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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인 프로필 (더불어민주연합 국회의원 사회운동가)

용혜인 프로필 (더불어민주연합 국회의원 사회운동가)

이름용혜인
龍慧仁 | Yong Hye-in
출생1990년 4월 12일 (33세)
경기도 부천시
거주지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양평동
본관홍천 용씨
현직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연합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연합 정권심판본부장
더불어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 자문단장
정치개혁 2050 공동의장
더불어민주연합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후보
가족배우자 박기홍 (2017년 결혼)
아들 박단 (2021년 5월 8일생)
학력경안고등학교 (졸업)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 / 학사)
종교천주교 (세례명: 테오도라)
MBTIISTP
소속 정당더불어민주연합
지역구비례대표
의원 선수1
의원 대수21
소속 위원회행정안전위원회
여성가족위원회
경력알바노조 대학팀장
세월호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제안자
4·16연대 운영위원
기본소득정치연대 대표
경기도기본소득위원회 위원
‘2020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조직위원회 대변인
노동당 공동대표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장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제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5번 / 더불어시민당)
기본소득당 원내대표
제21대 국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
제22차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대회 공동조직위원장
제21대 국회 후반기 행정안전위원회 위원
제21대 국회 후반기 여성가족위원회 위원
기본소득당 경기도당 상임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기본사회위원회 자본단장
정치개혁 2050 공동의장
새진보연합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새진보연합 상임대표
새진보연합 원내대표
새진보연합 경기도당 상임위원장

유튜브

https://www.youtube.com/@yonghyein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yong_hy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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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witter.com/yong_hyein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yong_hyein

개요

대한민국의 제21대 국회의원이자, 새진보연합의 상임선거대책위원장. 더불어민주연합의 국회의원이자 제22대 총선 비례대표 후보이다. 사회운동가 출신의 정치인이다.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사회민주당, 열린민주당과 함께 새진보연합을 창당했다.

생애

1990년 4월 12일, 경기도 부천시에서 태어났다. 이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직접 “가만히 있으라” 침묵 행진을 제안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경안고등학교 시절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어 기를 쓰고 열심히 공부했고, 경희대학교 사회과학부에 진학하여 정치외교학과를 전공했다. 대학 재학 당시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과대표를 맡았다.

대학 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의 알바 경험으로 이후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을 직접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대학교 3학년이던 2011년, 처음 가본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를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당시 크레인에서 고공농성 중이었던 김진숙 씨를 만나고 자신의 세상이 깨어졌다고 한다. 김진숙 씨와의 만남은 이후 희망버스가 가지 않는 날에도 심야버스를 끊어 직접 부산을 당일치기로 다녀오는 등 노동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가만히 있으라” 제안자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모였던 우리를 잊지 않겠습니다.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한 이 사회를 잊지 않겠습니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 2014년 4월 29일 청와대 게시판과 SNS를 통해 가만히 있으라 침묵 추모 행진을 최초 제안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그는 학생회실에서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고 한다. 당시 안산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냈던 만큼 ‘단원고’ 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그 역시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믿었고, 설마 한 명도 구조되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후 단 한 명도 구출되지 못하고 희생자가 한 명 한 명 수습되는 뉴스를 보며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고 느꼈던 그는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요”라는 제목으로 추모 시위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가만히 있으라”는 추모 문구는 세월호 침몰 당시 ‘현재 위치에 머물라’는 선내방송을 가리키는 동시에, 정부와 국가가 시민들에게 전하는 말로도 풀이된다.

4월 30일, 홍대에서 첫 침묵행진을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라”라고 적힌 피켓과 국화꽃을 들고 침묵행진을 하는 방식이었다. 행진 마지막에는 참가자가 200명까지 늘어났다고 한다. 이후 그는 친구들과 함께 이 추모행진을 이어갈 것을 결심하고 5월 내내 매주 추모행진을 주최했다.

이후 시민들의 참여가 점차 늘어나면서 추모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10일에는 단원고 희생자들과 또래였던 고등학생 양지혜, 강원희, 박소현 3인이 공동제안한 청소년 추모행진이 제안되기도 했다.

5월 18일, 4번째 침묵행진 때 경찰은 ‘미신고 시위’라는 이유로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용혜인 측은 ‘추모행진은 관혼상제에 해당하는 행진이기에 신고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복하며 행진을 강행했다. 결국 경찰에 연행되었는데, 연행 직후 그는 “저는 이제 떳떳해졌습니다. 이 나라 경찰들에겐 국민들의 죽음에 추모하는 것이 죄입니다. 그래서 그 죄를 저질렀다고 잡혀가고 있으니 저는 이제서야 떳떳해졌습니다. 추모하는 범죄를 저질러서 잡혀가고 있으니까요”라고 썼다. # 10월 31일,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 # 그러나 6년간의 법정 투쟁 끝에 본인의 21대 국회의원 임기 시작 전 대법원에서 무죄취지 파기환송을 받아냈다.

