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머우 감독 프로필 (중국 영화감독)
이름 | 장이머우 (장예모, 張藝謀/张艺谋, Zhāng Yìmóu) |
출생 | 1950년 4월 2일 (71세) |
산시성 시안시 | |
국적 | 중국 |
학력 | 베이징전영학원 촬영학부 |
데뷔 | 1982년 황토지 (촬영감독) 1986년 『오래된 우물』(배우) 1987년 붉은 수수밭 (감독) |
소속 | 장이머우 스튜디오 |
직업 | 영화 감독, 작가, 배우 |
종교 | 무종교 |
개요
중국의 영화 감독. 1950년 4월 2일생(현재 만 73세). 천카이거와 함께 5세대 감독으로 불린다. 수상경력을 보면 해외에서 가장 인정받은 중국 본토 출신 영화감독이라 할 수 있다.
세계 3대 영화제(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칸 영화제) 에서 모두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아시아 감독으로서 최고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최고커리어를 가지고 있다. 수상경력을 보면 구로사와 아키라, 마틴 스코세이지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 비교할만하다.
일부에서는 도쿄국제영화제와 모스크바영화제를 합쳐서 세계 5대 영화제라고 하는데, 도쿄영화제는 80년대 반짝했지만 그 이후 일본 영화계의 몰락과 함께 위상이 축소되었고, 모스크바 영화제는 소련 붕괴후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다. 어쨌든 장이머우가 주연하고 촬영감독을 맡은 <오래된 우물>은 1987년 도쿄 영화제에서도 감독상(감독은 우톈밍이고, 그가 수상했다.)을 수상했기 때문에 5대 영화제 중에서도 4개에서 직간접적으로 수상한 독보적인 경력을 가지고 있다. 도쿄 영화제와는 별 인연이 없나 했지만 2023년 평생공로상을 수상하였다.
경력
초기이력
당나라의 수도 장안이 있었던 고도인 시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국부군 군의관이었고, 삼촌들도 다 국부군 고급 장교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국부천대 때 대만으로 도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공산당이 집권한 대륙에 남았고, 1950년 장예모를 낳았다. 이 때문에 장이머우는 반동 집안 출신이었지만, 본인은 딱히 큰 박해를 받지는 않았다.
문화대혁명 당시인 1968년 시골로 하방되어 삽질을 하는 등, 3년간 고생을 하는데 이때의 경험이 후에 감독하는 여러 영화에 나온다. 1971년 다시 도시로 와 시안 옆의 셴양(咸陽,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의 방직공장에서 7년간 노동자로 일하였다. 이때도 그림을 습작하고, 문혁 전에 출판된 영화관련 서적을 읽고, 피를 팔아 얻은 돈으로 산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 혼자 현상을 하는 등, 사진 미학에 대해서 독학했다고 한다.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문혁이 끝난 후인 1978년이 되자 대학은 다시 문을 열었고, 이때 26세의 만학으로 대학입시를 치러 베이징전영학원의 촬영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1980년대
1982년 베이징전영학원 졸업생인 천카이거, 톈좡좡과 함께 중국 5세대 감독의 선두주자로 나서게 되었다.
1982년에 광시영화제작공사에 촬영기사로 입사하였는데, 스탭 경력의 시작은 동기생 천카이거의 <황토지>에 촬영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1985년에 고향에 있는 시안영화제작공사로 옮겨 연출을 하게 되었다.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1987년의 <오래된 우물(老井)>이었다. 이 영화에 장이머우는 촬영감독을 맡았고, 남자주연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한편 1988년에 이장호 감독이 성우 이선영이 진행하던 KBS 라디오의 “이선영의 영화음악실”에 출연했을 때, 도쿄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와서 <오래된 우물>을 “1970년대 한국의 새마을 운동을 다룬 선전 영화” 같다고 혹평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회주의 사실주의 미학을 추구한 영화였고, 국제적으로 호평받았다.
2번째로 맡은 1988년작 <붉은 수수밭>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베니스 영화제, 칸 영화제 등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을 하며 서구 관객들에게 중국 영화의 인상을 각인시켰다.
1990년대
8~90년대에는 중국의 근현대사와 개인의 삶을 엮는 작품을 주로 만들었다. 이 시기에 찍은 영화가 ‘붉은 수수밭’, ‘국두’, ‘홍등’, ‘인생’, ‘귀주 이야기’ 등이다. 이즈음 찍은 영화들이 장이머우의 인생작이다. 작품 안팎으로 문제없는 하나같이 대표작이자 걸작으로 손꼽힐만한 영화들이기 때문이다.
