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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송의 프리렌 <주송> (12권 한정판 특별 단편)

장송의 프리렌 <주송> (12권 한정판 특별 단편)

원문

https://frieren-anime.jp/special/novel

사전 정보

奏送(주송) – 이별을 연주하다

장송의 프리렌 애니 1쿨 오프닝, YOASOBI 용사 작곡작사와 더불어 쓰인 소설

번역

1

용사 힘멜의 죽음으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중앙국 카펠레 지방. 속칭 음악의 도시라 불리는 이 소도시는 왕도에서 서쪽으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궁정음악의 초석을 다진 많은 유명 음악가들이 이 땅에서 공부했고, 저마다 지금의 악단을 만들었다.

밤낮으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공연으로 극장은 계속 붐비고 있으며, 그 흥행은 이제 중앙제국에서도 익숙한 풍경이 되었다.

교회에서 흘러나오는 찬송가에서도 문화와 종교의 우호적인 관계를 느낄 수 있었다.

고요함과 힘을 겸비한 목소리와 연주가 귀에 착착 감긴다.

이런 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마법이 숨어있다고 생각하며 프리렌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마왕 토벌의 여정에서 방문하지 못한 곳이지만, 이왕이면 처음에 들렀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도에서 동쪽으로 향하던 여정의 시작을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떠올리기도 한다.

그만큼 이 도시는 단절되고도 아름다운 곳이었다.

자갈길은 유려한 악보를, 방사형으로 펼쳐진 집들은 지휘자가 있는 악단을 연상케 했다.

마치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음악이 있는 것처럼, 이 도시 전체가 사람을 맞이하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음악과 관련된 마법도 풍부할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음악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고유한 문화에 뿌리를 둔 민간 마법은 그 자체로 수집의 의미가 있다.

악보와 악기를 형상화한 간판을 이정표로 삼아 프리렌은 산책을 이어갔다.

오페라극장이 있고, 그 옆에 박물관이 있고, 끊임없이 어디선가 소리의 율동이 들려왔다.

도시 곳곳에서 소리가 겹쳐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협화음이 되지 않았다.

문득, 그 중에서도 유난히 더 나지막한 소리가 귀에 꽂혔다.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밟는 듯한 음색이었다.

아무래도 마을 중앙에 위치한 교회 앞을 작은 마칭밴드(행진 취주악단)가 오가는 것 같았다.

소년 소녀들은 키보다 큰 금관악기와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큰 타악기를 들고 다가올 날을 위해 연습을 하고 있었다.

깃털이 달린 빨간 군모를 쓴 -아니, 씌워진- 소년은 누구보다 필사적인 모습으로 얼굴이 붉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른을 불고 있었다.

아직 나이가 들기도 전에 이 도시에서는 음악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연주하기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는 호른을 소중히 안고 연주하는 그 소리는 결코 맑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소리는 용감하게, 부드럽게 울려 퍼질 것이다.

그것은 이 도시에 어울리는 음색이라고 프리렌은 느꼈다.

작은 악단에게 등을 떠밀려 프리렌은 발걸음을 옮겼다.

나뭇잎 스치는 소리, 분수대 소리, 카페테리아에서 들려오는 단란한 소리.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자연 소리와 생활 소리가 모두 기분 좋게 조율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곳에 몇 년을 머물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한 켠에는 낡은 악기점이 있다.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모습이 눈에 잘 띄었다.

아무 생각 없이 가게에 들어가 본다. 평소에는 들르지 않을 것 같은 곳이지만, 발걸음이 묘하게 이끌린다.

삐걱거리는 문 너머로 뽀송뽀송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름답게 닦인 관악기, 먼지 하나 없는 현악기들. 그것들이 모세혈관처럼 촘촘히 놓여 있다.

혼자서 장사하는 노인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가게였다.

좁은 발판을 헤집고 안쪽으로 들어가자,

“자네”

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월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숙성된 목소리라고 프리렌은 느꼈다.

