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심 코리아 2011년 1월호 표지 후면 – 윤종신 [No.091]
표지
인터뷰
<슈퍼스타K2>의 당신은 <아메리칸 아이돌>의 냉소주의자 사이먼 코웰 같았다.
그냥 내 스타일이다. 심사위원으로 나왔는데 예능 프로그램처럼 깐죽거리고 앉아 있을 수는 없잖아.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말처럼 쉽진 않다.
음악 작업을 할 때는 감정을 쏟아 붓지만 그 밖의 일은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모드 변환이 의도적이진 않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더라.
방송 모습과 달리 굉장히 쿨한 성격이다.
대중은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주려고 조바심 내봤자 결국 조잡해지는 건 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처음에는 오해가 생길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들에게 받아 들여진다. 이미지를 1~2년 안에 억지로 만드는 건 바보짓이다. 쉽지도 않고, 그렇게 만든 이미지는 스캔들 한 방에 훅 간다.
‘텅 빈 거리에서’로 대표되던 당신의 미성(美聲)이 사라졌을 때도 지금처럼 쿨했나?
6~7년 전만 해도 내 목소리에 실망했다는 인터뷰를 많이 했다. 힘든 과도기를 거쳤고 이제야 그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
라디오 DJ 당시 여성을 횟감에 비유했다가 언론의 뭇매를 맞았다.
내 잘못이다. 잘못은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어차피 말하기 좋아하는 세상에서 사람의 관심사는 들끓는 속도만큼이나 빨리 식는다. 당시에는 대중과 한번 싸워볼까도 했지만 내 직업이 그들을 상대로 하는 것임을 깨닫는 순간 그냥 접었다.
결혼 후 한결 차분하고 의연해졌다.
아등바등하며 살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모양새가 후지잖아? 애들 보기에도 좋을 게 없다. 일은 열심히 하겠지만 아등바등하며 살긴 싫다.
<라디오 스타(이하 라스)>는 당신의 입담에 주목해 기획한 프로그램이란 소리도 있다.
<라스>의 에이스는 김구라 아닌가? 김구라처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 머리가 좋아서 같이 있으면 편하다. 함께 할 때 밸런스도 잘 맞는다.
하긴 게스트에 따라서 맞춤 진행이 가능한 프로그램은 라스밖에 없다.
오히려 월드스타 비가 출연했을 때 지루했을 거다. 쌓아 올린 게 많아서 이걸 지켜야 하는 사람은 망가지기 어렵다. 정작 본인들은 <라스>를 즐기는데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럼 당신이 생각하는 <라스>는 무엇인가?
B급을 지향하는 얄궂은 프로그램! 여기서 말하는 B급은 A급 밑에 있는 수직적 관계가 아니라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는 의미. 간혹 <라스>를 보고 “공중파에서 이렇게 방송해도 되느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공중파의 기준은 누가 정했나? 지금까지 방송사가 해왔던 것뿐이다.
MBC <위대한 탄생>은 엠넷 <슈퍼스타K>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 왔다. 공중파와 케이블 방송의 역학 관계가 바뀌고 있다.
케이블 방송이 전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공중파가 맨발에서 시작한다는 느낌도 좋지 않나? <위대한 탄생>은 공중파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깨에 힘을 쏙 뺐다.
음악 얘기를 해보자. 요즘 인기 있는 곡들의 노래 가사는 다 비슷비슷하다.
“슬퍼, 슬퍼, 슬퍼 또는 아파, 아파, 아파”처럼 가사가 짧게 반복되니 내 관점에선 영 재미가 없다.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당신이 볼 때도 아이유의 ‘3단 부스터’ 창법이 그렇게 대단한가?
어린 친구들이 그런 걸 좋아한다. 이슈 만들기도 좋잖아. 다분히 취향의 문제다. 물론 나로서는 아이유에게 곡을 줬으니 잘됐으면 좋겠다(웃음).
하지만 그놈의 3단 부스터 때문에 같은 날 발매된 윤하의 음반 이야기는 찾아볼 수도 없다.
그런 점이 아쉽다. 음반이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마치 승부라도 난 양 떠들어댄다. 솔직히 윤하도 새 음반을 내놓으면 6개월 정도는 활동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 그전에 둘의 신곡이 나오겠지. 신곡 나오면 2주 정도 방송 프로그램에 주구장창 나오다가 사라지는 마케팅 기법으로는 노래로는 팬들의 뇌리에 남지 못한다. 이럴 땔 라디오에서라도 가수의 노래를 꾸준히 밀어줘야 하는데 TV를 따라가다 망하는 느낌이다.
‘영계백숙’을 돌이켜 보건데 당신이 아이돌을 키운다면 오렌지 캬라멜이 안성맞춤이다.
나중에 기획사를 만들면 재미있는 실험을 해볼 거다. 하지만 마니아를 위한 음악을 하고 싶진 않다. 남녀노소 좋아하는 음악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마켓은 만들기도어렵고 생산성도 낮다.
굉장히 현실적인 발언이다.
멋있는 커머셜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다. 시장은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상업주의자가 살리는 법이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성공 역시 이수만씨가 사업가적인 마인드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은 남는다. 나라면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테니까.
당신이 키우는 가수는 철저히 메이저를 지향한다고 봐도 되나?
언더에서만 놀고 싶진 않다. 어쿠스틱을 잘하는 친구가 있다면 잘 키워서 메이저에서 놀게 만들어야지 재야의 고수로 남는 건 비추다. 메이저를 싸잡아 “쓰레기 같은 음악을 하는 놈들”이라고 욕하면서 음반 시장은 외면하는 투덜이는 마켓에 필요 없다. 포석정에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우며 고고한 학처럼 살고픈 선비 스타일의 뮤지션이라면 애당초 시장에 대해 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메이저가 보다 공격적으로 대중의 중심에 다가서고 있는 이 마당에 말이다.
최근 리페어(Repair) 음반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7집의 ‘돌아오던 날’은 ‘제대하던 날’로 제목을 바꿔서, 8집 ‘잘 했어요’는 곡의 마지막을 조금 손볼 생각이다. <월간 윤종신>에 한 곡씩 추가해서 내놓을지, 음반 한 장에 모아서 내놓을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록 페스티벌 같은 음악 축제에서 당신을 만나기 쉽지 않다.
올해는 밴드로 참여해볼 생각이다. 솔로인데다 메이저를 지향하는 가수라 그런지 불러주질 않더라(웃음). 원래 자신만의 울타리가 강한 사람들은 나를 안 좋아한다. 나 역시 그들의 박수를 받을 생각은 없다. 어느 순간 교집합이 생길진 모르지만.
<월간 윤종신> 편집장으로서 MAXIM에 조언하자면?
잡지의 색깔은 그간의 역사가 말해준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하지 말고 그 시간에 재미있는 걸 찾아서 해라. 소주를 먹고 고민할 시간에 더 열심히 일하란 말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비행기에서 잠잘 때 잠시 하는 것 정도면 충분하다.
동감이다. 우리 같이 대박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