1991년의 <홍등>은 1920년대 중화민국 시기에, 부잣집 첩으로 팔려간 여대생 공리(배우)를 통해 중국의 가부장제와 여성억압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화려한 색감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서사가 약하다는 비판을 비평가들로부터 듣기도 했다.
1992년 베니스 영화제 진출작 “귀주 이야기”는 <홍등>에서의 비판을 수용해 서사를 강화했다. 공리(배우)가 영화 촬영중인 것을 숨긴 채, 몰래 카메라 형식으로 촬영된 작품이다. 이는 과거였기에 가능한 촬영 방법일 뿐 현재 이렇게 촬영하면 법적으로 크게 문제가 된다. 공리(배우)와 몇 인물 빼고는, 실제 마을 주민들이다.
1994년작 “인생”은 거장으로서의 위치를 확고이 한 명작이다. 주인공은 중국 국민배우인 갈우가 맡았고, 공리는 그의 부인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는 94년 칸 영화제에 진출했으나 중국 정부의 출국금지로 인해, 본인은 영화제에 가지 못하고 여주인공 역이었던 공리만 참석했다. 유난히 경쟁이 치열했던 그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레드의 각축속에 양덕창의 <독립시대>와 더불어, 인생도 황금종려상 다크호스였다.
하지만… 황금종려상은 헐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진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이 가져갔고, 남우주연상 수상에 만족해야 했다. 이 영화는 주인공 푸구이의 청년기부터 시작해서 노년기까지 보여주는 영화로 주인공이 살았던 시간에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이 많았던 만큼, 사실적인 묘사로 이를 그려내면서 그 가운데서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주인공을 통해 중국 근현대사에서 민중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 현대사를 그린 수많은 영화중에서도 최고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사실 <인생>은 1994년 당시 중국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당시 이 영화의 감독인 장이머우와 주연인 공리, 갈우는 5년간 영화출연금지에 처해졌으나 이 영화가 국제적으로 격찬을 받자 곧 풀렸다.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은 사실 중국 공산당조차도 덩샤오핑이 집권한 이후 “마오쩌둥의 과오”라고 분명히 지적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시기에 2번이나 실각-숙청되어 오지의 공장에서 일한 바 있다.),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을 비판한 인생이 딱히 현집권체제에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물론 중국은 아직까지 전체주의체제이기 때문에, 현 공산당 체제를 지나치게 비판하거나, 사회적 모순을 심하게 고발한 영화들은 상영금지를 맞기도 한다. 하지만 장이머우의 비판은 문화대혁명시기-대약진운동시기에 한정되어 있고, 이시기는 중국의 현집권세력들도 모두 피해자이기 때문에 다루는데 비판적으로 다루는데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1990년대 당시 중국은 정치성이 있는 영화는 주제에 상관없이 엄금되던 시기였고, ‘인생’보다 1년 먼저인 1993년에 나온 패왕별희도 여러 부분이 삭제개봉 되었다. 이렇게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기의 암울한 면을 다루었기 때문에 인생은 제작 당시에는 개봉이 금지되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풀리기 시작했고, 현재는 중국 동영상 사이트에서 대부분 볼 수 있다.
이즈음 그의 페르소나였던 배우 공리와 11년간 동거하다가 1996년경 헤어졌다. 장이머우는 이미 유부남이었고 이혼도 하지 않은 동거는 불륜이었다. 결국 장이머우는 이혼했지만 공리와 재혼하지 않았고, 나중에 공리는 싱가포르 사업가와 결혼한다. 공리는 장이머우의 ‘붉은 수수밭’으로 데뷔했고, 이후로도 많은 영화에 출연하며 사이를 다진 듯 하다. 이 둘은 관계를 정리한 후에도 간간히 영화 작업을 함께 하는 중이다.
직접 연기한 작품도 여럿 있는데, 꽤 섬세하게 잘 한다. 공리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던 ‘진용’은 국내 지상파에서도 방영된 적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있는 그의 연기작이다.
장이머우를 출세작으로 이끈 1990년대 작품들은 대부분 1930~1960년대의 중국의 저개발 암흑기를 그린 작품들이었다. 이런 작품들에는 중국의 암흑기 동안 고생했던 본인의 체험이 상당히 녹아들어가 있으며, 특히 전체주의 정권(장제스 및 마오쩌둥) 하에서 체제가 인간성을 얼마나 억누르는지를 미학적으로 묘사하면서 간접적으로 전체주의 체제를 비판하고 있다.
2000년대
이렇게 90년대까지는 1920-70년대 중국의 암흑기를 독특한 영상미학으로 다루어 세계적인 거장으로 떠올랐지만, 2000년대 들어서 나온 작품은 중국의 국력신장을 반영하듯 화려한 중화주의적 영향이 작품 곳곳에 나타난다.