바라보니 백발을 거칠게 뒤로 묶은 노인이 가게 안쪽에서 얼굴을 내민다.

방금 전까지 악기를 손질하고 있었는지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다. 나이에 비해 탄탄한 근육이 엿보였다.

“자네는 악기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것 같군.”

모노클(외안경)을 눈에 대고 진지하게 프리렌을 바라본다.

“…… 어떻게 알아?”

“보지 못한 얼굴이니까. 음악을 사랑한 사람도, 음악에게 사랑받은 사람도, 언젠가 한 번씩은 이곳을 방문하지.”

노인은 자신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 듯이 단언한다.

“음악을 사랑한 자는 곧 악기에 홀리지. 음악에게 사랑받은 자는 내 눈이 오인하지 않아.

그래서 알 수 있어. 자네 얼굴 좀 보여주게.”

그리고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어허 참, 놀랐다. 너는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구나.”

“무슨 소리야?”

“그 귀, 그 눈빛, 그 모습, 엘프인 것 같군.”

“…… 그렇긴 한데.”

프리렌은 이야기를 쉽게 따라가지 못했다.

“너 같은 사람이 가졌으면 하는 게 있어.”

‘기다리게’라고 한 마디 하고는 발걸음을 돌려 가게 안쪽에서 작은 나무상자 하나를 꺼내왔다.

거기서 손바닥만한 오카리나 같은 악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복잡한 디자인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마추어 눈에도 분명히 들어왔다.

“메글리히다.” *(1)

“메글리히?”

“이명은 ‘불가능’이다. 습득하는 데 백 년이 걸리는 악기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악기는 호른이라고 들은 적이 있는데…”

프리렌은 아까 보았던 마칭밴드의 소년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 소년이 꽤나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보통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이야. 이 악기는 원래 엘프들이 만든 악기야. 너는 모르는 것 같은데.”

“그렇구나. 몰랐어. 하지만 그런 녀석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프리렌은 오랜 세월을 여가시간에 보내는 동족을 알고 있다.

“우리 증조부가 그것을 물려받아 구조를 분석했어. 미약한 마력을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계속 부어주지 않으면

소리조차 낼 수 없는 모양이다. 이 악기는 제대로 된 소리를 내기까지 십 년이 넘게 걸린지.

한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려면 노련한 마법사라 해도 50년은 족히 걸릴 게야.”

“헤에”

프리렌은 관심의 유무를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다.

“하지만 백 년 동안 갈고닦은 끝에 내는 그 소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들은 적이 있네.”

실제로 노점상 주인도 목숨을 걸고 습득에 도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력이 없는 그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리를 내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숙련된 사람은커녕 아직 불 수 있는 사람조차 나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구매자를 찾아 팔려고 내놓은 것이다.”

가격표를 들여다보니 놀라서 눈이 커질만한 값이 적혀 있다.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금액이니, 프리렌이 가지고 있는 노잣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다.

애초에 프리렌이 살 생각이 없었다. 다만, 같은 엘프가 긴 인생의 한 단면을 악기라는 형태로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어떤 엘프였을까, 왜 그것을 인간에게 건넸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장난의 범주를 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인간의 짧고 덧없는 일생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악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메글리히의 연주를 듣고 싶어서 이곳에 있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음색을 계속 추구해 왔지.

엄청난 세월 동안, 계속 말이다. 음악을 사랑한 사람, 혹은 음악에 사랑받는 사람 중 누군가가 이루어낼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

이제 그 꿈도 이루지 못할 꿈이지만, 이렇게 엘프의 너를 만나게 된 것은 여신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

프리렌이 거절하려 하자, 그가 가로막았다,

“대금은 필요 없어.”

“그건 안 돼.”

“너 같은 엘프에게 맡겨야 한다.”

노점주는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 눈빛에는 이루지 못할 꿈을 누군가에게 강요하려는 오만함이 아닌, 불순함 없는 희망이 담겨 있었다.

“……”

망설임 끝에 프리렌은 대답했다.