2022년 10월 29일 158명의 희생자를 낳은 10·29 이태원 참사를 두고 세월호 참사와 비슷하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가운데, 용혜인 역시 “참사에 대해서 국민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가 똑같다”라고 비판했다.

정계 입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평범한 삶을 꿈꾸던 용혜인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600만 명의 서명을 모았지만, 당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원내정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2016년 만 26세의 나이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노동당 비례대표 1번 후보로 나왔는데, 기본소득 30만원과 최저임금 1만원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허나 노동당 득표율이 저조하여 낙선했다.

2018년 겨울 신지혜, 신민주, 서태성과 함께 기본소득과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정당으로 노동당을 변화시키겠다는 기조를 내세우며 당 대표단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전체 당원 중 19%에 불과한 2030 청년당원들이 대표단으로 선출되는 이례적인 사례였다. 당대표가 된 후 시대 변화에 맞춘 당명 개정과 당 혁신을 주장했다. 그러나 당대회에 올라간 당명 개정 안건이 부결되면서, 대표를 사퇴하고 기본소득당 창당 운동에 돌입한다.

이후 2019년 8월 24일에 기본소득당 창당을 위한 위크숍을 열고 기본소득당 창당을 결의한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대부분 기본소득당 창당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점쳤다. 기본소득 자체가 한국에서는 여전히 생경한 정책이었고, 원이슈 정당도 녹색당 외에는 한국정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였기 때문. 본인 역시 창당이 적어도 몇 년은 걸릴 수 있다고 각오하며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창당을 선택한 이유는, 좌우 이분법적 진영정치를 떠나 정책과 비전을 중심으로 한 정당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창당을 준비하며 했던 인터뷰에서 가치와 진영을 중심으로 나뉜 현재의 한국정치에서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본소득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본소득당 창당 및 제21대 총선

불가능할 것이라던 세간의 예상을 깨고 6개월 만에 2만 명의 당원을 모아 2020년 1월 19일 기본소득당을 창당하고 초대 상임대표로 추대되었다. 국내 최초로 온라인 창당을 시도했던 것이 창당의 성공비결로 꼽힌다. # 여담으로 창당대회가 본인의 결혼식보다 더 떨렸었다고. #

창당 직후 제21대 총선 대응에 뛰어들었다. 선거법이 개정되고 맞는 첫 총선이니만큼 다양한 제정당들과의 선거연합을 모색했고 3월 20일 기본소득당은 더불어시민당 선거연합정당 합류를 최종 결정하게 된다. 용혜인은 해당 결정에 대해 “한국 사회 기본소득제 실현과 개혁정치의 확장이라는 실리를 얻기 위한 담대한 결정”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2020년 3월 23일에 더불어시민당 비례후보 5번에 배치됐고 당선돼 원내에 입성했다. 제20대 총선과 이번 총선의 결과를 생각하면 실리적 판단을 했다는 평가.

2020년 5월 12일에 더불어시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제명이 확정됐고 그 다음 날인 5월 13일에 기본소득당으로 복귀했다. 복당하며 “기본소득당이 펼치고자 하는 새로운 정치를 국회에서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출산과 육아

2020년 10월 16일, 임신 7주차라는 소식이 알려졌다. #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 현장에서 동료의원들에게 직접 축하를 받기도 했다 이로써 장하나 전 의원, 신보라 전 의원에 이어서 임기 중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 세번째 국회의원이 되었다.

국정감사 기간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출혈로 유산방지 주사를 맞기까지했다고 한다.#

2021년 5월 8일 자연분만으로 아이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 출산이 알려진 후 문재인 대통령, 김상희 국회부의장,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여야를 가리지 않고 축하가 쏟아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탄희 의원은 출산 소식을 알리는 SNS 게시물에 직접 ‘축하합니다’라는 댓글을 달았다.

현역 국회의원은 출산휴가가 보장되지 않기에, 국회의장의 허락을 얻어 2달 동안 출근과 재택근무를 병행했다고 한다. 근로기준법상 출산 전후 휴가기간이 90일 이내인 것을 감안했다고.

2021년 7월 5일, 생후 59일 된 아들과 함께 국회로 출근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국회에 유모차를 끌고 등장했던 용혜인의 복귀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복귀 첫 날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발의한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