2000년대 들어서는 거대 제작비가 들어간 큰 스케일의 무협이나 시대극을 주로 찍었다. ‘영웅[1]’, 황후화 등이 그 예. 영웅은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아 제5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알프레드 바우어상, 제22회 홍콩 영화제 작품상, 감독상, 제39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감독상을 연이어 수상하였다.
이 시기에 그의 향토적인 매력과 서민적인 분위기를 많이 잃어버려 기존 영화팬들의 아쉬움을 사기도 했다. 블록버스터의 경우는 거의 망작인 경우가 많다. 한국에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유덕화, 금성무, 장쯔이 출연의 무협작품 십면매복(2004)은 중국에서조차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2000년대 장이머우의 대표적인 <영웅> (2002)은 1990년대 장이머우를 출세로 이끈 여러 작품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했던 초기작과는 달리, <영웅>은 “천하의 안정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독재도 상관없다”는 주제를 내비치고 있다.
<영웅>은 엄청난 물량 및 액션, 그리고 화려한 미장센으로 2002년 개봉당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 대성공을 했고, 2004년 미국에서도 외국어 영화 흥행 1위를 하기는 했지만, 주제면에서는 거의 중국 공산당의 고도의 프로파간다용 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다. 어떤 한국 영화 평론가는 영웅을 시각효과와 미장센은 쩌는데, 막상 내용물은 볼게 없다며 공갈빵에 비유를 하기도 하였다. 그 주제에 실망한 일부 영화팬들이 “장이머우가 전향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원래 장이머우는 시대적 압박에 놓인 중국인들을 묘사하면서 이를 예술적이나 영상미학적으로 승화시켜 거장이 된 것이지, 본격적인 현실참여용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은 흥행성 (미학적) 작품성 모두 성공한 작품이다. 마치 나치 독일의 레니 리펜슈탈이나 소련의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여러 선전영화를 연상하면 된다.
<영웅>은 장이머우 본인이 문화대혁명에는 비판적일지언정 현 중국 공산당 체제에는 반항할 뜻이 없음을 고백하는 영화라고 보는게 더 맞는 듯 하다. 1994년 <인생> 때문에 장이머우는 정권의 요주의 인물이 되었지만, <영웅>의 감독 이후 이런 규제는 거의 풀렸고 곧이어 중국정부가 심혈을 기울인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폐막 총감독을 맡게 된다.
한편으론 장이머우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비판에 대해 소극적으로 변했을 뿐, 이를 결코 멈추지는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바로 장이머우가 친정부 성향을 띄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히는 영웅부터가, 막상 공산당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는 진시황을 은근히 비판하는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애초에 영웅 자체는 감독과 출연 배우들만 중국인이고 제작은 미국 영화사인 미라맥스가 담당했으며, 배급은 미국인인 쿠엔틴 타란티노가 담당한, 실질적인 미국-홍콩 합작 영화다. 후술할 망작그레이트 월이 정치색도 없고, 적지잖은 미국 배우들이 섭외되었음에도, 이게 오히려 순수 중국 자본으로 만든 영화다.
그러니까 비판을 그만둔 게 아니라, 일종의 돌려까기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반론도 많다. 게다가 올림픽의 개, 폐막식을 연출한 것은 그저 자국에서 벌어지는 경사이자, 세계적인 축제라서 연출했을 뿐이니, 구태여 어용 인사 논란이 일어날 것도 없다. 영국에서 공화주의자로 유명하여 보수당 측으로부터 잊을 만하면 비난을 받는 대니 보일 감독도 다음 올림픽인 2012 런던 올림픽의 개, 폐막식 연출을 감독한 바 있다. 민주주의 국가와 일당독재 국가의 차이를 감안해도, 당시 영국이 보수당이 집권한 상황이었던 걸 생각하면, 세계적인 대축제 앞에서 정치적 문제를 잠시 접어놓았다고 볼 수 있다.
장예모는 <영웅>을 두고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영웅>은 그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이 창작한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한국의 평론가는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서방권의 평론가들은 장예모의 설명에 좀더 무게를 두어 주제보다는 영상미에 촛점을 맞춰 호평을 하고 있다. 유명 평론가인 로저 이버트도 “액션을 시의 경지로 승격시켰다”고 호평했다.
2010년대
2000년대 여러 범작을 만들어서 욕을 먹었던 그는, 2010년에 들어서는 다시 초심으로 회귀한 듯 문화대혁명 시기를 다룬 수수한 색채의 산사나무 아래, 5일의 마중, 원 세컨드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2014년작 5일의 마중은 마오쩌둥 정권이 어떻게 한 가족을 파괴했는지 묘사하면서 미국에서도 호평받았다. 여기서 문화대혁명 시절 복역하다가 문혁이 끝난 이후 석방된 지식인 루옌스(진도명)와 그를 기다리다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아내(공리)를 통해 문화대혁명 시기를 비판하고 있다.