“구매자가 없으면 생각해 볼게. 이런 물건은 정말 필요한 사람이 사야 하는 거니까.”

“…… 그렇군. 다시 오게. 꼭 오게.”

“또 올게. 여기 한동안 머무를 예정이니까.”

노점주는 다시 한 번 확인하듯 떠나는 프리렌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 이름이 뭔가?”

“프리렌”

“좋은 이름이다. 음악이 사랑하는 이름이야.”

* 1: 원문은 メークリヒ(메에쿠리히)이고 독어로는 möglich(뫼글리히) ‘가능한’이라는 뜻.

2

악기점을 나서자 황혼이 도시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프리렌은 낮과 밤 사이에 이 도시의 곡조가 바뀌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활기찬 낮도, 소리 없는 한밤중도 아닌, 밤을 생각하는 편안함이 바람처럼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식사라도 해야겠다고 프리렌은 생각했다.

힘멜과 함께 여행할 때면 항상 힘멜이 식당을 정했었다.

프리렌 일행이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지 않아도, 그 음식이 있는 식당을 찾아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어떻게 알아? 식사 자리에서 한 번은 물어본 적도 있다.

“너희들은 생각한 게 바로 얼굴에 드러나니까.”

그렇게 말하며 힘멜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하이터의 얼굴은 시궁창 빛이군.”

아이젠은 옆의 술꾼을 힐끔 쳐다본다.

“뭐라고요?”

하이터는 언데드 같은 얼굴로 프리렌을 쳐다본다. 아이젠과 프리렌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술에 취한 모양이다.

“술 냄새.”

프리렌이 일축하자 힘멜이 웃었다.

“프리렌, 난 이렇게 넷이서 밥을 먹는 게 무엇보다 즐거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는 것도 모처럼의 만남이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그게 답이 되는지 당시에도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도 비슷한 분위기의 가게였구나, 눈앞에 있는 식당을 보며 생각했다.

파를란테라는 이름의 그 가게는 처음 들어선 것 같지 않은 차분한 곳이었다.

“힘멜은 무엇을 좋아했을까?”

돌이켜보면, 힘멜은 항상 자신의 요리를 가장 마지막에 주문했다.

프리렌 일행과 다른 요리이거나, 네 명이 나눠 먹기 편한 요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자신이 먹는 음식을 조금씩 나눠 먹으며 ‘한 번에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 게 더 즐겁지 않겠어?’라고 말했다.

기억나는 것만으로도 여러 곳에서 다 같이 밥을 먹고는 했다.

바다가 있는 도시에서는 해산물을, 야영지에서는 산나물이나 수렵육을 먹었고, 그 땅의 특산물을 특히 좋아했다.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함께 간 사람들과의 공통된 추억이 되지.

잊고 있다가도 그곳에 가서 그 지역의 음식을 먹으면 되살아나. 그런 식으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떠올라 프리렌은 웨이터를 부른다.

“이 가게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면 힘멜이 놀랄까? 아니면 그마저도 이미 다 알고 있다며 ‘얼굴에다 써 있다’고 웃어넘길까?

웨이터는 경건하게 메뉴판을 넘긴다.

“열 개의 계란으로 만든 루프 오믈렛이 명물입니다. 4인분인데, 4분의 1로 줄여서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 그대로 줘. 다 못 먹으면 가져갈게.”

유명 음악가도 좋아했다는 그 요리는 생각보다 커서 테이블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언젠가 떠들썩했던 식탁을 떠올리며 혼자만의 밤이 깊어간다.

3

한 달간 머물렀지만, 마도구 가게와 거리 풍경에 발이 묶여 작은 마을의 전모를 파악하지 못했다.

악기점을 지날 때마다 가게 주인은 열심히 프리렌의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두세 번씩 인사말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프리렌으로서는 특별히 곤란한 일은 없었지만, 왠지 오늘은 조금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시내 중심부에서 가까운 곳에 음악가들의 기념 동상이 늘어선 거리가 있었다.

