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건너뛰기
Home » 여인형 프로필 (비상계엄 내란가담 가담 군인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 프로필 (비상계엄 내란가담 가담 군인 국군방첩사령관)

여인형 프로필 (비상계엄 내란가담 가담 군인 국군방첩사령관)

이름여인형
呂寅兄 | Yeo In-hyeong
출생1969년 (54 ~ 55세)
경상북도 울릉군
학력충암고등학교 (17회 / 졸업)
국방대학원 (국제관계학 / 석사)
복무대한민국 육군
1992년 ~ 2024년
임관육군사관학교 (48기)
최종 계급중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국방부[대기조치]
주요 보직국군방첩사령관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제53보병사단장
육군본부 정책실장
육군본부 작전교훈차장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
제11공수특전여단장
육군본부 교육훈련정책과장
국방부 정책관리담당관
제51보병사단 제167연대장

개요

대한민국의 前 군인.

경상북도 울릉군 출신으로, 중학교 때 서울특별시로 이주하여 1988년 충암고등학교(17회) 졸업과 동시에 육군사관학교 48기로 입교하여 1992년 학사학위 취득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다. 주로 육군본부, 국방부에서 근무하였으며 지휘관 보직은 후방에서 많이 역임했다.

국군방첩사령관 재임 시절인 2024년, 12.3 내란에 가담했고, 이로 인해 2025년 12월 29일 부 파면되었다. 현재는 재판중이다.

주요 직위

소령

육군대학 05-2기 기본과정 교육사령관상(3등) 수상

중령

제39보병사단 대대장

국방부 국방정책실 국방정책총괄담당

대령

제51보병사단 제167보병연대장

국방부 군사보좌관실 정책관리담당관 (2016.11 ~ 2017.12)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 교육훈련정책과장 (2018.12 ~ 2019.12)

준장 2019년 12월 2차 진급

제11공수특전여단장

합동군사대학교 육군대학장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 작전교훈차장 (2020.12. ~ 2021.05.)

육군본부 정책실장 (2021.05 ~ 2021.12)

소장 2021년 12월 3차 진급

제53보병사단장 (2021.12. ~ 2022.12.)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2022.12. ~ 2023.11)

중장 2023년 11월 2차 진급

국군방첩사령관 (2023.11. ~ 2025.01.)

기소휴직 (2025.01. ~ 2025.12.)

파면 2025년 12월 29일

내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를 전후하여,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근본적으로 위협한 일련의 행위에 깊숙이 관여한 핵심 인물로 지목되었다. 그의 행적은 단순한 명령 이행의 차원을 넘어, 계엄의 실질적 실행과 국가권력 재편을 염두에 둔 준비·조율·지시 행위로 확장되어 왔으며, 이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점차 구체적인 사실로 드러났다.

1. 12·3 이전: 반복된 경고 신호와 의심스러운 행보

12·3 비상계엄 이전부터 여인형의 행보는 국회와 군 내부에서 지속적인 문제 제기의 대상이 되어왔다. 2024년 9월, 나무위키에 등재된 한국군 장성 명단 문서에 대해 임시조치를 요청한 최초 인물로 밝혀지며, 군 수뇌부 정보에 대한 비정상적 통제 시도가 계엄 가능성과 연계되어 해석되기 시작했다. 이는 훗날 계엄을 염두에 둔 사전 정지 작업 아니었느냐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여인형은 계엄 관련 질의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회피했고, 자료 제출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다. 특히 질의하는 국회의원을 노려보는 듯한 태도, 그리고 전두환·차지철을 연상시킨다는 발언에 대해 국방부 장관이 “감사합니다”라고 응수한 장면은, 단순한 우연이나 오해로 보기 어려운 정치적·역사적 상징성을 남겼다. 이후 군 관계자 모임에서 “곧 세상이 바뀔 것”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제보까지 나오면서, 여인형이 계엄을 단순히 가정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전제 하에 인식하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심이 커졌다.

또한 방첩사 내부에 전두환·노태우 사진을 게시하고, 김재규의 사진은 배제한 사실은 우발적 선택으로 보기 어렵다. 이는 군사권력을 통한 정치 개입의 역사적 맥락을 의식한 상징적 행위로 해석되었고, 실제로 12·3 내란 당시 전두환이 맡았던 것과 동일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직책을 여인형이 맡을 예정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재조명되었다.

2. 12·3 비상계엄 당일: 실행 단계로의 진입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여인형은 단순한 수동적 지휘관이 아니라, 계엄 체제의 핵심 실행축으로 기능했다. 그는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따라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를 작성한 인물로 밝혀졌는데, 이 포고령은 법무 검토나 정상적인 행정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은 채 과거 2017년 계엄령 문건을 참고해 급조된 것이었다. 이는 계엄이 즉흥적 대응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시나리오를 현실에 적용한 결과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계엄 선포 직후 여인형은 홍장원 국정원 1차장, 조지호 경찰청장 등에게 연이어 연락해 주요 정치인과 고위 법조인에 대한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이재명, 우원식, 한동훈 등 입법·행정부 핵심 인사들이 체포 대상자로 거론되었으며, 이는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신병 확보를 전제로 한 움직임이었다는 증언이 다수 확보되었다. 실제로 방첩사 내부에서는 체포조가 편성되어 출동 준비가 이루어졌고, 일부 장교들은 법정에 출석해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명확히 증언했다.