2017년 할리우드 배우를 동원해 만든 그레이트 월은 역시 블록버스터에는 약하다는 공식만 확인해주고 그다지 좋은 평은 받지 못했다. 다만 흥행은 성공했다.
2018년 삼국지의 형주공방전을 모티브로 한 삼국: 무영자를 감독했다. 동양 수묵화를 스크린에 그대로 옮긴 영상미는 볼만 했지만 역시 영화의 서사구조가 별볼일 없어서 그다지 흥행하지는 않았다. 장이머우판 사극 영화는 영상미만 볼만하다는 공식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영화였다.
2019년 문화대혁명 시기를 다룬 신작 원 세컨드(一秒鐘, One second)가 베를린 영화제에 나섰다가 갑자기 출품이 취소되었다. 장이머우 측은 “기술적으로 불완전해서 경쟁부문 출품을 취소한다”고 밝혔는데, 서방언론측에서는 정부의 검열에 걸린게 아니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결국 이 작품은 2020년 개봉했다. 이 영화는 문화대혁명 시기, 공산당 간부와 싸웠다가 노동캠프로 끌려간 한 죄수가 자기 딸이 나오는 뉴스영화를 보기 위해 탈옥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심각한 영화같지만 의외로 유머 코드가 많다.
이 작품에서도 문화대혁명 시절의 자신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아무리 현재의 중국 체제에는 긍정적이라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여전하다. 이에 대해 한국에서는 간혹 문화대혁명을 현재의 중국 지도부가 일으킨 것이라고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시진핑 등 현재의 중국 집권층도 대부분 문화대혁명 당시 시골에서 삽질을 하는 등의 피해자였다. 폭정에 파괴되는 가족 및 개인의 이야기는 장이머우 본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명작을 내놓는 듯 하다.
2020년대
2021년 5월 1일 1930년대 국공내전중의 첩보전을 다룬 <현애지상>이 개봉한다. 조선족 전용선 작가가 쓴 원작을 바탕으로 주연 중 한명은 원 세컨드에도 나온 장역(장이). 다른 한명은 예대홍(니다훙). 예대홍은 장예모의 <인생>에서 타짜로 등장, 주인공 푸구이의 재산을 도박으로 털어먹지만, 곧 공산당이 집권하여 처형당하는 불운한 역으로 등장했다. 한국에서는 신삼국의 사마의(삼국) 역으로 알려져 있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패럴림픽의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았다.
2023년 1월 22일 춘절에 맞춰 신작 <만강홍: 사라진 밀서>가 개봉하였다. 송나라의 충신 악비가 지은 시사(詩詞, 송때의 시, 시가) 만강홍(满江红· 怒发冲冠)을 소재로 한 시대극이다. 한국에서 일부 기자가 혐중 클릭수를 유도하기 위해 대만침공을 염두에 두었나는 기사를 작성했는데 #, 영화를 본 사람과 알겠지만 중화국수주의와는 별로 상관없는 서스펜스-무협물이다.
개봉 당일 바로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개봉 51일 만에 45억3천100억위안(약 8천606억원)의 수입을 올리며 역대 흥행 순위 6위에 올랐다. 장예모 작품 중에서 최고 흥행작이다.
국제적 명성과 작품 세계
그는 색감과 미장센 연출에 특출나다. 특히 화려한 중국적인 색채(붉은색, 황금빛)를 가장 잘 살리는 감독으로 손꼽힌다. 그런 탓에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개막식, 폐막식의 총감독을 맡았다. 당시 개폐막식 영상을 보면 그야말로 아낌없는 물량과 사람 공세로 압도적인 스케일을 자랑한다. 개막식에서 가장 공을 들인 ‘공자의 3천 제자들’ 파트는 하이라이트이자 압권인 부분. 또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에서 차기 개최국인 중국의 공연 총감독을 맡았다.
또 그는 영화 외에도 오페라 작품을 연출하였다. 1997년엔 이탈리아 피렌체 극장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를 연출한 이후, 1998년 중국 자금성 특설무대에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투란도트>를 다시 무대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서양권에서 워낙 유명한 감독이다 보니 할리우드 배우들과 작업도 잦다. 크리스찬 베일, 맷 데이먼 등 최고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작품을 찍었다. 특히 맷 데이먼과 함께 작업하고 2016년 개봉하는 그레이트 월은 장이머우의 첫 할리우드 진출작이 된다. 다만 그레이트 월은 뻔한 작품성으로 혹평을 받았다. 아무래도 장이머우는 블록버스터 영화에는 별 소질이 없는듯.