유명한 사람도 있고, 프리렌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 행렬의 끝자락에 어울리지 않는 동상을 발견했다.

바이올린을 든 힘멜의 흉상이었다. 아마도 마왕을 처치한 후 혼자서 이웃나라를 여행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 같다.

“…… 여기에도 왔었구나.”

무심코 프리렌은 중얼거렸다.

턱받이에 얹은 표정은 눈을 감고 있지만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좋은 일을 하는 장인의 손에서 나온 것이겠지.

또 꽤 많은 시간을 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백여 가지가 넘는 용사상 중에서도 이색적인 완성도다.

“저런 악기도 연주할 수 있었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한 말인데, 뒤에서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힘멜님 말씀이 맞네요.”

돌아보니 목소리의 주인공은 할머니였다. 목소리가 젊어 보여서 그런지 외모와 인상이 꽤나 차이가 난다.

잘 통하는 목소리로 그녀는 계속 말했다.

“프리렌 님이시죠?”

“……?”

프리렌은 자신을 향한 말을 몇 초간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소리야?”

“예전에 힘멜 님이 이곳에 오셨을 때 말씀하셨어요.”

노파는 곡예를 하듯 목소리 톤을 능숙하게 구사하며 힘멜과 당시 그녀의 모습을 재현했다.

“언젠가 이곳에 프리렌이라는 마법사가 찾아올 거야. 그 때를 대비해서 표식이 될 수 있는 동상을 만들고 싶어.”

“표식이라고요? 힘멜님 앞에서는 모두들 발걸음을 멈추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그런 건가요?”

“그래.”

노파는 기침을 한 번 하고 작은 연극을 끝냈다. 의외로 목소리 흉내를 잘 내서 그런지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물어보니 예전에는 곡마단에서 대표 배우*(1)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속이 꽉 찬 목소리였다.

“늦었습니다. 저는 프레테*(2)라고 합니다. 프리렌 님을 만나서 혼자서 흥분하고 말았어요. 부끄럽습니다.”

목소리 톤을 바꾸고 연기할 때와는 다르게 볼을 붉게 물들인다.

“좋은 것을 볼 수 있었어.”

“그럼 다행이네요”

프레테는 꽃처럼 활짝 웃는다.

“동상도 만든 의미가 있었던 것 같네.”

“힘멜님은 아직 그 매력이 다 전달되지 않았다고 한탄하셨지만”

“힘멜이라면 그렇게 말하겠지.”

프리렌은 동상의 상쾌하게 흐르는 머리카락에 묻은 녹을 가지고 있던 헝겊으로 닦아낸다.

“‘동상의 녹을 깨끗하게 제거하는 마법’ 같은 게 있으면 편할 텐데……..”

“저도 도와드릴게요.”

“괜찮아. 그냥 마음대로 하는 거니까. 그래서 힘멜은 왜 그런 말을 한 거야?”

녹이 어느 정도 제거되고 본래의 웃음이 돌아왔을 때 물으니, 노파는 신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프리렌님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요.”

너무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는 바람에 프리렌은 조금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 보수는 어떤 거야?”

“‘소리를 책에 기록하는 마법’의 마도서입니다.”

순간, 프리렌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아, 할게.”

* 1: 대표 배우로 번역한 원문에는 화형(花形)이라고 되어있음. 사전 검색해서 대충 맞춰넣음

* 2: 아마 플루트 인 듯? Flöte(피리)

4

“시전자가 죽을 때까지 풀리지 않는 마법을 풀고 싶다고?”

프리렌은 노파의 말을 반복하는 형식으로 되물었다.

“그건 힘들어. 불가능에 가까워.”

“‘하지만 프리렌이라면 반드시 해낼 수 있겠지’라고 힘멜님은 말씀하셨어요.”

“터무니 없는 소리를.”

“그리고 부끄럽게도 그 술사라는 것이 바로 저입니다.”

“말을 이해할 수 없네. 무슨 뜻이야?”