여인형은 이후 “체포가 아니라 인계였다”고 주장했으나, 그의 지시를 받은 김대우 준장이 문제의 소지를 인식하고 지시를 축소했다는 진술은, 원래의 지시가 훨씬 적극적이었음을 반증한다. 체포조가 실제로 가동되었고, 다만 부하들의 판단과 저항으로 실행이 좌절되었을 뿐이라는 점에서, 결과가 아니라 의도와 행위 자체가 문제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3. 선관위 · 언론 · 정보기관 동원 시도

여인형의 관여는 체포 시도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선거관리위원회 전산실 및 여론조사기관 서버 확보를 지시했고,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하드디스크를 반출하거나 서버 자체를 떼어오라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수사 결과 확인되었다. 이는 선거의 공정성과 민주주의의 핵심 인프라를 군사력으로 장악하려 한 시도로, 명백한 국헌 문란 행위에 해당한다.

이 과정에서 방첩사 실무자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법무관 전원으로부터 “위법”이라는 자문을 받은 뒤 작전을 중단했다. 여인형이 이에 대해 “아이씨, 계엄인데”라고 반응했다는 증언은, 그가 계엄이라는 비상상태를 위법 행위의 면죄부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 나아가 계엄 당일 방첩사가 KBS에 간첩죄 관련 보도를 유도하려 했다는 내부 진술도 나왔다. 이는 계엄 이후를 대비해 여론을 조성하고, 계엄의 정당성을 사후적으로 확보하려는 시도였다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4. 사후 은폐와 책임 회피

계엄 해제 직후 여인형은 비화폰 통화 기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고, 계엄 관련 서류 파기를 시도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는 언론 인터뷰와 국회 출석에서 “TV를 보고 계엄을 알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해명을 반복했으나, 다수의 물적 증거와 하급자 증언은 이러한 주장을 신뢰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여인형의 태도는 점차 변화했다. 초기에는 체포 의도 자체를 부인하고 핵심 증인들의 신빙성을 공격했으나, 위증 혐의로 추가 구속된 이후에는 증인신문을 포기하고 혐의를 상당 부분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다만 그는 끝까지 “국헌문란의 의도는 없었다”, “상부의 지시에 따른 의지 없는 도구였다”는 논리를 유지하며 책임의 범위를 축소하려 했다.

5. 대북 국지전 유도 의혹과 일반이적죄

여인형의 휴대전화 포렌식에서 드러난 메모는 사건의 성격을 한 단계 더 중대하게 만들었다. 해당 메모에는 무인기 침투, 저강도 드론 분쟁의 일상화, 북한의 대응을 유도해 안보 위기를 조성하려는 구상이 담겨 있었다. 이는 비상계엄 선포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려 했다는 의혹으로 이어졌고, 결국 여인형은 윤석열 전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함께 일반이적죄로 기소되었다.

이 혐의는 단순한 국내 헌정질서 파괴를 넘어, 대한민국의 군사적 이익을 저해하고 외부 위협을 의도적으로 증대시켰다는 점에서 사건의 성격을 ‘내란’에서 ‘외환’의 영역까지 확장시켰다.

6. 결론적 평가

여인형 사건의 본질은 “명령을 따랐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계엄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실행을 전제로 한 준비와 지시를 반복했으며, 체포·언론 통제·선거 인프라 장악·안보 위기 조성이라는 수단을 통해 국가권력의 구조 자체를 재편하려는 시도에 관여했다. 다만 이러한 시도가 실패로 끝난 것은 그의 결단 때문이 아니라, 다수의 하급 장교와 실무자들이 위법 명령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여인형은 구속, 파면, 그리고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일반이적죄 인정이라는 결과에 이르렀다. 그의 사례는 군 조직 내에서 상명하복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그리고 헌법 질서를 수호해야 할 군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때 어떤 파국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게 되었다.

여담

육군의 양대 라인인 작전통과 정책통을 겸업하는 장군으로서 요직을 많이 거쳤다. 1년 만에 사단장을 이임하고 요직 중 한 자리인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으로, 중장으로 진급한 후에는 방첩사령관으로 영전하였다.

윤석열 대통령(8회), 김용현 국방부장관(7회)과 충암고등학교 동문이다.(17회)

국군방첩사령부에 여인형 사령관이 부임하면서 참모장도 소형기 육군 소장으로 교체되었는데, 이례적인 인사라는 평이 많다. 보통 사령관은 방첩사 출신이 아니라서 참모장은 준장 계급의 방첩사 처장들 중 한 명을 소장 진급시켜서 앉히는데, 참모장이 된 소형기 소장 역시 야전 작전통 출신으로 방첩사에 온 적이 없는 인물이다. 방첩사 내부에서 소 육군 소장에 대한 반발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결국 2024년 하반기 군 인사에 따라 소 육군 소장은 육사 교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후임으로는 방첩사 처장을 맡았던 육군 소장이 부임하게 되었다.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이 있기 전, 여인형이 국군방첩사령부 부대 안에 김재규의 사진은 배제한 채 전두환과 노태우의 사진을 걸어두어 추미애 의원이 문제로 지적한 바 있다. 이후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 당시, 전두환이 맡았던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 직책을 그대로 맡을 예정이었단 사실이 밝혀지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에 연루된 탓에 더 이상의 진급은 고사하고, 향후 상황에 따라 내란 및 내모음모 혐의로 사법처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