한국에서는 <영웅>과 <그레이트 월> 때문에 친정부 예술인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있고, 이 때문에 혐중적인 영화팬들 뿐만 아니라 리버럴들이 주로 기고하는 씨네21 같은 잡지에서도 그의 명성에 비해서는 평가가 매우 낮다. 특히 혐중적인 영화팬들은 사람들은 그레이트 월같은 단순 상업영화를 아예 공산당 선전영화나 국뽕영화로 매도하고(오히려 그레이트 월은 중국내에서 화이트워싱으로 국수주의적 관영매체 글로벌 타임즈(말많은 환구시보의 영어판)의 지적을 받았던 영화였다.#), 홍등과 같이 여성억압을 비판적으로 그린 영화나 5일의 마중과 같은 공산당에 비판적인 영화의 리뷰에 달린 댓글을 봐도 장이머우를 공산당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어용예술인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다수다.
예를 들어 진보적인 리버럴들이 대부분인 영화주간지 씨네21의 전문가들의 별점을 보면 장이머우의 작품에 매우 차갑게 반응하며 6/10점 이상 주는 일은 드물다. 이렇게 장이머우를 친정부 감독으로 매도하는 평론가나 기자들은 보수보다는 리버럴쪽에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중국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장예모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공산당의 흑역사를 비판한 <인생>이나 <5일의 마중>조차 결말에서 정권에 온갖 피해를 당한 주인공들이 결국 과거를 묻어둔다는 결말로 끝나는 것을 “비겁한 타협”이라고 매도한다.
예를 들어 <인생>에서 푸구이는 대약진과 문혁 와중에서 모든 자식을 잃지만, 살아남은 손자 만터우를 키우며 앞으로는 잘되겠지라는 희망을 내비치는 것으로 자신의 불행에 정권을 탓하지 않는다.[2] <5일의 마중>에서 루옌스는 문혁당시 아내를 괴롭혔던 당간부에게 복수하러 찾아갔으나, 세상이 바뀌자 이사람이 감옥에 들어간 것을 알고 복수를 단념한다. 하지만 이런 결론조차 한국의 진보적 평론가들은 “어설픈 타협”이라며 장예모를 비난한다. 하지만 만약 저런 사람들의 “바람”대로 날선 현실비판을 강조해서 모든 주인공이 정권 때문에 비극적 결말을 맞는 영화는 아예 중국에서 공개될 수가 없고, 장이머우는 활동금지에 처해질 것이다. 저 정도가 중국에서 공개영화를 만들 수 있는 표현의 한계라고 보는게 맞고, 창작의 자유가 보장된 한국과는 상황과는 다른데도 이런 리버럴 평론가들은 한국식 기준으로 비판을 하는 것이다.
또한 장이머우가 친정부적인 영화를 주로 만든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의 작품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영웅> 같은 경우는 그 주제가 중국의 현체제를 매우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는 하지만 정부가 제작에 직접 개입한 선전영화는 아니다. <영웅>은 기본적으로 홍콩자본으로 만들어졌고, 할리우드의 미라맥스도 제작에 참여했으며, 나름 흥행성이 있어서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성공했다. 즉, 주제는 친정부적일지언정, 정부와는 무관하게 제작된 상업영화라고 보는게 합리적이다. 장이머우는 중국정부가 직접 기획한 선전영화나 프로파간다 영화는 손 댄적이 없다.
단 2020년 개봉한 선전영화인 “나와 나의 고향” (10월 1일 개봉)에는 제작(프로듀서)으로 참가했는데, 이 때 원 세컨드(一秒鐘) 개봉문제 때문에 당국에 협조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제작 완료된 일초종은 개봉이 연기되다가, 장예모가 이 영화에 제작으로 이름을 올린 이후에야 규제가 풀려 11월 27일 개봉했다. 북경전영학원 동기생들인 중국 5세대 감독중에 천카이거나 톈좡좡 같은 경우는 중국 정부가 직접 제작하는 여러 선전영화(대표적으로 나와 나의 조국) 제작에도 참여한 것과 대조된다.
물론 이런 사람들도 딱히 친정부적이어서 이런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당이나 정부에 협조 안하면 상당한 불이익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나섰을 가능성이 많다. 이들은 사실 당에 비판적인 작품을 만들었다가 고초를 겪은적이 있기 때문이다. 천카이거는 이미 <패왕별희> 때 공산당의 눈총을 산 적이 있으며, 중국에서는 상당히 삭제해 개봉했다.