“순서를 따라 이야기해야겠군요.”

노파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출생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카펠레 지방이 아닌 곳의 마법사 집안에서 태어났고, 전쟁을 싫어하는 부모님이 마법을 이용한 곡마단을 시작하면서 이곳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원래 마법 곡마단에 들어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교육을 받아서 당시에는 여러 가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하나의 기억을 지우는 마법’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남용하면 무서운 마법이지만, 이 마법은 자신에게만 걸 수 있다는 제한이 있는 마법이었다.

그 효용에 대해서는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죽는 순간 주마등처럼 기억을 떠올린다는 설을 주장했고, 또 어떤 사람은 영원한 어둠에 묻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아무튼 신비로운 마법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 마법을 익힌 열다섯 살의 어느 날, 그녀는 그 마법을 자신에게 걸었다.

그 이후 기억의 조각을 하나 잃어버린 채 지금에 이른다.

“즉, 내가 자신에게 걸었던 망각의 마법을 풀고 싶어요.”

“어떤 기억을 지웠어?”

“그건 모르겠어요. 지워버렸으니까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잇는다.

“…… 그래도 뭔가 중요한 것을 실수로 잃어버린 게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잃어서는 안 될 기억을 그 순간의 격정과 몸에 밴 마법에 맡겨 묻어두었다면, 적어도 죽기 전에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안해요, 이기적인 부탁이라고 생각하겠죠?”

노파는 마침내 나이에 걸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힘멜 님이 이 도시에 오셨을 때, 어떤 기회에 이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자 프리렌 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프리렌 님이라면 분명 어떻게든 해결해 주실 거라고요.”

프리렌을 바라보며 노파는 호소한다.

“제발 제 부탁을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제게 남은 깜빡임 같은 이 짧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내고 싶어요.”

유창하게 말하는 노파의 말을 곁눈질하던 프리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어 숙소를 빌렸다.

흥겨운 음악이 들리던 술집에서도 소리가 사라진 심야, 마도서를 넘기던 프리렌에게 어느 날의 일이 떠올랐다.

5

“너에겐 이 여행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겠지?”

힘멜이 말했다.

시장에서 야채를 집어 들 듯 자연스럽고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도 여기까지 오면 모든 게 그리워지네.”

마왕을 처치하고 왕도로 돌아가는 마차에 몸을 싣고 힘멜은 계속 말했다.

“프리렌, 지금은 그리워하지 않겠지만 언젠가 이 여행을, 우리를,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릴 날이 올 거야.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 내가 죽은 후일지도 몰라. 그래도 ‘내가 무슨 엉뚱한 여행을 했었지’라고 웃을 수 있을 거야.”

“아직은 감상에 젖기엔 이릅니다! 집에 돌아갈 때까지가 마왕 퇴치에요.”

하이터는 웃음을 잃지 않고 농담을 건넨다.

“아직 의뢰도 남았으니까요.”

왕도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힘멜은 많은 의뢰를 받았다. 작은 일손돕기, 도로 정비, 물건 찾기까지 맡았다.

이번 의뢰인은 마을의 장의사이다. 의뢰 내용은 사람의 시체에만 반응하는 마물을 처치해달라는 것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마을과 도시를 잇는 길의 다리를 지나가려고 하면 용이 가로막는다고 한다.

시체를 옮기지 않으면 안 될 때만 방해하기 때문에, 그 용은 시체를 노리는 성질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허수아비에는 반응하지 않았고, 죽은 척하는 것도 통하지 않았다.

진짜 인간의 시체만 반응하는 것으로 보아 그 용은 인간의 생사를 감지하는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 프리렌의 추측이었다.

“내가 미끼가 되자.”

힘멜은 언제나처럼 의연한 말투로 말했다.

“모처럼 마왕을 쓰러뜨렸는데 여기서 죽을 셈인가?”

아이젠이 말했다.

“터무니 없는 짓은 그만둬.”

“잡아먹혀도 죽지 않는 아이젠도 이번만큼은 도움이 안 되네요.”

