수석 논란 등 민감한 현안에도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정치영역을 키웠다. ‘최순실 국정농단’ 논란으로 촉발된 탄핵국면에서도 ‘자유투표’를 이끌어내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숨은 공신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정진석 전 원내대표는 “보수 정치의 본령은 책임을 지는 자세라고 배웠다. 집권당은 대통령과 똑같은 무게의 책임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데 대해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온당하다”며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한편, 2016년 11월 7일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하였으며, 이 법안은 수정가결되어 2021년 2월 5일부터 시행된다.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20, 21대 총선에서 꺾었던 박수현과의 3번째 대결에서 이번에는 패했다.
공주시는 물론이고, 부여군에서도 졌으며, 청양군에서만 이겼는데, 청양군 마저 4년전에 비해 1000표차 이내인 720표차로 간신히 이겼다.
제40대 대통령비서실장
2024년 4월 총선 패배 후 장관급 직위인 대통령비서실장 후보군에 들었다.
2024년 4월 22일 대통령비서실장에 인선되었다. 낙선한 상태이다 보니 쉬지 않고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간다는 측면에서 큰 의의가 있다.
정 의원은 현직 의원인 만큼 국회의장 결재 등 사퇴 절차를 거쳐 임명될 예정이다.
이로써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비서실장 가운데 최초로 국회의원 출신 비서실장이 되었다. 경제부처 공무원 출신인 김대기, 이관섭 전 실장과 달리 5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보니 정무적인 부분에 있어서 확실히 차별화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임 비서실장들은 정무 감각이 부족하여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통령실 내부 장악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매번 메시지 일원화가 되지 않고 잡음이 나오는 등 한계가 있어 풍부한 정치 경험을 가진 정치인 출신의 비서실장을 임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함께 후보군으로 언급되던 장제원은 너무 친윤 색채가 강한데다 아들의 비행 문제 때문에 총선에서 불출마 할 정도로 가족 관련 리스크가 크고, 원희룡은 대야 투쟁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보니 임명에 부담을 느낀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과의 관계 및 어느 정도의 신뢰를 느낄 만 한 사람으로 고르다 보니 정진석 의원을 선임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