다른 5세대 감독인 톈좡좡은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러차례 당의 경고를 받았으며, 1993년 <남풍쟁(藍風箏), blue kite)>이라는 작품을 내놓았다가 영화는 금지당하고 8년간 활동금지에 처해졌다. 그리하여 한동안 놀다가 10년후인 2002년에야 겨우 다시 메가폰을 잡았지만 전성기인 40대를 모두 날려버렸고, 감독으로서 커리어는 끝나버렸다. 이후 연기자로 전업하여 중후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작은 먼 훗날 우리의 아버지역이다.
이런 것은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에도 탑스타나 스타감독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정부제작의 반공영화나 배달의 기수류에 참여했던 것과 비슷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장예모 정도의 국제적 명성을 가져야 중국정부가 주도하는 이런 선전영화 제작참여를 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장이머우는 5세대 감독 중에서도 중국 정부나 공산당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다. 이런 소극적 비협조 정도가 중국 영화인들이 비판의식을 드러낼 수 있는 한계이며, 중국은 전체주의국가이기 때문에 대놓고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예술인은 아예 활동을 하지 못한다.
장이머우 이후 6세대 감독중에 중국정부에 비판적인 감독들은 작품활동이 막혀있기 때문에 “지하전영”이라고 불리는 영화를 만든다. 이것은 공식 배급라인을 타지 않고 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인민들끼리만 동영상으로 돌려보는 영화를 만든다. 이것도 걸리면 코렁탕감이다. 장이머우 초기작들은 당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이었다가 활동금지를 받을 뻔 했고, 이는 2010년대 작품(<산사나무 아래>, <5일의 마중>, <원 세컨드>)에서도 유유히 이어지고 있다. 위에서 지적되지만 원 세컨드(一秒鐘)는 정부 입김 때문에 해외영화제 출품도 취소될 정도로 정부의 눈총을 받은 작품이다.
장예모가 정부주도의 행사에 참여한 것을 굳이 든다면, 2008 베이징 올림픽의 개폐막식의 감독을 맡은 것을 들 수 있지만,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의 국민적 행사였고, 이런 국민적 행사에 참여한 것을 두고 딱히 친정부적 행보를 보였다고 볼 수 없다. 다음 올림픽에서도 영국 정부의 의뢰로 영국을 대표하는 감독인 대니 보일이 개막식과 폐막식의 연출을 맡은 바 있다. 대니 보일 역시 대놓고 공화정 도입을 주장하면서 노동당의 지지자를 자처하는 식으로 영국 내 기득권층을 상대로 삐딱선을 타는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장이머우는 친정부적이라기보다는 중국에서는 나름 비판의식을 가진 감독이지만, 현정부와 직접 각을 세우기는 회피한다고 볼 수 있겠다. 중국 예술인이 정부나 당과 직접적으로 각을 세우면 아무리 해외에서 큰 호평을 받아도 클로이 자오처럼 완전히 매장된다. 클로이 자오는 중국인(미국에서 산지 20년이 넘었지만, 본인이 중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 감독으로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고, 그의 작품인 노매드랜드는 2021년 아카데미 3개 부문을 차지하여 중국의 경사였지만, 자오가 현 중국체제에 매우 비판적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단신처리되었고, 웨이보에서 자오를 찬앙햐는 멘트들은 모두 삭제되었다.
그나마 자오는 해외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이런 차단이 자신의 활동에 별 영향이 없지만, 장예모는 중국 내에서 영화를 제작하기 때문에 당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다. 장예모가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경로는 조금 안전한 문혁시절을 비판하거나, 혹은 관제영화 제작참여를 거절하는 정도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21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중국공산당의 선전영화인 저격수를 자신의 딸과 함께 공동연출한 것이 알려지게 되면서, 친정부적인 감독이라는 논란에 다시금 불이 지펴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만강홍 또한 애국주의적인 메세지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생기면서,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친공산당 감독이 된 것이 확실시 되는 분위기이다.
사생활
무명시절부터 여자관계가 복잡했다. 공리와의 관계가 가장 유명하지만, 그 전에 스커(史可)라는 여배우와 동거를 했다. 스커라는 중국 여배우는 두명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배우는 1964년생 배우이다. 1979년생 배우도 유명하다. 그런데 “붉은 수수밭”주연에서 지나치게 얼굴이 서구적인 스커대신 좀 더 동양적인 공리를 캐스팅하면서 스커와 사이가 벌어져 결별했다. 이후 스커도 유명배우가 되지만 공리만큼 유명해지지는 못한다.
2번의 결혼과 여러 혼외 관계에서 자녀 7명을 낳았는데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첫째 부인과 1명, 둘째 부인과 3명을 낳았으나 나머지 3명은 혼외자라고 한다. 2011년 계획생육정책을 시행하던, 중국에서 이 사실이 폭로되어 지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748만 위안(약 12억 원)이라는 상당한 벌금을 물었다. 다만 이후로 중국 당국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폐지하고 출산율 격감으로 출산장려정책을 펴기시작함에 따라 이부분은 재평가되고 있는 중이다.