“시끄러워, 하이터”

가볍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프리렌이 묻는다.

“시체를 빌려오면 안 돼?”

“그건 안 돼, 프리렌.”

훈계하듯 힘멜이 말을 이었다.

“시체는 인생을 다 살다 간 마지막 모습이야. 무턱대고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지.

그리고 미끼가 되긴 하지만 진짜로 죽는 건 아니야. 프리렌, 나를 가사 상태로 만들어 줄래?”

“가사 상태?”

예전에 사나운 거대 물고기에게 ‘생물을 얼려버리는 마법’을 사용한 적이 있다. 힘멜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괜찮아? 가감을 잘못하면 죽어.”

“너라면 할 수 있겠지?”

“글쎄.”

프리렌은 어깨를 으쓱했다,

“한 번 해봐. 넌 할 수 있는 아이야.”

“화이팅!”

하이터와 아이젠은 즐겁게 환호성을 질렀다.

“어떻게 돼도 몰라.”

다리 위에 서 있는 힘멜을 향해 프리렌은 지팡이를 들었다.

“프리렌. 쏴.”

지팡이 끝에 집중된 마력이 한순간에 힘멜을 감싸 안았다. 공기가 얼어붙는 가운데, 힘멜은 조용히 쓰러졌다.

잠시 후, 다리 위에 커다란 그림자가 비쳤다. 용이 나타난 것이다.

상공에서 한 번 선회한 뒤, 마치 조준이라도 한 듯이 힘멜을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쏘아보는 듯한 눈빛, 날카롭게 뾰족한 발톱을 드러내며 다가온다.

이에 대응하듯 전사 아이젠의 도끼 휘두르기가 작렬했다.

무겁고 둔탁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진다.

하얀 연기와 냉기가 뒤섞여 녹아내리듯 흩날렸다. 마지막으로 서 있던 것은 아이젠이었다.

프리렌은 차가워진 힘멜의 몸에 ‘사람 피부를 데우는 마법’을 사용했다.

숨을 고른 힘멜은 붉어진 얼굴로 프리렌에게 웃으며 말했다.

“봐, 너라면 할 수 있었지?”

6

프리렌은 마도서를 닫았다.

“죽을 때까지 하나의 기억을 지우는 마법인가.”

다음 날, 아침이 밝아오면서 서서히 마을에 소리가 가득 찼다.

침대에서 멀리 떨어진 딱딱한 바닥에서 눈을 뜬 프리렌은 반쯤 헝클어진 머리를 빗고 노파의 집으로 향했다.

한 가지 가설을 실행하기 위해서다. 거친 치료가 될 것이다. 하지만 프리렌이 보기에는 성공할 것이다.

“프리렌 님. 좋은 아침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노파는 어딘지 모르게 상쾌한 목소리를 냈다.

“죽을 수밖에 없어.”

“어?”

“그러니까 가사상태가 될 수밖에 없는 거지.”

“……”

잠깐의 당황스러움이 있었고, 그 후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마음을 굳힌 듯 했다.

“부탁합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프리렌은 부드럽게 지팡이를 들었다.

“침대에 누워. 가자.”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만, 정말 괜찮을까요 ……”

“한 번 성공했으니까. 나라면 할 수 있어.”

“프리렌 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괜찮을 것 같네요. 부탁합니다.”

프리렌이 발동한 마법이 노파를 감싸고, 노파는 순간 몸을 경직했다.

하지만 곧 물감이 물에 녹아내리듯 다시 부드러움을 되찾았다

그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더 천진난만하고, 소녀였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어때?”

프리렌이 짧게 물었다.

“한 번 죽었으니 기억은 돌아왔을 텐데.”

“후후후…… 나, 어린애처럼 고민하고 있었어……”

노파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은 모양이다.

마법의 곡마단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사춘기 시절. 그녀는 어떤 악기를 동경했다고 한다.