첫번째 부인인 샤오화와는 문화대혁명 말기 농촌에 하방되었을 때 알게 되어 1978년에 결혼했으나, 장예모가 1987년 <붉은수수밭>에 출연한 공리를 알게 되면서 사이가 나빠졌고 1988년 이혼하였다. 장예모는 공리와 11년간 동거했으나, 결혼에 이르지 못하고 1990년대 말 헤어졌다.
2번째 부인인 천팅은 장이머우와 31살 차이가 나는 81년생으로서 원래 무용수 혹은 장이머우의 모교인 북경전영학원 학생이었으나, 아버지뻘인 장이머우와 결혼했고, 2011년 벌금보도가 난 이후에야 장이머우 스튜디오가 결혼사실을 공개해서 수면에 드러났다. 첫 아이 장타이난은 천팅이 만으로 20세 때인 2001년에 태어났다고 한다.(둘째와 셋째는 2004, 2006년에 태어났다.) 이후 천팅은 웨이보를 개설하고 장이머우의 부인으로 공개활동을 하고 있다.
첫번째 부인인 샤오화와 낳은 맏딸인 장모(張末)[3]는 83년생으로 컬럼비아 대학교 건축과, 뉴욕 대학교 영화과 대학원을 나온 재원으로, 현재는 영화계에서 일하며 편집인을 하고 있다가, 2022년 <저격수>라는 영화를 데뷔작으로 감독으로 데뷔했다. 사실 아버지와 공동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장예모는 딸의 커리어를 도와주기 위해서 공동감독으로 나섰다. 이 영화가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활약을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한국의 일부 보수언론과 영화팬들은 장예모를 비난하기도 한다. 2번째 부인과 딸의 나이차이가 2살밖에 나지 않는다. 한편 장모는 2023년 증구혐의인(拯救嫌疑人)이라는 영화를 제작해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하는 등의 쾌거를 이루었지만 해당 영화는 한국 영화 세븐데이즈를 그대로 리메이크한 것이라 쓴소리를 들었다.#
중국에서는 캐스팅된 여배우나 캐스팅을 미끼로 여배우를 건드린다는 루머가 많다. 이는 여배우에게도 상당히 악의적인 루머이다. 장쯔이만 해도 이런 성상납 악성 루머 때문에 수년을 시달렸으며 소송전까지 벌여야 했다. 이 때문에 예술적 재능과는 별개로 이미지는 좋지 않은 편이다. 홍상수 감독과 이런 면에서 비슷하다. 이런 사생활이 <붉은 수수밭>이나 <홍등> 등 초기 영화에서 여성들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갔던 당시 중국의 가부장제와 축첩을 비판하는 모습과 대비되어 일부에서 비판하기도 했다.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명예박사를 수여한 바 있다. 이외에도 예일 대학교 등의 여러 명문 학교에서 명예박사를 수여하였다.
기타
완전 신인이었던 공리와 장쯔이를 주연으로 발탁해 세계적인 여배우로 발돋움하게 한 인재 발굴가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진링의 13소녀의 주연인 니니와 5일의 마중에서 주연 루옌스(진도명)의 딸로 나온 장혜문도 꽤 유명해졌다. 중국에서는 장이머우가 발굴한 여배우들을 “장이머우의 딸들(艺谋娘)”이라고 부른다.
2000년대 들어 발굴한 신인 주동우도 현재 중화권에서 연기력을 갖춘 탑배우로 등극했다. 가장 최근에는 원 세컨드(一秒鐘)에 캐스팅된 2000년생 류호존도 기대를 받고 있는 중. 여배우 캐스팅에 탁월한 감이 있는 편이다.
장이머우는 3자녀를 두었다는 이유로 벌금 748만 위안(한화 13억원)을 납부했다. 중국은 당시 강력한 계획생육정책으로 3자녀 이상 두면 벌금이 부과됐었으며 이를 못 내면 자녀들은 무적자가 되어 생활에 불이익을 겪게 된다. 그러다가 이후 정부가 3자녀를 허용하자, 장이머우의 아내는 웨이보에 ‘미리 임무를 완수했다’고 글을 올렸다(※ 탕핑족).
필모그래피
연도 | 제목 | 역할 | 비고 |
1986년 | 노정(老井, Old Well) | 촬영, 주연 | 남자 주연 데뷔작 |
1988년 | 붉은 수수밭(红高粱, Red Sorghum) | 촬영, 감독 | 공리의 데뷔작. |
1989년 | 진용(秦俑, 고금대전진용정(古今大戰秦俑情), A Terra-Cotta Warrior) | 주연 | 남자주인공으로 출연. 여주인공은 공리 |
1989년 | 대호 미주표(代号美洲豹, Codename Cougar) | 감독 | |
1990년 | 국두(菊豆; Ju Dou) | 감독 | 1991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수상 후보 선정 |
1991년 | 홍등(大红灯笼高高挂;Raise the Red Lantern) | 감독 | 1992년 아카데미 국제영화상 수상 후보 선정 |
1992년 | 귀주 이야기(秋菊打官司, The Story Of Qiu Ju) | 감독 | 공리가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
1993년 | 화혼(畵魂, Soul Of A Painter) | 각본 | |
1994년 | 인생(活着, Lifetimes) | 감독 | 주인공 갈우가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
1995년 | 트라이어드(搖呀搖! 搖到外婆橋, Shanghai Triad) | 감독 | |
뤼미에르와 친구들(Lumiere Et Compagnie) | 감독 | 다큐멘터리 | |
1997년 | 좋게 말로 하자고(有話好好說, Keep Cool) | 감독, 주연 | |
1999년 | 책상 서랍 속의 동화(一個都不能少, Not One Less) | 감독 | 1999년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
집으로 가는 길(我的父親母親, The Road Home) | 감독 | 2000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심사위원대상 | |
2000년 | 행복한 날들(幸福時光, Happy Time) | 감독 | |
2002년 | 영웅: 천하의 시작(英雄, Hero) | 감독, 각본, 제작 | |
2004년 | 연인(十面埋伏: Lovers, House Of Flying Daggers) | 감독, 각본, 제작 | |
2005년 | 천리주단기(千里走單騎, Riding Alone For Thousands Of Miles) | 감독, 각본, 제작 | |
2006년 | 황후花(满城尽带黄金甲, Curse of the Golden Flower) | 감독, 각본, 제작 | |
2007년 | 그들 각자의 영화관(To Each His Cinema) | 감독 | 단편 |
2009년 | 삼창박안경기(三枪拍案惊奇, A Woman, a Gun and a Noodle Shop) | 감독 | |
2009년 | 산사나무 아래(山楂树之恋, Under the Hawthorn Tree) | 감독 | |
2011년 | 진링의 13소녀(金陵十三钗, The Flowers of War) | 감독 | |
2014년 | 5일의 마중(归来, Coming Home) | 감독 | |
2015년 | 양귀비: 왕조의 여인(王朝的女人 楊貴妃, Lady of the Dynast) | 감독 | |
2016년 | 그레이트 월(長城, The Great Wall) | 감독 | |
2018년 | 삼국: 무영자(影, shadow) | 감독, 각본 | |
2019년 | 원 세컨드(一秒钟, One Second) | 감독, 각본 | |
2021년 | 현애지상(縣涯之上, Impasse) | 감독, 각본 | |
2022년 | 저격수(狙击手, Sniper) | 감독 | 자신의 딸인 장모와 공동으로 연출했다. |
2023년 | 만강홍: 사라진 밀서(滿江紅, Full River Red) | 감독, 각본 | |
2024년 | 제 20조(第二十条, Article 20) | 감독, 각본, 제작 |
수상
수상 연도 | 시상식 | 부문 | 작품 |
1988년 | 제 3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 황금곰상 | 붉은 수수밭 |
1991년 | 제 4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은사자상 | 홍등 |
1992년 | 제 11회 벤쿠버국제영화제 | 에어캐나다상 | 귀주 이야기 |
제 4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황금사자상 | ||
1994년 | 제 47회 칸영화제 | 심사위원대상 | 인생 |
1999년 | 제 5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황금사자상 | 책상 서랍 속의 동화 |
2000년 | 제 5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 은곰상:심사위원대상 | 집으로 가는 길 |
2001년 | 제 17회 선댄스영화제 | 관객상(단편) | |
2003년 | 제 5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 은곰상:알프레드 바우어상 | 영웅 : 천하의 시작 |
2005년 | 제 39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 감독상 | |
2004년 | 제 1회 독일 아시아 영화제 | 인기상영작 | 연인 |
2005년 | 제 39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 감독상 | |
2006년 | 제 3회 독일 아시아 영화제 | 인기상영작 | 천리주단기 |
2010년 | 제 4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 | 공헌상 | |
2011년 | 제 13회 우디네 극동영화제 | 관객상 | 산사나무 아래 |
제 5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 국제영화제작자연맹상 | ||
2018년 | 제 55회 금마장 | 감독상 | 삼국-무영자 |
제 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 예거 르쿨투르 감독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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