“배우는 데 백 년이 걸린다는 악기 ‘메글리히’ ……”

그것이 갖고 싶었지만 비싸고, 백 년을 투자할 수도 없고, 차라리 그 존재를 잊어버리면 좋겠다고 어린아이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기억을 봉인했다. 닿을 수 없는 동경에 뚜껑을 닫고 현실을 살아가기 시작했다.

“기억해내서 다행이야 …… 인생을 걸어도 닿을 수 없는 세월이지만, 지금부터라도 배우려고 해요.”

“그렇구나. 그럼 그 악기는 네가 가져야겠네.”

마력을 담아 소리를 내는 악기이니 원래 마법을 쓰는 그녀와도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았다.

“악기점에 말해 둘게. 계속 갖고 싶어하던 선객이 있다고.”

“그럴수가 괜찮습니까?”

“나보다 음악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갖고 있었으면 좋겠어.”

“감사합니다. 프리렌 님께 감사 인사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에요.”

“보상은 제대로 받을 테니까.”

“그래요.”

그렇게 말하면서 노파는 책장에서 마도서를 꺼냈다.

“‘소리를 책에 기록하는 마법’입니다. 부끄럽지만, 그 책에는 이미 여러 가지 소리가 기록되어 있어서 ……”

그렇게 말하자 처음 만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을 감았다.

“이상한 취미라고 생각하시겠죠?

곡마단 흥행으로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일상이고, 한 번 뿐인 만남이 많았기 때문에 무언가 형태로 남겨두고 싶었어요.

그 땅의 사람과 자연의 소리가 제게는 가장 소중한 것이었죠. 그래서 개중에는 힘멜 님을 만났을 때의 음성도 들어 있어요.”

“이상한 취미 같은 거 아니야. 힘멜도 비슷한 말을 했어.”

마도서는 다 읽으면 돌려주겠다며 프리렌은 방을 나갔다.

그날도 그는 익숙한 레스토랑 파를란테에 가서 오믈렛을 주문했다. 배불리 먹고 잠자리에 들면서 노파에게 받은 마도서를 열었다.

그녀의 말대로, 들려오는 소리는 시대도 장소도 성별도 제각각이고, 자연의 소리도 있고, 생활 소리도 있었다.

‘너, 자주 보는 얼굴이군.’ 아직 젊었을 때 악기점 주인이었을까?

‘계란 열 개짜리 루프 오믈렛을 부탁한다.’

유명한 음악가의 목소리가 그대로 이어진다.

‘다음에 이 마을에 마칭밴드를 만들려고요.’

‘언젠가 이곳에 프리렌이라는 마법사가 찾아올 거야. 그 때를 대비해 표지가 될 수 있는 동상을 만들고 싶어.’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힘멜의 목소리도 들린다.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와는 음색이 다른, 기억 속에 있던 힘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그리운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프레테의 목소리 흉내가 조금 과장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빨리 포즈를 결정해요! 바이올린을 들기만 하면 되니까 ……’

힘멜 상을 만드는 장인의 애절한 외침이다.

어린 소녀였던 프레테는 호기심에 이끌려 그 순간순간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여러 곳에서 소리를 기록했을 것이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

왕도의 동쪽을 바라보며, 사람들과 함께 여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십오 년쯤 지나면 그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3개월 정도 머물다 떠나기로 했다.

악기점 주인에게 작별을 고할 때, ‘프레테는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에 사랑받고 있다’고 흥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보통은 십 년이 걸리는 소리를 그 노파는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익히고 있다고 했다.

역시 가져야 할 사람이 가져야 마땅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몸단장을 하고 있는데, 숙소 앞을 마칭밴드가 지나갔다.

호른을 연주하는 소년은 어느새 키도 자라고 모자도 멋지게 만들어져 있었다.

호른을 잡은 손가락에는 굳은 살이 생겼고, 이전보다 숨이 덜 찬 듯했다.

용감하면서도 부드러운 울림이 알알이 들려온다.

거리를 떠나는 프리렌의 등 뒤로 축포 같은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